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신서, 법은 누구의 편인가 - 다산 정약용이 풀어내는 정의란 무엇인가?
정약용 지음, 오세진 편역 / 홍익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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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조선을 대표하는 최고의 학자이자 저술가 정약용. 그의 대표적인 삼부작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그중에 목민심서는 지방에 내려간 수령들이 백성들을 돌보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행정 지침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 흠흠신서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는데 때마침 시기적절한 때에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형사 재판 지침서를 훑어볼 수 있게 되어 참 감격스럽다. 

 

책의 부제가 말해주듯이 조선 시대에도 법은 엄격한 잣대로 남녀노소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집행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다만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대게 죄인에 대한 형벌 부과의 기준은 법 문서에 따라 차질 없이 진행되었음이 틀림이 없다. 

 

정약용은 조선 시대에 집행되었던 형사 사건 판례들을 수집하고 유형별로 분류한 뒤 앞으로 공정하게 법 집행이 될 수 있는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새로운 법률 해설서를 작성했다. 바로 이 문서가 흠흠신서다. 흠흠이라는 뜻은 삼가고 또 삼가여서 법을 집행한다는 신중한 결의가 담겨 있는 말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형사 사건 자체가 피해자와 피의자가 뚜렷히 구분되고 손쉽게 밝혀지는 것이 드물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범인이 범행에 사용하였던 여러 도구뿐만 아니라 범인의 행적까지 추적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이 있어 과학적 증거 확보가 쉬운 반면에 조선 시대에는 그야말로 지방관들이 지혜를 모아 사건의 핵심을 잡아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관들의 역할과 책임이 제대로 된 법 집행이 우선순위였기에 법률에 대한 지식과 사건을 파악해 가야 하는 능력은 지속적으로 개발해 가야 하는 책무가 그들에게 있었다. 지금처럼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몇 차례에 걸쳐 반복해서 시신을 검사하고 피의자들을 수소문해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노력한 점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약용처럼 지니간 형사 사건이라도 당시 잘못된 해석으로 판례를 결정지은 것이 있을 수 있기에 차후에 이런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신의 소견을 비평문 형식을 빌려 판결에 해석을 달았다. 누군가에게는 재판할 때 가장 좋은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신분 사회였다고 치더라도 사망 사건에서 조금도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국가의 정신이 법률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판결의 중심에 있는 권력자들은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떠나 명확하게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판을 해 왔었음을 흠흠신서의 문서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가 있었고 판결에 오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도록 노력했음에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조선시대의 판례집이지만 읽기가 참 쉽게 해석해 놓았다. 최근 혼란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한 번 쯤을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본다. 대학자 정약용의 자존심이 걸린 책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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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누나가 좋아 동화는 내 친구 64
강무홍 지음, 김이랑 그림 / 논장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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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몇 주 전부터 예고되었던 보결 수업 들어가는 날. 3학년 아이들과 하루 종일 교실에서 복작복작거리면서 보내야 하는 날이다. 집 책꽂이에 있었던 책들 중에 한 권을 뽑아 출근할 때 가지고 왔다. 내용은 훑어보지 않고 그냥 챙겨가지고 왔는데 3학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려고 책장을 펴는 순간 놀랬다. 책 속 주인공 누나가 바로 3학년이다!

 

도서관에 3학년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얘들아, 안녕!"

"오늘 담임 선생님 대신에 교감 선생님과 수업을 할 거야"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기도 하지만 책과 함께 노는 곳이기도 해" 

 

아이들 표정이 긴장되어 있다. 아마도 교감인 내가 담임 선생님과 달라서 그렇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름과 얼굴을 매칭시킨 뒤 책장을 펴고 한쪽 한쪽 읽어주었다. 마침 내용이 봄에 관한 내용인지라 순간 책 놀이를 하면 좋겠다 싶었다. 3학년 아이들에게 책이라는 것이 재미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고 낯선 교감 선생님과 수업하는 첫 시간에 마음의 벽을 깨고 싶었다. 

