『불을 가진 아이』의 그림은 무척 불편하다. 수직으로 깎인 산과 비탈길 같은 풍경은 구도가 불안하고, 인물들은 자세도 부자연스럽고 밝은 표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주인공의 퀭한 눈과 손질되지 않은 머리카락이 내내 우울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인 색채가 어둡고 콜라주한 그림이 외곽선을 도드라지게 해 불편함은 더 강조된다. 유일하게 안정적으로 보이는 그림은 교회 안 장면인데, 여기서도 주인공은 구석에 숨은 듯이 엎드려 있다. 화가는 어째서 이렇게 불편한 그림을 그린 걸까.
주인공 동배는 채석장이 있는 지방 도시 외곽에서 살고 있다. 경제적, 정서적으로 팍팍한 엄마 아빠는 동배를 따뜻하게 돌보지 못한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폭력 때문에 동배의 삶도 차갑고 딱딱하다. 동배는 ‘빌리는 것’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도둑질을 하고 어른들 몰래 불장난을 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자꾸만 궁지로 몰리던 동배가 끝내 큰 불을 내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충격적이다.
이야기가 이렇게 파격적일 때 삽화는 흔히 독자를 고려해서 표현을 순화하거나 반대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 과장하는 방향으로 치우치기 쉽다. 어느 쪽이든 결국 감상에는 방해가 된다. 그러나 이 삽화는 동화의 스산하고 쓸쓸한 풍경, 주인공의 우울과 분노를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침착하게 전달하는 미덕을 보여준다. 그저 슬픈 것은 슬프게, 아픈 것은 아프게, 불편한 것은 불편하게 그리는 것이 좋은 삽화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다.
동화와 삽화가 적절하게 균형을 잡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삽화가 자꾸만 화려해지는 경향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나는 동화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감정을 잘 전달한다면 그림이 좀 도드라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너무 무난해서 금방 잊히는 그림보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래 기억되는 그림이 좋다. 비록 아픈 내용이지만, 이렇게 글과 그림이 잘 협업한 작품을 만날 때면 어린이 책만의 매력을 새삼 느낀다. 역시 동화는 삽화를 만나야 ‘책’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 계간 『창비어린이』 2015년 겨울호에 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