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착한 손잡이가 뭐예요? - 세상을 바꾸는 생활 속 디자인 여행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17
배성호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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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교문 앞은 4차선 도로가 있다. 톨게이트가 있어 학생 등교 시간대에는 차량 이동량이 무척 많다. 승용차 뿐만 아니라 트럭도 빈번하게 다닌다. 학생 안전을 위해 교장선생님은 늘 등교 시간대에 교문 앞에 나가 계신다. 자율방법대장이신 학교운영위원장님도 오랫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원하여 차량을 통제하고 학생들이 안전하게 건널목을 건널 수 있도록 봉사하고 있다. 녹색어머니회, 졸업생 학부모님을 중심으로 조직된 봉사팀도 역할을 분담하여 안전한 통학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많은 분들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원천적으로 교통 안전을 위한 도구들이 '사람' 중심으로 설계되거나 디자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과는 달리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 교통 시설들이 눈에 잘 띄는 노란색으로 디자인되고 있다. 학생들이 건너는 횡단보도 근처에는 '노란 카펫'이 삼각형 모양으로 벽에 부착되어 있다. '노란 카펫' 은 운전자 눈에 잘 보이라고 설치해 놓은 것이다. '노란 카펫' 을 배경으로 학생들이 서 있으면 멀리서도 학생들이 눈에 띄기 때문에 미연에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 학교 교문 앞에도 '노란 카펫'이 벽에 설치되어 있다. 삼각형 모양의 '노란 카펫'의 정체를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선생님, 착한 손잡이가 뭐예요?>를 읽다가 학교 교실 문 손잡이가 생각났다. 보통 학교마다 교실 문 손잡이를 보면 대체로 잡고 돌리는 방식이다. 교무실도 행정실도 그렇다. 아파트 문 손잡이도 잡고 돌리는 방식이 많았다. 문 열고 들어가는데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들어가기 위해 손잡이를 잡아 돌리면 되니까. 그런데 문제는 저학년 학생일수록 또는 손에 물기가 있으면 잡아 돌리는 일이 그리 가볍지 않다. 손에 물건이라도 들고 있으면 물건을 땅에 내려 놓고 손잡이를 돌려야 한다. 코로나19 감염병 시기에는 더더욱 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일이 민감할 수 있다. 학교마다 방역을 도우시는 분들이 계셔서 시간마다 소독을 해 주시지만 역시나 여러 사람이 만지는 손잡이를 잡아 돌리는 일은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어떻게? 손잡이를 바꾸는 것이다. '잡아서 내리는 방식'의 손잡이를 교체하는 일이다. 팔등으로 내려도 되고 손등으로 내려도 되는 손잡이 말이다. 양손에 물건을 들고 있어도 팔꿈치로 내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 잡고 돌리지 않아도 되니 코로나 시대에는 조금 더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생활 속에서 '사람' 중심으로 제품을 디자인하고 '사람'의 인체를 살펴 제품을 설계하는 '인간 공학' 중심의 디자인이 각광받고 있다. 

 

<선생님, 착한 손잡이가 뭐예요?>에 보면 강릉 연곡초등학교 학생들이 음료회사에 환경을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기사가 나와 있다. 제안 내용은 이렇다. 우리가 마시는 페트병 음료에는 죄다 비닐 라벨이 붙어 있다. 분리 수거를 할 때 라벨을 제거할 것을 권고하나 견고하게 접착되어 있어 제거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재활용을 손쉽게 하기 위해 라벨을 떼고 싶어도 싶지 않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학생들이 라벨이 붙어 있지 않는 음료를 만들어달라고 음료 회사에 제안을 한 모양이다. 결국 음료 회사가 학생들의 제안을 수용했다. 학생들이 음료회사를 움직인 것이다. 이처럼 생활 속에서 불편한 점, 환경을 위한 작은 아이디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꾸준히 제기한다면 결국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다.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현재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반응이 나타나는 이유는 결국 환경 오염 때문이고 생물 다양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후재앙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살아가는 현재의 이야기다. 연일 열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0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과연 100년 주기로 찾아오는 기후 이상 현상인지 매년마다 찾아올지 두고 볼 일이다. 