 

"우리 오늘 도서관에 있는 책 중에서 봄과 관련된 책 세 권을 골라볼까? 세 권을 찾아서 자리에 앉아보자" 

 

주섬주섬 아이들이 일어났고 도서관 구석구석으로 흩어져서 봄과 관련된 내용일 것 같은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친구들은 벌써 그림책 코너에 가서 큼직 막한 글자에 봄이라는 단어가 쓰인 책을 가지고 온다. 어떤 친구들은 고도의 지능을 발휘하여 식물도감을 찾아내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해 준다. 약간 눈치가 느린 친구들은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표지 그림 중에 벚꽃이거나 봄에 피는 꽃 그림이 있는 책을 가지고 온다. 

 

"이번에는 자신이 고른 책이 왜 봄과 관련된 것인지 친구들에게 소개해 보자" 

 

똘똘하게 이야기하는 아이도 있지만 뻐끔뻐끔 눈만 움직이는 아이도 있다. 3학년 아이들과 책 놀이 겸 도서관에서 친숙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책으로 집에서 가지고 온 책이 큰 힘을 발휘했다. 책 제목처럼 누나가 있어서 좋은 친구 손들어 보라고 하니 많지 않다. 외동이라고 하는 아이, 누나는 있지만 자기 혼자 있는 것이 더 좋다고 하는 아이가 있다. 

 

그래도 누나가 있는 것이 좋을걸!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 한 공간에서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아이들 이름을 줄줄 외우게 됐다. 아이들 얼굴 익히려면 보결 수업만큼 좋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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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가족 신나는 책읽기 22
정란희 지음, 윤정주 그림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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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쓰시는 작가분들은 참 대단하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글을 참 잘 쓰신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곰곰이 생각하시나 보다.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아이들이 보는 관점은 분명히 다르다. 아이들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 잘 관찰하시는 것 같다. 아파트 위층에 층간 소음이 나더라도 어른들과 아이들의 대응 방식이 다르다. 어쩔 줄 몰라 미안한 마음으로 초인종을 누르고 간신히 요청을 한다. 정중하게.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마음이 순순하기 때문일 게다. 행운권 추첨에 맛 들인 엄마를 보며 이 기회를 틈타 게임기를 어떻게든 얻어 보려는 아이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상상초월이다. 개구쟁이 동생을 골려 먹으려다가도 안 쓰러워 포기하고 오히려 살뜰하게 살피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한다. 그게 아이들이다. 

 

학교 안에서 학교 관리자인 교감도 그렇다. 교직원들 한 명 한 명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무엇이 어려운지, 무엇이 속상한지 나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선생님들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선생님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감이 간간히 담임 선생님들을 대신해서 수업을 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학급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교감이 되어 보니 나도 교사였었는데 금방 선생님의 어려움을 실감하지 못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하다. 

 

선생님들은 동화를 읽으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학급 아이가 왜 힘들어하는지 아이의 기준에서 생각해 보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이나 교감이나 모두 똑같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면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존중하는 것은 서로의 입장을 돌아보는 것이다. 교감이 먼저 그래야 한다. 어떻든 간에 교감은 위계상으로 상급 자니까. 힘들더라도 교직원들 앞에서 힘들다고 하면 꼴불견이 될 것 같다.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이 너희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격이다. 아이들 때문에 교사가 있는 것이다. 교감도 그렇다. 선생님들이 안 계시면 교감도 있을 필요가 없다. 

 

동화책을 읽으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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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말들 - 나를 채우는 비움의 기술 문장 시리즈
공백 지음 / 유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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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에게 휴식만큼 달콤한 단어가 있을까 싶다. 휴식의 단맛은 고된 일을 마치고 만낏하는 쉼이 최고일 것 같다. 휴식을 갈망하는 이유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범위에 이르렀을 때 자신도 모르게 바라게 된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들을 하신다. 내 몸이 안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방학 때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몸이 저절로 눈치를 챈다고 한다. 피곤이 누적되고 정신적으로 피폐함이 몰려올 때 휴식만큼 간절한 게 무엇이 있을까.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쉼표는 절대적이다. 프리랜서 직군에 속하는 전업 작가에게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불문율이 있다. 허우적거리며 쉼 없이 맡겨진 일감을 처리한다. 마무리되지 않은 채 쉬는 것은 휴식도 아니다. 특히 마감 기한은 다가오는데 글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야말로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이른다. 글 쓰는 작업은 휴식 없이는 지속할 수 없는 일이다.  

