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히스토리 -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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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26일 소련(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함께 원전 원천 기술을 보유한 첨단국가였다. 소련의 전기 생산량 대부분을 원자력에서 얻어냈기에 소련에서 원전 관리는 에너지관리부를 넘어 당 차원,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관리하였으며 세세한 관리는 KGB에서 감시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원자력 성과에 따라 담당자는 영전과 훈장을 받게 되었고 최악으로는 유배형에 처해지거나 죽음까지 각오해야 할 상황이었다. 원전을 관리하는 시스템 자체가 폐쇄적이고 위협적이었기에 체르노빌 원전에서 발생한 위험요소를 인지하고 보고하기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처리할 분위기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체르노빌 히스토리>에서 밝혀내고 있다.

 

"한 공급자가 공급한 자재의 70퍼센트가 불량품이었다" (80쪽)

 

체르노빌 원전 공사에 들어가는 부품 자체가 대체로 불량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공산국가였던 소련은 생활필수품 조차도 넉넉치 못한 상황이었다. 당 간부들 조차도 배급이 원활하지 못했다고 전해 오고 있다. 다만 체르노빌 지역과 같은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는 특별 공급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원전 공사에 참여하는 노동자들과 인력들의 노고를 나름대로 치하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원전 공사에 들어가는 관급 공사 자재가 원활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들어 상황을 진술하고 있다. 첫째, 체르노빌 반경 주위의 시설을 확충하고자 원전 공사에 들어가는 자재들이 전용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둘째, 안전 의식 불감증으로 정확한 자재 대신 값싼 자재로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헛된 자신감이 당시 책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는 점이다. 사고는 결국 인재였다는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 그러나 권력 싸움의 한복판에서 VVER 원자로는 RBMK 원자로에 밀렸다. RBMK 원자로는 핵반응 제어를 위해 흑연을 쓰고 냉각재로 물을 사용했으며, VVER 원자로 생산량의 2배인 1000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했다"(83)

 

당시 체르노빌 원전 공사 전에는 대부분 소련이 보유하고 있었던 원전은 VVER 원자로였다. 중성자 감속에 물을 활용했던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체르노빌 원전은 전기 생산량의 확대에 이점이 있다는 이유로 중성자 감속에 물 대신 흑연을 사용하는 RBMK 원자로를 택했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을 택한 것에 비해 관리를 할 수 있는 노하우와 경험들이 축적되지 못한 상태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변론을 펴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지만, 이들은 침묵을 강효당하거나 무시되었다" (84쪽)

 

원전 공사 책임자 뿐만 아니라 함께 관여하는 사람들의 언로가 막혔다는 사실은 끔찍한 재앙을 막을 방법을 놓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주기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거나 아예 침묵을 강요한 이유는 당 차원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될 경우 보너스 뿐만 아니라 승진에도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원인들을 상부에 보고하기를 꺼려했다. 이런 조직 시스템이 사고를 불러오게된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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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다운 1945 -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 전 116일간의 비하인드 스토리
크리스 월리스.미치 와이스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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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 전 116일간의 비하인드 스토리' 라는 책의 부제처럼 제2차세계대전을 종식한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고 투하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아낸 실화다. 책의 이야기는 카운트다운 116일인 1945년 4월 12일부터 시작된다. 당시 워싱턴 정가에서는 해리 트루먼이 부통령이 된 지 82일째였고,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 승리를 눈앞에 두기까지 미국을 이끌어온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예순세 살의의 나이로 뇌일혈로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하다. 참고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병력에 대해 로날드 D. 게르슈테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4선을 역임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자신의 병명을 철저히 보안 사항으로 감추어야했고, 결국 그 사실이 국민들에게 폭로되자 미국은 수정헌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하되, 재임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루스벨트의 재가 아래 원자폭탄 개발 착수는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일명 '맨해튼 사업'이라는 불리우는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는 과학자 오펜하이머였다. 철저한 보안 속에서 오펜하이머와 그 휘하 과학자 부대는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고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답지 않게 여섯 개 언어에 유창했고 고전문학과 동양 철학에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트어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그의 사후 대통령직을 인계받게된 해리 트루먼, 실질적인 책임자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이야말로 전쟁을 끝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보았으며 관련자들을 설득해 갔다.

