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 통조림을 사려고 마트에서 서성이는데 무슨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동원 사조 또 몇 군데가 있다. 그중 내 눈에 띄는 상표는 '펭귄' 이다. 오래된 상표. 펭귄표 꽁치라니, 어쩐지 귀여운 생각이 들어서 그걸 집어 보니까 흥미로운 정보를 준다.

꽁치 고추장 찌개라. 우선 요리법이 간단해보여서 좋은데 내가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이 말이다. "조미료로 맛을 내어 완성한다." 국물을 뭘로 내라거나 양념을 어떻게 넣으라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조미료를 넣어서 맛을 완성하라니. 약간 대담하잖아! 그점이 맘에 들어 이 통조림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 통조림이 시키는 대로 했다.

네꼬표 꽁치조림
그런데 우리집엔 조미료가 없는 관계로 미리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냈고, 거기에 고추장과 마늘을 풀고, 지난번에 사다둔 무(아직도 남아있다!!)와 양파를 넉넉히 썰어 넣어 끓였다. 그리고 꽁치, 두부와 대파, 마지막으로 내 맘대로 고추를 썰어 넣어 조림을 완성. 호박도 넣으라고 해서 썰었는데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털썩) 그건 그냥 건새우와 볶아서 반찬을 만들었다. 따라서 나의 오늘 저녁 밥상은 아래와 같았다.

주말에 밑반찬을 좀 만들어야겠다. 오늘따라 뭐가 너무 없잖아. -_-;;
음, 과연 요만큼만 먹었느냐 의심하는 분들 계실 줄 아는데, 물론 그럴 리는 없고 이걸 다 먹은 다음 똑같은 양을 한 번 더 먹었다. -_- v 동거녀1은 부산에 있는 동거녀2를 데리러 가고, 오늘 저녁은 혼자 먹어야 했지만 내가 한 꽁치조림이 너무 맛있어서 (사실 꽁치에 양념이 배어 있으니 당연히 쉽지만) 도저히 한 번만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꽁치조림을 할 줄 알게 되었다. 나는 시금치 된장국 과 소고기 무국, 미역국, 북어국을 끓일 줄 알고, 시금치 무침, 버섯볶음, 또 된장 순두부 김치 찌개를 할 줄 알고, 어마어마하게 밥을 잘 한다.
나는 또 운전을 할 줄 알고, 한글도 안다. 알파벳과 히라가나, 일부 가타가나를 읽을 줄 알며, 아참, 사진도 찍을 줄 안다. 생각해보면 아마 할 줄 아는 게 더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딘가에 있는 그 사람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어서 나타났으면 좋겠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광화문에서 삼청동 꼭대기까지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박물관과 미술관에 같이 가주고, 이따금 되게 비싼 공연 티켓을 끊어와 날 놀래켰으면 좋겠다. 농담을 이해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내가 한참 전에 했던 농담을 갑자기 다시 해도 맥락을 알고 큰 소리로 웃는 사람이면 좋겠다. 영화를 보다가 내가 엉뚱한 데서 울어도 놀리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데리러 갈게"와 "잘 자"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도 내가 할 줄 아는 것들로 그를 기쁘게 해줄 텐데.
어디서든 잘 살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도록 해요. 그 때까진 나도 알아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 테니. 꽁치조림을 먹으면서 별 생각을 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