 

<선생님, 착한 손잡이가 뭐예요?>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 누리는 시설들이 누군가가 꾸준히 불편함을 제기했기에 현재 편하게 안전하게 누리게 되었다는 점을 사례를 들어 제시하고 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사람을 위해 도구가 존재하는 것이지 도구를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학생들이 모여 생활하고 있는 학교는 더더욱 학생 중심의 디자인을 생각해야 하는 곳이다. 물건 하나 들여놓더라도 학생의 관점에서 꼼꼼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디자인은 곧 안전이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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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란의 아름다운 날 꿈꾸는 문학 5
차오원쉬엔 지음, 양성희 옮김 / 키다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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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소년 문학이다. 중국 문화대혁명 때 아빠는 숙청 당하고 엄마는 추운 곳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유배보내고 시골에 살고 있는 할머니 집에서 자란 '란란'의 성장 이야기를 담아냈다. 시간이 흘러 유배간 이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오지만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잃어버린 유년기의 부모의 가르침이다. '란란'은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예의 바르게 자랐지만 라란의 친동생 '퉁퉁'은 제멋대로 자랐다. 예의라고는 털끝만큼도 배우지 않아 행동하는 것이 가관이 아니다. 외할머니가 시장님이라는 지위 때문에 더더욱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며 가족의 근심이 된다. 란란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잃어버린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사치와 교만한 삶을 살아간다. 그 엄마의 그 아들이라고 '퉁퉁'의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야단치려고 하지 않는다. 

 

란란은 굶주렸지만 유년기 할머니와 함께 시골에 살았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 사촌 오빠가 잡아다 주는 오리알을 구워 먹고, 종달새가 종알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함께 마음껏 뛰어놀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 책 표지 그림 속 고양이는 란란이의 둘도 없는 친구다. 하얀 털이 있고 부티나는 고양이가 아니라 시골에서 뒹굴며 털은 까무잡잡하지만 심성이 까다롭지 않은 주인을 닮은 온순한 고양이다. 하지만 란란이와 고양이 모두 친엄마가 살고 있는 도시집으로 오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높게 둘러진 담장 속에 감옥처럼 살아야 하는 집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교양있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란란이 시골에서 뛰어놀던 들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조롭다. 란란이의 엄마는 잃어버린 시절을 만회하고자 란란이에게 피아노 교습도 시키고 좋은 옷을 입혀 주며 맛있는 음식을 먹이지만 란란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란란이가 가고 싶은 곳은 환경은 불편하지만 자연이 있고 사람 정이 물씬 풍기는 시골이다. 

 

어렸을 때 교육이 무척 중요하다. '퉁퉁'이 처럼 오냐오냐 하면서 키운 아이들은 자기밖에 모른다. 자기 보다 못 사는 아이들을 만나면 깔본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이 있으면 금방 화를 낸다. 감사함을 모르는거다. 그러니 위아래도 없다. 할머니에게 일을 시키지 않나 손가락 까딱하지 않고 어른들을 부려 먹으려고 한다. 이런 아이는 더 크기 전에 따끔하게 훈계해야 한다. 귀엽다고, 어렸을 때 아빠를 잃고 가엾다고 그냥 넘어가려고 하면 안 된다. 가엷게 생각될 수록 나중을 위해서라도 호되게 훈계해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나쁜 습관과 버릇은 눈물 찔끔 흘리더라도 매몰차게 고치도록 해야 한다. 

 

급기야 '란란'은 할머니를 따라 시골로 가 버린다. 도시보다 시골이 불편하지만 마음만큼은 훨씬 편하다. '란란'의 외할머니만 정신이 똑바려 박혀 있다. 시장님이라는 지위가 있지만 불쌍한 사람들을 돌볼 줄 알며 손자 손녀들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 신경을 쓴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양육자인 '란란'의 엄마는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물질적으로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교육을 시키면 엄마 노릇을 다 한 것마냥 생각한다.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물질적으로 풍성히 공급해 주는 것보다 배고픈 것도 가르쳐야 하고 아픈 것도 참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가난이 사람을 만든다는 얘기가 있다. 부유할수록 아이들이 엇나갈 수 있다. 지금 당장 아이들에게 잘 입히지 못하고 잘 먹이지 못하더라도 괜챦다.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경험한 아이는 스스로 살아갈 힘을 배운다. 교육이 부족해서 아이들이 자라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결핍이 오히려 아이들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 풍요한 시대를 살아가기에 결핍을 가르쳐 줄 필요도 있다고 본다. '란란'이 가장 행복하게 자랄 때가 궁핍했던 그 어린 시절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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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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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비행은 소년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입니다"

 

소년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작가의 비행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청소년의 비행에 대해 엄벌을 내려 더 이상 같은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과 청소년이 비행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여 계도하고 기회를 더 줘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전자의 의견은 아마도 점점 정도를 넘어 선 비행이 일어나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후자의 의견은 청소년의 비행은 사회적 탓이 더 크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을 직접적으로 만나는 교육자들의 생각은 어떠해야 할까?

