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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히스토리 -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평점 :
1986년 4월 26일 소련(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함께 원전 원천 기술을 보유한 첨단국가였다. 소련의 전기 생산량 대부분을 원자력에서 얻어냈기에 소련에서 원전 관리는 에너지관리부를 넘어 당 차원,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관리하였으며 세세한 관리는 KGB에서 감시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원자력 성과에 따라 담당자는 영전과 훈장을 받게 되었고 최악으로는 유배형에 처해지거나 죽음까지 각오해야 할 상황이었다. 원전을 관리하는 시스템 자체가 폐쇄적이고 위협적이었기에 체르노빌 원전에서 발생한 위험요소를 인지하고 보고하기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처리할 분위기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체르노빌 히스토리>에서 밝혀내고 있다.
"한 공급자가 공급한 자재의 70퍼센트가 불량품이었다" (80쪽)
체르노빌 원전 공사에 들어가는 부품 자체가 대체로 불량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공산국가였던 소련은 생활필수품 조차도 넉넉치 못한 상황이었다. 당 간부들 조차도 배급이 원활하지 못했다고 전해 오고 있다. 다만 체르노빌 지역과 같은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는 특별 공급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원전 공사에 참여하는 노동자들과 인력들의 노고를 나름대로 치하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원전 공사에 들어가는 관급 공사 자재가 원활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들어 상황을 진술하고 있다. 첫째, 체르노빌 반경 주위의 시설을 확충하고자 원전 공사에 들어가는 자재들이 전용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둘째, 안전 의식 불감증으로 정확한 자재 대신 값싼 자재로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헛된 자신감이 당시 책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는 점이다. 사고는 결국 인재였다는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 그러나 권력 싸움의 한복판에서 VVER 원자로는 RBMK 원자로에 밀렸다. RBMK 원자로는 핵반응 제어를 위해 흑연을 쓰고 냉각재로 물을 사용했으며, VVER 원자로 생산량의 2배인 1000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했다"(83)
당시 체르노빌 원전 공사 전에는 대부분 소련이 보유하고 있었던 원전은 VVER 원자로였다. 중성자 감속에 물을 활용했던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체르노빌 원전은 전기 생산량의 확대에 이점이 있다는 이유로 중성자 감속에 물 대신 흑연을 사용하는 RBMK 원자로를 택했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을 택한 것에 비해 관리를 할 수 있는 노하우와 경험들이 축적되지 못한 상태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변론을 펴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지만, 이들은 침묵을 강효당하거나 무시되었다" (84쪽)
원전 공사 책임자 뿐만 아니라 함께 관여하는 사람들의 언로가 막혔다는 사실은 끔찍한 재앙을 막을 방법을 놓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주기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거나 아예 침묵을 강요한 이유는 당 차원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될 경우 보너스 뿐만 아니라 승진에도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원인들을 상부에 보고하기를 꺼려했다. 이런 조직 시스템이 사고를 불러오게된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