 

"양자역학은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1945년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가 양자역학의 원리로 원자폭탄을 만들어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천 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했으며 들어간 비용도 20억 달러가 넘었다고 한다. 우라늄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핵분열이 일어나게 하는 원리로 원자폭탄을 만든 것이다. 플루토늄도 핵분열하는 과정에서 생겨진다" <초등학생을 위한 양자역학 4, 이억주>

 

물론, 원자폭탄을 전쟁에 쓰는 것에 대해 도덕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이들도 있었다.(물리학자 실라르드 레오) 원자폭탄을 만든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정확하게 떨어뜨리는 것도 중요했기에 다양한 실전 경험 속에서 실력이 검증된 인물들을 선발하여 캠프 안에서 섭외를 해 나갔다. 원자폭탄을 독일이나 일본 상공으로 운반하는 임무를 '실버플레이트'라는 암호명으로 취급했다. 인류 역사상 보지 못했던 가장 무시무시한 무기이자 온 도시를 파괴할 수 있는 맨해튼 사업은 지독하게 복잡한 과정이 소요되었다. 이와 별개로 국제적인 정치지도사들의 파워게임은 물밑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독일 항복 후 유럽의 국경을 정하는 일이라든지 협상 테이블에서 발언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뭔가 큰 한 방이 있어야했는데 미국의 입장에서 원자폭탄이 그 중의 하나였다. 결국 일본의 어떤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것인지 심리적 충격을 통해 얻게 될 그 이후의 일까지 예상해야 했다.

 

당시 일본의 여러 도시가 후보군으로 좁혀지기 시작했다. 옛 수도이자 인구 100만명의 교토, 군 병참기지인 히로시마, 중요 도시 공업 지역인 요코하마, 일본 최대의 병기공장이 있던 곳인 고쿠라, 항구도시 니카타가 거론되었다. 단, 결정적인 회의 때 일본 예술과 문화의 성지라고 불리우는 교토를 제외하자는 의견이 나와 이를 받아들였다. 폭발력이 있는 핵 연쇄 반응을 만들어내는 원자폭탄인 일명 '꼬마'와 '뚱보'는 불안정한 무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카운트다운 70일에 첫 번째 폭탄 투하지로 히로시마가 선택되었다. 일본을 항복하게 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일본을 패퇴시기기 위한 전면적인 육상 작전 시 50만 명에서 100만 명까지 희생될 것으로 시뮬레이션 상 파악되었기에 당시 태평양 미국 육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원자폭탄을 사용했어야 했느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원자폭탄을 만드는 순간 그 원천 기술은 새어나갈 수 밖에 없고 결국 미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로 충분히 확산될 수 밖에 없다. 전쟁 종식과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선택이 결국은 민간인에게까지 막대한 피해를 받게 된 결과를 초래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카운트다운 1945>의 기록을 통해 당시 절차와 과정 속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각 사람들이 결정했던 모습들을 읽어낼 수 있다. 이제 판단은 독자의 몫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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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한국사 질문사전 101가지 질문사전
권사라 외 지음, 이병익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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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나 초중고를 다녔다. 내 기억 상 역사공부는 고등학교 '국사' 교과를 통해 처음 접한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시중에 역사 관련 책들이 봇물 터지듯 나와 있고, 유튜브 채널에 관심 영역을 검색만 하더라도 각종 전문가들이 설명하고 있는 자료를 손쉽게 얻는 시대와는 동떨어진 시대를 살았다. 고등학교 때 접한 '국사'는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선사시대부터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역사를 지식으로 접해야 했다. 굵직굵직한 사건의 연대를 외우는 것은 기본이며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자잘한 역사 지식도 공부해야만 했다. 내 기억으로는 거의 대학교 사학과 수준의 디테일한 역사 지식도 거침없이 외워야만 했다. 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최대한 만점을 받아야했기 때문이다. '국사'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문제집을 풀어냈고, 난이도 높은 문제집에 나와 있는 논문 수준에 가까운 첨부설명을 읽으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희열과 남이 모르는 것을 알게 된 경쟁심에서 발로된 기쁨을 만낏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시험 결과는 역시나 기대 이상으로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지막지하게 외웠던 역사 지식의 양은 지금도 따라할 수 없을만큼 엄청났던 것 같다. 같은 반 친구인 김 아무개는 참 역사를 좋아했고 늘 상위의 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 역시나 그는 작년에 국회의원 지역구 후보 경선에 나올 정도였다. 탄탄한 역사 의식을 소유한 터라 앞으로도 기대가 되는 친구다. 

