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 처음 듣는 이야기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유유 / 2024년 4월
평점 :

도서관에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이게 도통 무슨 말인가. 도서관이라면 사람들로 북적북적해야 되지 않나. 건물의 쓰임새로 보나 존재의 가치로 보나 사람이 없이 한가한 것보다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나. 다양한 행사를 열어 어떻든 간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도서관의 새로운 트렌드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일본의 사상가요 철학자, 교육자인 우치다 다쓰루의 생각은 유별하다. 도서관을 폄하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도서관의 원래 기능을 회복하자는 의미에서 그의 생각이 책 제목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서관에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시장주의 논리라면 당연히 도서관은 최대한 효능을 발휘해 내야 한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최대한 도서관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서관에 카페를 만들고 공연장을 만들어서라도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도서관 사서의 역할이 다양해졌다. 책을 큐레이션 하거나 장서를 재배치하는 고유의 기능을 벗어나 기획자요 연출가, 홍보자의 역할을 해 내야 한다. 그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서는 퇴출 우선순위다. 씁쓸한 현실이다.
도서관은 경제적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책만 배치해서는 안 된다. 자고로 도서관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마지막 지식의 보고다. 도서관이 신성한 곳이 되어야 한다는 우치다 다쓰루의 철학은 다름이 아니라 도서관은 읽은 책을 보관하는 곳을 넘어 앞으로 읽어야 책을 두고 사람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곳이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자만심을 깨부수고 무지의 현실을 깨닫도록 하는 곳이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무지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책에 관심을 가지도록 도서관 장서를 꾸며야 한다. 서가를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책에 대해 경의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람들이 많아야 도서관이 도서관 다워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없어도 도서관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책'이다. 그래서 '도서관'이다.
고전, 철학, 문학, 역사, 향토 자료 등 시중 서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책들을 보관하는 곳이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듯이 한 번의 도서관 방문이 사람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 도서관에 오래 머문다고 독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운명은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다. 도서관이 엔터테인먼트를 연출하는 장소가 아니라 신비한 장소가 될 때 운명이 갑자기 찾아온다.
현란함은 가벼움의 대명사다. 외형적 아름다움은 내면적 빈약함을 드러낸다. 도서관의 외적 치장은 책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다. 책의 가치는 구매가 아니라 구독에 있다. 소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읽기에 있다. 안 팔린다고 가치가 없는 책이 아니다. 인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책은 사고파는 대상이 아니다. 책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