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어를 디자인하라
유영만.박용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8월
평점 :
저자는 자신을 대학 교수로 칭하지 않고 지식생태학자로 소개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교수라고 직업을 말할 때에는 크게 부가적인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듣는 이도 상대방이 교수라고 하면 무슨 일을 하는지 대충 안다. 그러나 관심은 그때 뿐이다. 반면 '지식생태학자'라고 하면 무슨 일을 하는지 바로 알아듣지는 못해도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일으키고 한 번 더 보게 한다. 이처럼 직업을 소개할 때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낸 나만의 네이밍을 별도로 생각해서 지어 말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천양지차다.
나도 내 직업을 소개할 때 교감이라고 하기보다 독감(讀監)이라고 종종 이야기 한다. 讀은 '읽을 독'자, 監은 '감독할 감'자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학교 안에서 중간 관리자로 존재하는 교감으로 불리우기 보다 나의 정체성을 좀 더 담아낸 '독감(讀監)'으로 소개하고 싶다. 책 읽는 교감, 책으로 소통하는 교감, 책으로 성장하는교감의 의미를 담은 나만의 네이밍이다. 『언어를 디자인하라』를 읽었으니 좀 더 특별한 네이밍으로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감(讀監)' 에서 '독감(讀感)'으로 말이다.
여기서 讀感은 읽을 독, 느낄 감이다. 다시 말하면, 책을 꾸준히 읽어내며 안주하려는 나의 타성을 깨부수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공감하는 교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소개할 자리가 주어진다면 이제부터는 독감(讀感)으로 얘기해야겠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내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보면 된다.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을 보면 된다" (17쪽)
저자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의 인격은 언어를 보면 다 안다고.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을 보면 그 사람의 수준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언어는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언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세계를 알 수 있다. 요즘 나이에 맞지 않게 언어의 수준이 빈약한 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나부터를 돌아보더라도 그렇다. 내가 사용하는 어휘의 양, 어휘의 수준을 보더라도 새롭게 공부해서 사용하려고 하기보다 기존에 익숙했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려는 습관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박힌 것 같다. 언어의 변혁을 위해서는 그만큼 언어를 공부하고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기 위한 사유와 노력이 필요한데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저자는 독서 그 자체가 언어의 깊이를 저절로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책도 깊이 읽어야 하고, 읽은 책을 깊게 생각하며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글로 표현해 내지 않으면 언어의 수준이 향상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언어를 디자인하라』 에서는 언어를 수준있게 향상시키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자신만의 어휘 사전을 만드는 법도 소개하고 있다. 신념 사전, 감성 사전, 은유 사전, 가치 사전 등 기존의 국어 사전과 다르게 자신의 삶과 연동하여 자신만이 특별히 정의 내릴 수 있는 어휘의 개념들을 정리하는 방법들을 소개하며 독자들이 실천해 보기를 권면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 말이 거의 대부분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착안하여 한자를 깊게 살펴보라고 말한다. 한자만 잘 알아도 사용하는 언어를 나만의 스타일로 디자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새겨지는 것처럼 사람의 몸에는 언어의 비늘이 새겨진다"(25쪽)라고 말한다. 언어의 묘미를 알면 알수록 깨닫는 범위가 넓어진다. 가령 예를 들면 이렇다.
127쪽
문제해결과 문제해소는 비슷한 개념처럼 보이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 문제해결은, 문제가 완벽하게 규명될 수 있고 해결될 수 있다는 과학적 신념을 반영한 개념이다. 이에 반해 문제해소는 좀 복잡하다. 문제해소는, 상황에 따라 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항상 이해관계자의 갈등이 내재해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절대로 완벽하게 해명할 수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심리적 합의'의 이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해결과 문제해소는 문제를 바라보는 '결'이 다르다.
교통난을 해결할 수 없고 해소하듯이,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해소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해결보다는 해소해야 풀리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어휘라도 이렇게 깊게 들어가 생각하면 결이 완전히 다르다. 새롭게 바라본 언어를 통해 직면한 문제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곧 내 격을 좌우한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어휘 하나하나에 담겨진 뜻들을 꼽씹어 보는 기회를 삼아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