 

<101가지 한국사 질문사전> 책을 읽고, 느낀 바를 쓴다는게 그만 나의 과거사를 늘어 놓은 것 같다. 학창 시절 이후 본격적인 역사 공부는 각종 역사 관련 책을 읽으며 했다. 30대 후반에 읽었던 역사 책의 종류를 보면 이렇다. <숙종, 강화를 품다>, <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다산의 한 평생>, <중종의 시대> 등 인물을 집중적으로 서술한 책이거나 시대를 대표하는 사건 중심을 기록한 책들을 통해 역사 지식 뿐만 아니라 역사 의식을 점검해갔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역사 지식이 고리타분하다고 해서 건너뛰게 되면 역사 의식을 갖추기 전 역사를 멀리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집 둘째 딸아이는 시험 때문에 할 수 없이 역사 공부를 한다. 매번 하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없다고 한다. 우리 딸은 왜 역사가 재미 없다고 여길까? 아주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로 생각한다.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일게다. 그렇다면 역사에 흥미를 가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삶과 관련된 일만큼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것처럼 스스로 질문을 갖게 하거나, 또는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질문을 던지는 책을 만나도록 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101가지 한국사 질문사전>은 역사 지식을 외면하지 않았다. 단순히 흥미 중심으로 토막 지식을 전달하려는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른이 읽든 청소년이 읽든 충분히 호기심을 가질만한 질문을 던져 놓고 시작한다. 두꺼운 역사관련 책들을 보며 책장을 펼쳐보기도 전에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대반사다. <101가지 한국사 질문사전>은 많은 독자들이 역사에 쉽게 입문할 수 있도록 빈틈을 주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 형식의 돌직구를 던져 버린다. 가령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인기 애니메이션 영화 '뽀로로'가 남한과 북한의 협력 작품이었음을 독자에게 질문으로 던진다. "뽀로로가 남북협력으로 만들어졌다고요? ", "봉오동과 청산리 영웅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요?" 라는 질문은 중앙아시아로 끌려간 독립운동가들의 슬픈 사연을 소개한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다. "조선 시대에도 수능이 있었나요?", "신라의 삼국통일, 최선이었을까요?" 등과 같은 질문들을 생각하며 읽다보면 역사 의식에 접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역사를 통해 나의 위치를 돌아보게 된다. 역사적 사고를 통해 나의 행동과 판단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력을 가늠하게 된다. 역사를 통해 오랜 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과 선택과 행동에 깊이 감정 이입하게 된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역사적 의식이 부재한 사람이다. 오로지 '나'와 '현재'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세를 파악할 줄 아는 통찰력과 상대의 의중을 감지하는 관찰력은 역사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역사는 과거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보건대 <101가지 한국사 질문사전>을 통해 계속된 질문거리가 생기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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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하늘·땅·자연·몸에 관한 2천 년의 합리적 지혜
신동원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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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과학문명사란 무엇을 말하는걸까?

