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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지켜보면서, 세계를 조금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일.
너로 인해 나를 돌아보고, 너머를 통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둘러보는 일.
결국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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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의 그림자 / 황정은
신형철 평론가는 작품 해설에 이렇게 적었다. ‘고맙다. 이 소설이 나온 것이 그냥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단언하건대,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다. 진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말 고마운 소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 여자의 자서전 / 김인숙
다만, 그저, 삶일 뿐이다. 그저 살아야 했으므로 허무할 겨를도 없다. 슬플 겨를도, 아플 겨를도,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다. 왜냐하면 또 오늘을 살아야 하니까. 소설 속 인물도, 그 인물을 응시하는 나도, 당신도,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오래전부터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억울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살아야 한다. 설렁탕 밑바닥까지 긁어먹듯이,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 죽도록 잊고 싶은 기억도, 죽도록 버리고 싶은 과거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가장 잘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 기억해야 한다.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그 인물을 그려낸 작가의 시선처럼, 그 시선의 끝에 결국 흐르게 되는 짠 눈물처럼, 살아야한다. 살아야겠다.
분홍 리본의 시절 / 권여선
여기 허름한 인물들이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인물, 누구도 기억해주지 못하는 인물들, 가진 것도 없으며 내세울 것도 없는 이들, 빛나지 않고 윤기나지 않는 이들이 소설 속에서 걸어간다. 그들의 걸음걸이마저 허름하여 그들은 그림자마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엄연히 우리들의 이웃이며 나의 친구이며 나이기도 하다.
어느 평론가는 그런 말을 했다. 소설은 도심의 시멘트 바닥 틈새에 자라는 민들레와 같아야 한다. 딱 그만큼의 의미를 지니고, 딱 그 만큼으로 존재해야 한다. 이 소설집의 소설들이 그런 소설이 아닐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속의 문장은 이것.
‘살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게 문득 공포스러워.'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 윤대녕
아름다운 소설을 읽는 동안
행복하게 고독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아고타 크리스토프
‘우리는 발가벗었다. 서로의 알몸을 혁대로 갈겼다. 맞을 적마다 말했다.
ㅡ 하나도 안 아프다.
우리는 점점 세게, 더 세게 때렸다. 우리는 불꽃 위로 손을 스쳐갔다. 우리는 허벅지, 팔, 가슴 등을 칼로 찔러 상처를 낸 뒤 그 위에 알콜을 부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말했다.
ㅡ 하나도 안 아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우리는 정말 감각이 없어졌다. 아픈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화상을 입고, 칼로 베이고, 고통 받는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는 이제 울지 않는다.’ - 상권, p.19
내가 소설 속의 주인공을 자꾸 극한으로 내몰고, 건조한 문장으로 진술하는 건, 이 소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WOMAN-최민식 사진집 / 최민식, 천양희 외
여자가 있다. 벌거벗어 잠지를 드러낸 여자 아이도 있고, 길바닥에 분필로 낙서를 하며 노는 여자 아이도 있다. 지하철 의자에 앉아 고개 숙이고 공부하고 있는 소녀도 있고, 함박웃음을 짓느라 눈이 사라진 소녀도 있다. 남자 친구와 키스하는 여자도 있고, 비닐을 뒤집어 쓴 채 시든 생선을 파는 자판의 여자도 있고, 비키니를 입고 해변을 걷는 여자도 있으며, 길거리에서 점을 보는 여자도 있다. 결혼하는 여자, 몸을 파는 거리의 여자,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 담배 피우는 여자, 춤추는 여자, 일하는 여자, 수다 떠는 여자들도 있으며, 성하지 않은 신체를 가진 여자도 있고, 미인대회에서 상을 받는 여자도 있다. 기도하는 여자도 있으며 두 팔에 쌍둥이를 안고 두 개의 빈 젖을 물리고 있는 여자도 있다. 제 몸의 몇 배는 되는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노파도 있고 살아온 세월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주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 빠진 노파도 있다. 이 나라 여자들도 있고 다른 나라의 여자들도 있다. 어린 여자와 성년의 여자와 늙은 여자들이 있다.
세상의 유일한 여자들이며,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다.
사찰 꽃살문 / 이내옥 글, 관조 스님 사진
책속의 나무꽃들에 마음이 뺏겨 무작정 떠나던 때가 있었다. 진짜 나무꽃 앞에 서서, 그 결을 만지다 하염없이 서러워지던 젊은 시절이었다. 요즘처럼 일상이 허락하지 못하는 나날에는 더 자주 펼쳐본다. 그럼 어느새 경내를 걷고 있는 내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멀리 처마 끝의 풍경소리가 들리고, 먼 산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의 움직임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그저 실컷 울고 싶을 때마다, 이 책을 꺼낸다. 무엇이든 마음을 기댈 데가 있다는 건 다행이다.
진짜 살아 있는 나무꽃 같아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손으로 쓰다듬는다.
아름다움 앞에서는 어쩐지 눈물이 난다. 그 대상이 조용하고 노쇠할수록 아름다움은 더 깊어진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 / 하세가와 요시후미
내가 라면을 먹을 때, 누군가는 생을 놓는다. 그 때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었다.
세상은 하나인데, 왜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사는 걸까. 내가 거기로 갈 수 없고, 거기에 있는 네가 이리로 올 리 없다. 계급은 섞이지 않고, 격차는 좁혀지지 않으며, 계층은 확고하다. 불합리와 부조리는 언제나 내 곁을 맴돈다. 그 때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었다.
프레드릭 / 레오 리오니
우리에게 문학이 왜 필요한지 알려주는 가장 쉽고 친절한 이야기. (프레드릭의 붉은 볼과 ‘나도 알아’라는 대사는 정말,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번외. 김이설 작가의 두 딸이 추천하는 아이들 책
셜리야, 목욕은 이제 그만! / 존 버닝햄
일곱 살 큰아이에게 좋아하는 그림책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엄마가 책을 추천하는 원고 청탁을 받아서, 네가 좋아하는 책도 함께 소개하고 싶다고 설명했더니, 열심히 책장 앞을 서성인다. 맨 처음 골랐던 책은 동물도감. 이야기가 있는 책으로 다시 골라달라고 했더니, 존 버닝햄의 책들을 꺼낸다. <셜리야, 물가에 가지 마!>와 한참 갈등하더니, 결국 이 책으로 결정. 이유가 뭐냐 물으니.
“엄마는 계속 잔소리를 하고, 셜리는 엄마 말 안 듣고 신나게 상상 나라에 가는 것이 재미있어!” 요 근래 나의 잔소리에 ‘무슨 말인지 아니까, 잔소리 좀 그만 해!’ 라고 앙칼지게 소리 지르던 것이 떠올랐다. (...) 엄마가 잔소리를 할 때 너도 셜리처럼 이런 상상했니? 라고 묻지는 못했다.
이상한 나라에 간 파울라 / 에바 무겐탈러 그림, 파울 마르 글
아이는
‘파울라가 도망치려고 세우는 작전이 너무 재미있어!’ 라는 이유를 댔다. 재미가 전부! 그거면 족하다.
심심해서 그랬어-도토리 계절 그림책 시리즈 여름 / 윤구병
언니 따라서 30개월 둘째도 엄마에게 책을 내민다. ‘도토리 계절 그림책 시리즈 (<우리 순이 어디 가니>, <심심해서 그랬어>, <바빠요 바빠>, <우리끼리 가자>)’ 네 권 모두 참
즐겨 읽어주는 책들이다.
추천인 : 김이설
197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열세 살」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나쁜 피』(2009), 『환영』(2011),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2010) 등이 있다.
김이설 님의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