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나는 책을 쓰는 사람 이전에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자연을 알고 마을 사람들을 알고 그리고 책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알아가며 나의 말이 생각났다. 세상을 향한 내 생각이 말이 되어 책으로 가 담겨졌으니, 책은 나의 집과 같다. 그러므로 나에게 책은 전우주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하나다. 강가에 핀 한 떨기 풀꽃이요, 바람 부는 강물 위의 잔물결이다. 사랑이요 이별이며 삶이고 죽음이다. 시작이요 끝이요, 슬픔이며 기쁨이고 고통이며 행복이다. 나에게 책은 나를 살리는 밥과 같다. |
|
|
|
|
강가의 아틀리에 / 장욱진
나는 이 책에서 이 구절을 지금도 좋아합니다.
“나는 심플하다. 때문에 겸손보다는 교만이 좋고 격식보다는 소탈이 좋다. 적어도 교만은 겸손보다는 덜 위험하며, 죄를 만들 수 있는 소지가 없기 때문에, 소탈은 쓸데없는 예의나 격식이 없어서 좋은 것이다.”
이 말에는 선생님의 모든 삶의 내용이 다 담겨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세상에 대한 아무런 두려움도 부러움도 거리낌도 없는 자유인만이 말할 수 있는 이 ‘교만’을 나는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새 근원수필 / 김용준
오래전 일입니다. 나는 어느 날 헌책방엘 갔습니다. 책들을 둘러보다가 아주 작은 문고판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책이 『근원수필』이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1948년에 만들어진 수필집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이 책은 이렇게 저렇게 새로 만들어지다가 몇 년 전에 『새 근원수필』이라는 책으로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내 나이만큼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수필의 격과 그 품위가 전혀 낡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세월이 갈수록 그의 글이 더욱 빛을 발합니다. 소소하고 사소한 일상이 이렇게 빛나는 글이 되기도 흔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수필의 정수지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감옥이 어떤 곳입니까. 감옥은 사람을 가두어두는 곳입니다. 그러나 감옥이 사람의 영혼까지는 가두지 못하지요. 수많은 양심수들이 감옥 안에서 공부를 하고 글을 썼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 80년대에 수많은 양심수들이 감옥에서 밖으로 글을 써 보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글들을 썼습니다. 양심을 버리지 않고 간직한 이들이었기에 그들의 글은 한치의 거짓과 허튼 수작이 없습니다. 특히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마치 아주 오래된,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우리 마음속에 본래 있었던 생각들을 가만가만 조심조심 길어올린, 맑은 영혼을 다듬고 다듬어 세상에 내보낸 말 같습니다. 그렇게나 잘 다듬어진 생각을 일찍이 난 보지 못했습니다. 다시는 더 덧붙일 말이 없는 글을 그는 바위에 새기듯 새겼으니까요. 종이에 쓴 게 아니라 마음에 새긴 글들이 바로 이 책입니다.
김수영 전집 2 : 산문 / 김수영
나는 그의 글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의 글에는 허튼 수작이 없습니다. 그의 생각은 세상과 한치의 어긋남이 없습니다. 어찌나 현실과 짱짱하게 대결하든지,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숨이 차올라 푸 하고 숨을 몰아쉬고 다시 글을 읽어야 합니다. 살면서 마음이 느슨해지거나, 마음이 어지럽거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나는 그의 일기와 산문 들을 아무 곳이나 펼쳐듭니다. 그의 치열함이, 지식인으로서 끝까지 비판의식을 놓지 않았던 그의 글들이 오늘날에도 현실과 긴장을 불러일으킵니다.
토지 / 박경리
소설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얼마나 우리 현실 속에 살아 있는 인물이냐, 즉 우리 이웃에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소설의 평가가 달라지겠지요. 왜냐하면 우리 이웃에 사는 ‘김씨’는 참으로 복잡하거든요. 소설 『토지』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주는 인물들이 그 소설 속에는 많습니다. 윤보 목수, 용이, 월선네, 임이네, 기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인물들이 마치 우리 이웃에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가까이 그 숨소리가 들립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민초들의 삶을 그 소설만큼 생생하게 그려낸 책도 드뭅니다. 이 책은 역사 속에 묻혀 있는 박제화된 인물들을 펄펄 살려냈습니다.
추천인 : 김용택
섬진강 연작으로 유명하여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칭이 있다. 대상일 뿐인 자연을 삶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한 그는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그는 순창농고 졸업 후 그 이듬해에 교사시험을 보고 스물한 살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교직 기간 동안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임실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썼다.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읽고 문학에 첫 관심을 가졌으며 박목월·이어령·서정주 등의 전집을 읽었다. 그는 발레리 시 중에 '바람이 분다/살아 봐야겠다'를 늘 가슴에 새겨두고 삶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다. 김수영의 《풀》을 읽고 작은 풀을 간단하면서도 정확한 느낌으로 표현한 것을 보고 놀란다. 이때부터 김수영을 비롯하여 박용래, 김종삼, 황동규의 시에 심취했다. 이성부의 시집과 《해방전후사의 인식》, 잡지《문학과 지성》 《창작과 비평》을 읽고 역사와 문학에 눈뜨게 되었다.
1982년 창비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 외 8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맑은 날'로 제6회 김수영문학상을, 1997년 제12회 소월시문학상을, 2002년 제11회 소충사선문화상을 수상했다. 2008년 여름, 고향 마을 임실의 덕치초등학교에서 40여 년간의 교단생활을 마치며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를 펴냈다.
* 김용택 대표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