 

 

한국과학문명사는 하늘의 과학(천문학), 땅의 과학(지리학), 자연에 관한 과학(동물학, 식물학, 농학 등), 몸에 관한 과학(의학), 근현대 과학사까지 총망라한 포괄적인 영역을 다룬 학문을 과학문명사라고 일컫는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연구 책임자로 있는 신동원 한국과학문명학소장은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북대학교 과학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독자들이 보기에도 900쪽에 가까운 분량의 책이 부담스러울 것으로 생각되지만 막상 책장 한 장 한 장을 펼쳐보다보면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이면서 학창시절을 거쳐 사회인으로 생활해 오면서 역사와 과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이라면 익숙하게 들었을 내용을 좀 더 체계적으로 과학문명사 입장에서 전문적으로 정리해 놓은 책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책의 구성은 총 6부로 되어 있으며, 1부는 천문학을 다루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천문에 관한 다양한 유물 유적을 다루고 있다. 단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첨성대 처럼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유물 유적에 대한 기본 상식을 깨는 주장들을 만나게 된다.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니라 관련 문헌과 여러 추정들을 신빙성 있는 자료들로 보완하고 있어 귀가 쏠깃해 질 것이다.

 

 

특히, 조선 시대에 중국의 수학을 뛰어넘은 세계적인 수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바로 조선 수학의 신, 홍정하. 그는 대대로 중인의 혈통을 이어온 가문에서 자라났으며 친가 외가 모두 산학(수학) 직업을 가진 가족력으로 일치감치 수학자로 대성할 수 있는 기본이 되어 있었다. 중국의 대수학자 하국주와 수학 문제를 겨뤄 이견 낸 장본인이 바로 홍정하였다. 조선 수학의 자존심, 홍정하는 후손들에게 전할 산학 입문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조선의 실정에 맞게 문제를 바꾸고 풀이 과정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씌었다. 홍정하는 산학 실력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산학을 가르치는 일에도 탁월한 학자였다.

 

 

2부에서는 우리의 땅에 대해 다루고 있다.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는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분철식으로 되어 있다. 본인이 가고자 하는 지역이 있다면 그 지역이 나온 부분만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제작했다. 백성의 눈높이에서 만든 지도다. 산의 높고 낮음 뿐만 아니라 거리도 10리 단위로 점을 찍어 나타냈다. 지도를 사용하는 백성들의 생활이 편리해 질 수밖에 없었다.대동여지도는 백성들에게 저울과 같았다.

 

 

3부에서는 우리의 자연에서 농사를 짓고 다양한 동식물을 연구한 기록들을 담아냈다. 그 중에서 <자산어보>를 통해 바다의 생물을 분류한 정약전의 기록은 유배 가운데 연구한 것이라 의미 심장하다. 정약전은 정약용과 함께 사학에 물들었던 무리로 취급되어 겨우 목숨을 건지고 유배형을 받는다.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약전은 흑산을 자산으로 부르기를 좋아했다. 玆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며 黑은 너무 캄캄하다는 뜻이다. 흑산은 유배지라는 걸 끊임없이 깨우치지만 자산은 희미하지만 빛을 느끼게 해 준다. 흑산의 물고기는 모두 자산의 물고기였다.

 

 

4부는 유서 깊은 우리의 법의학과 한의학을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 법학의학서인 <신주무원록>에는 목을 매서 자살한 것과 타인에 의해서 목이 졸려서 죽은 시신의 증상에 대해서 상세하게 나와 있다. 다산 정약용이 형조참의로 있던 어느날, 임금이 총애하는 규장각의 검서관들은 밤낮으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어느 순간부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실학자인 정약용에게는 명탐정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곡산 부사 시절에는 현장을 직접 살펴보고 관련자들을 심문해서 범인을 찾아냈고, 형조참의로 임명된 이후에는 관련 문서를 통해서 진실을 밝혀낸 것이다. 동의보감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임진왜란 중에 선조 임금의 명령으로 허준이 오랫동안 집필한 책이다. 허준은 인간의 몸을 우주로 보았다. 백성들이 스스로 질병을 다스릴 수 있게 처방전을 써 놓았다. 사상의 근간은 사주팔자, 명리학과 같이 사람의 모든 문제는 자신 안에 있다고 한다.