 

『휴식의 말들』은 동서양 작품 속에서 휴식과 관련된 문장들을 엄선해서 발췌했다. 저자의 일상 속 휴식의 모습을 담아냈다. 누구처럼 근사한 호텔에서 누리는 쉼도 휴식이지만 퇴근길 편의점에 들러 목을 축일 간식거리를 사 가지고 아무도 방해를 받지 않은 방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휴식이다. 

 

나에게 휴식은 무엇일까?

 

오늘처럼 강원도 영동 지방에 폭설이 예고되어 있는 휴일에 베란다에서 비치는 눈 내린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휴식이다. 거기다가 도서관에서 대출받아온 책을 읽고 글로 정리하면 보람도 성취도 크다. 뭔가 좋은 곳에 가야 휴식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내가 즐겨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휴식이다. 평소에는 깊게 읽지 못하는 책을 천천히 긴 호흡으로 읽어 내려가는 순간은 그야말로 평온한 쉼 그 자체다. 걱정거리 없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휴식 중에 하나이다. 

 

휴식은 채우기 위해 비우는 시간이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공간을 확보할 수 없다. 휴식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몸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단순해져야 한다. 일의 순서를 정돈해 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휴식은 필수 전제 조건이다. 일의 능률은 휴식에서 비롯된다.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 직장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는 척 시늉만 보이는 것이다.

 

일의 질은 휴식의 질과 비례한다. 휴식을 보장하는 조직 문화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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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 처음 듣는 이야기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유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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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이게 도통 무슨 말인가. 도서관이라면 사람들로 북적북적해야 되지 않나. 건물의 쓰임새로 보나 존재의 가치로 보나 사람이 없이 한가한 것보다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나. 다양한 행사를 열어 어떻든 간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도서관의 새로운 트렌드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일본의 사상가요 철학자, 교육자인 우치다 다쓰루의 생각은 유별하다. 도서관을 폄하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도서관의 원래 기능을 회복하자는 의미에서 그의 생각이 책 제목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서관에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시장주의 논리라면 당연히 도서관은 최대한 효능을 발휘해 내야 한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최대한 도서관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서관에 카페를 만들고 공연장을 만들어서라도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도서관 사서의 역할이 다양해졌다. 책을 큐레이션 하거나 장서를 재배치하는 고유의 기능을 벗어나 기획자요 연출가, 홍보자의 역할을 해 내야 한다. 그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서는 퇴출 우선순위다. 씁쓸한 현실이다.

도서관은 경제적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책만 배치해서는 안 된다. 자고로 도서관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마지막 지식의 보고다. 도서관이 신성한 곳이 되어야 한다는 우치다 다쓰루의 철학은 다름이 아니라 도서관은 읽은 책을 보관하는 곳을 넘어 앞으로 읽어야 책을 두고 사람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곳이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자만심을 깨부수고 무지의 현실을 깨닫도록 하는 곳이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무지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책에 관심을 가지도록 도서관 장서를 꾸며야 한다. 서가를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책에 대해 경의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람들이 많아야 도서관이 도서관 다워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없어도 도서관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책'이다. 그래서 '도서관'이다.

고전, 철학, 문학, 역사, 향토 자료 등 시중 서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책들을 보관하는 곳이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듯이 한 번의 도서관 방문이 사람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 도서관에 오래 머문다고 독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운명은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다. 도서관이 엔터테인먼트를 연출하는 장소가 아니라 신비한 장소가 될 때 운명이 갑자기 찾아온다.

현란함은 가벼움의 대명사다. 외형적 아름다움은 내면적 빈약함을 드러낸다. 도서관의 외적 치장은 책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다. 책의 가치는 구매가 아니라 구독에 있다. 소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읽기에 있다. 안 팔린다고 가치가 없는 책이 아니다. 인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책은 사고파는 대상이 아니다. 책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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