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책은 ‘앉아서 유목하기’를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이다. 여행이 ‘몸으로 읽는 책’이라면 책은 ‘마음으로 하는 여행’이다. 그것도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멀리까지 갈 수 있는 여행이다. 돈이 없어도, 몸이 불편해도, 외국어를 못해도, 날씨가 나빠도, 용기가 부족해도 가능한 여행이 또 있을까. 세상을 향해 열린 깊고도 넓은 이 문을 통해 나는 오늘도 낯선 세계로 발을 디뎌본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앞날이 걱정된다고 했소? 난 어제 일은 어제로 끝나오. 내일 일을 미리 생각하지도 않소. 나한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뿐이오. 나는 늘 나에게 묻소. ‘자네 지금 뭐 하나?’ ‘자려고 하네.’ ‘그럼 잘 자게.’ ‘지금은 뭘 하는가?’ ‘일하고 있네.’ ‘열심히 하게.’ ‘지금은 뭘 하고 있나?’ ‘여자랑 키스하네.’ ‘잘 해 보게. 키스할 동안 다른 건 모두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자네와 그 여자밖에 없는 걸세. 실컷 키스하게.’”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그를 향한 평생의 외사랑을 끌어안게 되리라는 것을. 조르바가 될 수 없는 나는 오늘도 조르바 같은 친구 하나를 감히 꿈 꾸어본다.



생의 한가운데 / 루이제 린저  


“그녀는… 거짓말하지 않고도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본인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오. 재미있지요. 그러나 어려운 거죠. 아무데서나 충돌하고, 구설수에 오르고, 항상 극단으로 치닫는 당돌한 존재요.”


부딪혀 터져버릴지언정 단 한 순간도 삶과 타협하려 하지 않았던 주인공 니나는 20대의 나에게는 위안과 같은 존재였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 호시노 미치오 


“뺨을 어루만지는 북극 바람의 감촉, 여름철 툰드라의 달콤한 냄새, 백야의 희뿌연 빛, 못보고 지나칠 뻔한 작은 물망초…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에 마음을 조금 얹어서 오감의 기억 속에 남겨놓고 싶다. 아무것도 낳지 않은 채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소중하게 누리고 싶다. 경황없는 세상의 삶과 평행을 이루며 또 하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을 마음 어디에선가 항상 느끼면서 살고 싶다. 그런 것들을 언젠가 내 아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담백하고, 올곧은 성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아름다운 글. 언젠가 이런 여행기를 쓰고 싶다는 턱 없는 욕망을 품게 한 책. 그리고, 언젠가는 카리부를 만나기 위해 알래스카에 가겠다는 꿈도 남겨주었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 헬렌 니어링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기’ ‘ 덜 갖되 더 충실하기’를 실천한 헬렌과 스콧 부부의 이야기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을 일러준, 30대의 나를 뒤흔든 책이었다.



노 임팩트 맨 / 콜린 베번 


‘52인치 텔레비전을 사놓고 전시용을 싸게 샀으니 소비지상주의에 반기를 들었다고 생각하는 그런 남자’가 뉴욕 한 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살겠다며 실험한 이야기. 세상을 바꾸려고 애쓰는 일은 자신을 바꾸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책은 킥킥 웃음이 터질 만큼 재미있다는 미덕도 갖추고 있다.      




추천인 : 김남희 (도보여행가) 


여행작가. 서른넷에 방을 빼고 적금을 깨 배낭을 꾸린 후 지난 10여 년간 세상 구석구석을 걸어 다녔다. 2010년, 오랜 친구이자 스승인 쓰지 신이치와 삶의 방향과 속도를 고민하고 분발하지 않는 삶을 사는 부탄과 한국, 일본의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에 나가 외로운 이들을 만나던 그녀는 이제 단 한 사람과 옥상 텃밭을 가꾸며 ‘책 읽고 글쓰는’ 심심한 날들을 꿈꾼다. 가진 것 없어도 아낌없이 나눠주었던 길 위의 사람들처럼 자신도 빈약한 수입의 10퍼센트는 여행하는 나라의 아이들을 위해 쓰고 있다. 



김남희 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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