 

 

5부는 창의성의 결정체인 기술과 발명을 다룬다. 성덕대왕 신종, 석불사(석굴암), 고려청자, 금속활자, 한지, 화약과 화포, 거북선, 수원 화성, 석빙고, 온돌, 훈민정음 등 세계과학문명사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과학문명의 결정체를 상세히 조사해 놓고 있다. 6부는 근현대 과학사를 다룬다.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개항기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때에도 과학기술을 향한 발전은 멈추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2천 년 한국과학문명사를 한 권에 망라한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를 역사에 입문할 기초서적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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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서양고대사 -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문명부터 서로마제국 멸망까지
정기문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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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시대를 서양 역사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찬란했던 문명의 이면에는 문명을 있게 만든 마중물이 있어야 한다. 저자는 황금기를 자랑했던 그리스, 로마 문명의 모태라 말할 수 있는 고대사를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책의 부제처럼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은 고대사의 근간을 이룬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의 배경이 바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물, 유적들을 통해 고대의 역사를 들춰낸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서양고대사>의 일독 뿐만 아니라 곁에 두고 찬찬히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물론 고고학자들 간에 다소간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다양한 연구물을 통해 좀 더 폭넓은 고대사의 감춰진 역사를 알 수 있으며 깊은 우물에서 길어낸 단물을 통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을 새롭게 할 수 있으리라 기대가 된다.

 

학창시절에 구구절절 외웠던 세계 문명 4대 발상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지금은 사막 지형으로 변형되었지만 문명 당시만 보더라도 목축과 유목, 농사 짓기에 적합한 지역이었기에 사람들이 모여 도시를 이루며 문명을 일궈 낼 수 있었다. 문명이라는 낱말의 어원은 도시에서 비롯된 것을 보면 메소포타미아는 중동 근방에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라는 천혜의 자연 환경으로 일치감치 사람들을 유인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4대 문명 발상지 답게 그들의 문자가 통용되었다. 일명 '쐐기문자' 다. 그들이 쐐기 문자를 통해 남긴 문자가 비문에 남겨져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으며 고고학자들을 통해 드디어 해독되기 시작되었다. 특히 구약 성경의 이야기 중 하나인 노아의 방주 사건과 유사한 내용이 담긴 길가메쉬 서사시는 당시 문명을 해독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인도 문명과 비슷한 환경에 놓였던 메소포타미아에서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이 이끄는 군대가 패배한 이유도 전염병의 역사에서 찾고 있으며 문자로 기록된 자료인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쉬' 서사시에도 대홍수보다 전염병의 재앙을 잘 묘사하고 있다.<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윌리엄H. 맥닐>

 

길가메쉬 서사시는 실존했던 인물인 갈가메쉬라는 왕의 모험담을 전한다. 다양한 부족과 민족의 부침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일어났다. 그 중 히브리인이라고 불리는 민족은 원래 종족이 아니라 특수한 신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낮은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켰던 히브리인들은 결국 거대한 민족을 이루었고 가나안 지역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다. 다만, 바다 사람이라고 불리운 블레셋(필리스티아)은 히브리 민족을 위협하는 최대의 복병으로 부상했다.

 

바빌론과 페르시아 제국의 흥망성쇠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결을 같이 한다. 에게해 문명으로부터 시작된 고대 그리스는 수 많은 철학자를 배출하였으며 민주주의 시작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영원한 제국이 없듯이 그리스 제국도 분열되었지만 분열 뒤에는 새로운 문명을 싹틔우게 했으니 바로 헬레니즘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대전제가 아직도 모든 사람의 귓가에 남아 있듯이 로마 제국은 전무후무한 신기록을 세우며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물론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에서 시작된 내공이 차곡차곡 쌓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명은 제국을 만들고, 제국은 또 다른 문명을 잉태케 한다. 서양 고대사의 본류를 찾아 독자들이 탐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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