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책은 완벽한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는 기원이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지 않는 나약한 자도, 타향을 고향으로 만드는 강인한 자도 아닌, 자기 자신만으로 오롯이 자유로운 ‘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책 읽기이다. 초여름 서늘한 할머니 댁의 대청마루에 엎드려 읽던 동화책에서 컴컴한 영국의 겨울밤에 노란 전깃불만이 빛나는 기숙사 방에서 넘겨봤던 두꺼운 철학책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책은 소멸해버릴 것만 같았던 나의 존재를 지상에 깃들게 만들어준 거대한 뿌리였다.  
   


16세기 문화혁명 / 야마모토 요시타카

이제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서구 근대성의 형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흥미로운 책. 우리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지금 여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담론의 터전을 파악해야하는 법인데, 이 책보다 더 포괄적이고 재미있게 그 배경을 설명해주는 책은 없다.


민주주의의 모델들 / 데이빗 헬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 민주주의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책. 모든 지식은 비교를 통해 발생하는 것이고, 따라서 지은이가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모델들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의 모양새가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자본주의 / 홍기빈

자본주의에 대한 치우치지 않은 개론서. 우리는 화성도 아니고 안드로메다도 아닌 지구라는 곳에서, 그것도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면서 살고 있다. 도대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라는 현실을 빼놓고 이야기하는 도덕이나 법이나 아름다움이나 행복 따위는 모두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다.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 염운옥

근대성의 논리에 깊숙이 침윤되어 있는 우생학의 그림자를 추적하는 작지만 단단한 책. 신자유주의의 자기계발담론에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적으로 작용하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영국에서 시작한 우생학이 오늘날 자기관리의 생명정치로 발전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논의되고 있다.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 김용석

철학적 사유의 진수를 보여준 김용석의 문화론. 철학을 단순하게 교양지식으로 소비하지 않고 사유로 녹여 넣고 싶다면 읽어볼 만하다. 영혼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반찬이다.



남미를 말하다 / 김영길

우리에게 머나먼 미지의 땅 남미의 현대사에 대한 본격 소개서. 미국과 유럽 편향의 역사관을 바로잡을 수 있는 생생한 기록들이 평이하게 기술되어 있다. 체 게바라를 흠모하고 탱고 음악을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서 진정 남미인의 영혼을 탄생시킨 사회적 매트릭스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추천인 : 이택광

문화비평가, 경희대학교 대학원 영미문화전공 교수.
부산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워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셰필드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에서 문화이론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씨네 21』에 글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화비평을 시작한 이후, 미술, 영화, 대중문화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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