 

"아이들은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존재입니다. 아직 스스로 자신을 보조할 힘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주위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입니다"

 

천종호 판사는 소년법원에서 수 많은 청소년들을 법정에서 만나왔고 엄숙한 판사의 위치에서 사회의 어른의 입장에서 사건보다 사람인 청소년들을 중심에 두고 판결을 내려왔다. 아빠의 심정으로 호되게 꾸짖기도 하고 훈계를 통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했다. 진정한 사과 없이는, 진실된 반성 없는 판결은 청소년을 사회와 분리시키고 다시 비행을 부추키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음을 알았기에 짧은 시간이라도 반드시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했다. 최대한 형벌은 낮추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판사가 가지고 있는 권위를 충분히 활용했다. 직업적인 관점에서 판사의 역할은 정확하게 사건을 심리하여 양심을 가지고 판결을 내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천종호 판사는 청소년 한 명이라도 법정에서 위압감이 아닌 감화 감동으로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학교 현장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난다. 가정적인 환경이 좋지 않기에 학습 결손이 누적될 뿐만 아니라 학교라는 울타리에도 있지 않으려고 하는 어린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무기력한 이유는 본성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라온 환경 때문이리라. 학교라는 곳이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할텐데 그들에게는 무거운 짐이자 부담이 되나 보다. 하루 걸러 학교에 오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위태위태하며 하교 후에도 따뜻하게 맞이해 줄 어른이 없는 환경에서 과연 그들이 살아갈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비행 청소년들에게도 새로운 삶의 기회를 줄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사회적 낙인 때문입니다"

 

낙인 효과는 무섭다. 얘를 원래 그렇다라는 식으로 낙인시켜 버린다면 헤어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수 많은 비행 청소년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기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탈출할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누군가는 부모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따뜻한 가정을 안겨 줄 수 없다면 푸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제도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면 탈선하는 청소년들이 다시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에는 평범한 가정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상황을 맞딱뜨린 어린 소년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기절초풍할 일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환경을 들어보면 섣불리 비행 청소년들의 형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함부로 내뱉지 못할 것이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내가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남모를 희생을 감수하고 뒷바라지한 어머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다. 단 한 명의 어른이라도 그들 곁을 지켜주었다면 끔찍한 비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 중에 정말 소름끼치는 사건들이 많다. 범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범죄자 개인의 부도덕한 의식 때문인지, 범죄자를 생기도록 한 사회적 제도 때문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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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강화 섬의 소년들 오늘의 청소년 문학 30
이정호 지음 / 다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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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서 일어난 병인양요(1866년)를 다뤘다. 강화도로 인질로 잡혀온 조바우, 강화도에서 태어나 자란 강득이. 두 소년은 기구한 운명으로 병인양요로 불리우는 전쟁 한 복판에 미끼가 되어 버린다. 천주교 박해가 한창일 때 여전히 조선은 쇄국정책을 통해 문닥속을 강화했고, 유교의 근간을 흔든다는 이유로 천주교 신자들을 색출하여 참형으로 다스렸다. 조선으로 잠입한 프랑스 선교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국의 선교사들의 죽음을 알게 된 프랑스는 위협적으로 강화도를 점령해 왔고 조선은 양헌수 장군을 위시로 한 특별부대를 급조하여 대응을 했다.

 

임금이 아닌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임금이 지낼 궁궐을 지어 왕권을 강화하려는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작은 등불이 된 것이 있으니 바로 '서학' 즉 천주교 신앙이었다. 타고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고, 인간 대접 받지 못하는 자신들에게 천주교의 교리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가르쳤으며 지금의 고난도 천주께서 아시고 견뎌낼 힘을 주실 것이며 그 무엇보다도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전파했기에 그야말로 붙잡아야 할 새 희망이 되었다. 등장인물인 열두살 소년 조바우의 부모님은 모두 천주교 신자였고 순교를 당했다. 고문을 당하고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본 조바우는 부모님이 물려준 신앙대로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손에 쥐고 전쟁터 한 복판에서 강득이를 대신하여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경복궁 재건 공사에 투입되어 온 몸이 망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아버지를 대신하여 동생을 키우지만 그 동생(강명이)마저 선교사에게 끌려가고(?) 동생을 되찾아오기 위한 무모한 행동으로 결국 병인양요의 한 복판에 서게 된다.

 

<그해, 강화 섬의 소년들>은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병인박해로 빌미를 제공한 조선의 당시 쇄국정책과 실정을 읽어낼 수 있다. 충남 당진과 예산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간 천주교 신자들의 삶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두 소년의 목숨을 나눈 우정을 통해 열두 살 조바우가 지닌 '신앙'의 힘을 보게 된다. 두 소년을 미끼로 출세하고 싶어하는 장나졸이라는 어른의 부끄러운 민낯도 여과없이 볼 수 있다. 욕망은 생명을 경시하고 오직 자기 자신만 보게 만든다.

