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좋은 작품은 내게 와서 내가 결코 되찾을 수 없을 것을 앗아가거나 끝내 돌려줄 수 없을 것을 놓고 간다. 책읽기란 그런 것이다. 내게는 그 무엇도 이 일을 대체하지 못한다. 
어떻게 아무 기준도 없이 그 많은 책들 중에서 몇 권을 골라낼 수 있단 말인가. 세 개의 기준을 정하기로 한다. 첫째, 소설일 것. 둘째, 시적일 것. 셋째, 짧을 것.
이 기준에 충실히 부합하는 작품 여섯 개를 골랐다. 이 소설들은 거의 완전무결한 축복이다. 소설을 써야 한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 세상에 나온 순서대로 나열한다.  
 
   



달에 울다 / 마루야마 겐지

언젠가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가장 아끼는 문장을 제시해 보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나는 이 세상에는 ‘불의 문장’과 ‘물의 문장’이 있다고 전제한 뒤에 청년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과 마루야마 겐지의 이 소설을 (그중에서도 82~3쪽을) 내밀었다. 전자를 읽으면 정신이 타고 후자를 읽으면 영혼이 젖는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내게는 ‘마르크스 그리고 마루야마’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 /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이 소설의 번역자인 김화영 선생의 말씀. “책을 다 읽고, 그 후 몇 번이나 다시 읽고, 그리고 번역을 하고 마침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 짧은 문장들 사이에서 배어나오는 기이한 적요함, 거의 희열에 가까울 만큼 해맑은 슬픔의 위력으로부터 완전히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은 지 십년이 됐지만 나 역시 아직도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내 눈으로 읽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소설이다.


어제 / 아고타 크리스토프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두 번 칼을 드는데, 한 번은 남자의 등에, 또 한 번은 다른 남자의 배에 찌른다. 그러나 누구도 죽지 않는다. 이것이 이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삶에 난자당하며 겨우 성장하는 불행한 아이들이 제 아무리 칼을 휘둘러도 삶은 베어지지 않는다는 것. 칼로 사람을 찌르는 장면이 슬프게 느껴진다는 것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세계 안에서는 특별한 일도 아니다. 이 작가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최소한의 문장으로, 가장 강렬한 감정을 창조하여 독자를 베어버린다.   


철수 / 배수아

그녀의 소설에는 상투적인 인물, 상황, 대사, 통찰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배수아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 상황, 대사, 통찰은 오직 배수아의 소설에만 나온다. 그래서 배수아는 하나뿐이다. 1988년이 배경인 이 독한 ‘계급적 연애소설’에 ‘철수’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얹을 사람이 또 있을까. 
그리고 배수아의 문장이 번역 투라는 한물간 비난을 아직도 멈추지 않는 분들에게 한 마디. 그녀의 소설에는 ‘상투적으로 자연스러운’ 문장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문학은 어학이 아니다. “뛰어난 작가는 모국어를 외국어처럼 사용한다.”(프루스트)


로마의 테라스 / 파스칼 키냐르

이 작가의 다른 장점들이 더 많이 칭송되고 있지만 그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낼 줄 아는 작가이기도 하다. 키냐르의 책 중에서 한국독자들에게 가장 덜 읽힌 작품이지만 나는 그의 다소 실망스러운 근작들보다 이 책을 더 아낀다. 이 소설보다 더 짧은 이야기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의 2부를 권한다.



백의 그림자 / 황정은

이 책의 끝에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자가 쓴 변변찮은 ‘해설’이 붙어 있는데, 글의 제목이 「백의 그림자에 붙이는 다섯 개의 주석」으로, 보시다시피 꽤나 삭막하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과 ‘살아간다면 이들처럼’이라는 두 제목을 놓고 고민하다가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어서 둘 다 포기해 버렸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이 소설에 상처를 주게 될 것 같아서였다. 차라리 둘 다 쓸걸 그랬지. 이 소설 앞에서는 뭔가 그렇게 막 조심스러워진다는 얘기다.


   
  epilogue...   

여섯 작품을 골라놓고 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이들은 ‘하는 법’ 말고 ‘하지 않는 법’을 아는 작가들이다. 말하지 않고, 쓰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최대한의 것을 이뤄내는 이들이다. 왜 이렇게 긴 글을 썼냐는 물음에, 짧게 쓸 시간이 없었노라고 대답한 지혜로운 작가가 누구였더라. 그러니 이 소설들이 짧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들은 짧게 쓰는 데 성공한 것이다.
 
   


추천인 : 신형철

문학평론가. 1976년 봄에 태어나 1995년 봄부터 십년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했고 2005년 봄에 문학평론을 쓰기 시작했으며 2007년 여름부터 계간 『문학동네』의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고 2008년 겨울에 첫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를 출간했으며 2011년 봄 현재 몇 군데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며 긴 평론과 짧은 칼럼을 쓰고 있다. 2011년,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를 출간했다.  



신형철 님의 저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