 

"우리를 흉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소년 '조바우'가 프랑스와 조선 군이 쏜 총알을 맞으면서 마지막으로 내뱉었던 말이다. 부모가 서학쟁이라는 이유만으로 열두 살 소년 '조바우'도 감옥에 갇히고, 산 채로 생매장을 당해야 했으며 천주교 신자를 잡아내기 위한 미끼로 끌려다녀야 했다. 그 와중에 부모가 늘 눈을 감고 외우던 기도문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기도문이 되어버렸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이 있다. 김정숙 장편동화 <정애와 금옥이>는 강화도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룬 동화이지만 강화도에서 일어난 피비린내 나는 사건인 '병인양요'도 다루고 있다. 이경수의 <숙종, 강화를 품다>를 통해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진지를 구축한 강화도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김영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어린이의 시각으로 천주교 박해의 과정을 차근차근 읽어낼 수 있는 동화다.  이영서의 <책과 노니는 집>은 워낙 유명해서 모두 잘 앍겠지만 책방에서 심부름 꾼으로 지내는 '장이'라는 아이의 눈으로 정조 시대 이후 서학(천주교)이 급속도록 사람들 사이에 퍼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책 속 주인공 '장이'의 아버지도 서학을 필사하면서 새로운 학문에 눈을 뜨게 되었고 결국 박해를 받게 된다.

 

19세기는 조선에게 있어서 암흑과도 같았던 시대였다. 여러 중심적인 사건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천주교 박해'였으며 그 배경이 되었던 곳이 강화도였다. 정치적으로는 정약용 형제들이 죽거나 유배를 당해야했고 외교적으로는 강화도에서 일본에게 굴욕적인 조약에 서명을 당해야했다. 강화도에 갈 기회가 있다면 켜켜히 쌓인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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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 오늘의 청소년 문학 29
김지숙 지음 / 다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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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중간 어디쯤에 있어"

 

요즈음 연예계, 스포츠계 학폭 미투가 끊임없이 인터넷 포털에 오르내리고 있다. 힘들게 본선 경쟁에 오르면서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이들도 과거에 저지른 학교폭력으로 인해 오명을 씻지 못하고 그만 하차하는 경우가 있어 놀라움과 아쉬움이 교차하고 있다. 스포츠계에서도 쉬쉬하고 있었던 운동부 폭력이 피해자의 증언과 함께 속속히 밝혀지고 있어 모두들 당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 는 학교폭력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청소년 소설이다. '넥스트아이돌스타'라는 공개 경쟁 프로그램에서 주인공 김아름은 일약 스타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 때 일어난 왕따, 은따 사실이 인터넷 공개 게시판에 밝혀지면서 결국 하차의 위기를 맞이한다. 책 제목처럼 중도 하차가 된다면 그다지 독자들에게 환기를 주지 않을텐데 마지막 부분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가해자로 지목된 소녀A(김아름)와 피해자 구유진이 극적으로 화해가 이루어진다. 사실 두 당사자 모두 피해자이기도 하다. 피해의 경중을 따질 수 없지만 소녀A는 피해를 피하고자 가해자로 돌변하고 결국 위 사실이 밝혀져 스스로 프로그램 중도 하차를 선언한다. 공개적으로 잘못을 시인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였던 구유진은 용서를 하게 되면서 극적 반전이 이루어진다. 

 

사실, 학교폭력 사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뚜렷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확실하게 보여지는 가해자도 있지만 주변에서 맴돌며 방관하는 가해자도 있다. 어떻게 보면 구경꾼 행세하는 가해자가 더더욱 무서울 수 있다. 누구든지 학교폭력 상황을 인지했을 때 멈추라고 시그널을 보내고 도움을 요청한다면 피해의 규모를 줄이거나 예방할 수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결국 학교폭력에 관계된 이들 모두 가해자와 피해자 중간 어디쯤에 애매하게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상처를 받았으니까, 누군가 상처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우리 사회에 학교폭력이 큰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계 뿐만 아니라 법조계, 정부 주도로 다양한 방법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폭력의 뿌리는 더욱 견고하게 흔들리지 않고 자리잡고 있다.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 그리고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깊은 배려가 없는 곳에서, 폭력의 씨앗이 싹트게 된다. 공감은 환대나 타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인식하는 능력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요소다. <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의 또 다른 주인공 '나나'는 타로 가게를 운영하는 언니다. 그녀도 지독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본인이 당한 아픔과 고통이 있었기에 '소녀A', '구유진'의 아픔을 공감해 줄 수 있었다. 학교폭력은 공감이 왜곡되었을 때 나타나는 행동 유형이다. 공감은 단순히 남을 동정하는 차원이 아니라, 타인이 가지고 있는 다름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다.

 

학교폭력 예방의 열쇠는 가해자를 적발해내거나 제압하는 것에 있지 않고, 가해자의 편을 줄이고 피해자의 편을 늘리는 데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대상이 방관자이다. 어떻게 방관자를 방어자로 돌려세우는가가 학교폭력 예방의 열쇠인 것이다. 이때 방관자들을 피해자에게 돌려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타인의 상태 정서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공감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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