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페이퍼를 신나게 써놓고 지웠다. 잔뜩 내일 계획을 적어두었는데, 아마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채 두시간도 되지않아 급습해서 기분이 나빠져버리고 말았다. 일찍 잘 예정이었으나 [닥터후]를 중간에 버리고 어제 새로 시작한 [사만다 후]를 미친듯 흡입해버리며 밤이 늦도록 끊지 못하는 나자신을 발견하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닥터후]는 시즌1에서의 닥터(왼쪽)가 얼굴만 바뀐다는 설정으로 시즌 2에서는 훈남 닥터(오른쪽)로 바뀌어서 나온다. 객관적으로 봐도 시즌1의 닥터가 조금 늙고 못생긴건 분명하지만 나는 시즌1의 닥터에 정이 든 나머지 도무지 시즌 2의 닥터에는 몰입을 할 수가 없다. 특히 캡쳐해둔 입이 세모가 되는 것만 같은 저 웃는 모습은 너무 매력적이다. 다른 사람은 오히려 시즌1은 안보고 시즌2부터 본다던데,, 배우에게 정을 주는 건 여러모로 쓸모 없는 짓 같다.
어제 하루동안 시즌1을 대부분 끝내버린 [사만다 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언제부터?;;;)의 따뜻하고 웃긴 시트콤인데 소위 잘나가던 bitch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예전의 자기를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만약 눈을 떴을 때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난다면 난 과거를 되찾으려고 할까, 아니면 새롭게 다시 살려고 할까? 이왕이면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나'가 모든걸 엎어버리고 다시 살고 싶어할만큼 엉망진창인 삶을 살아볼까 싶기도 하다. ㅎㅎㅎㅎ 되돌아보니 너무 평범해서; 꼭 기억상실증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요즘은 마음이 참 허하다. 게다가 좀 기분나쁜 일까지 있어서. 예전에 호주에서 지낼 때 한국인들을 피했던 이유가 엮이면 뒷담화가 자동적으로 생겨나고, 또 내 귀에까지 그게 들려오는데, 이것도 짜증나고 안들리는 더 심한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도 짜증나서 아예 상종을 안했는데 이 모든걸 다 잊고 있었던거다. 해골물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으니.. 아멘. 뭔가 친한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요즘 자꾸 컴퓨터에 매달리게 된다. 이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어디에서부터 끊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하하 요코미조 세이시 이사람은 항상 무서워 죽겠다는 말투로 이 때 어쨌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하면서 엄청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처음에 이런 구절을 읽을 때는 긴다이치 코스케처럼 '수상한 두근거림과 등줄기를 꿰뚫는 전율을 금할 수 없었' 는데 이런게 하도 반복되다 보니 이런 구절을 읽을 땐 슬며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사람 죽어나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웃는 건 좀 괴이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유머라도 없으면 어떻게 그런 이야길 계속해서 읽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한국에서 책이 왔다. 두둥.
예전에 신x에서 하이드님과 양꼬치에 소주를 먹으며 하이드님이 위풍당당하게 '너의 교고쿠도는 내가 책임지마.'라고 고맙게도 선언해주셔서 무려 DHL로 한국에서 첫 택배 도착. (절친도 가족도 아직 보내주지 않았는데 ㅠㅠ 감동 ㅠㅠ 근데 생각해보니 어째 다 일본 추리소설 ㄷㄷㄷ) 하여간 땅덩어리 넓은 나라에서 택배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인데, 대강 문 두드려보고 대답 없으면 전화도 없이 오피스로 찾으러 오라는 메모 쪼가리 하나 덜렁 남겨 놓고 가버린다. 어디 오피스인지 주소도 없음 -0- 그렇게 힘겹게 찾아온 [철서의 우리]와 [여왕벌]!! 처음 책을 펴니 쏟아지는 한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라;;;
오매불망 기다리던 [철서의 우리]는 감히 펴볼 생각도 아직 못했는데, 상권은 왜 포장이 안되어 있나요;; 쳇 손안의 책에서 나온 책은 모두 랩으로 싸여 있어서 은근히 찢는 맛이 있는데 상권만 포장이 안되어 있어서 괜히 기분이 나쁨. 파본이면 울거다. 여튼 이렇게 교고쿠도의 컬렉션은 완성이 되었고.. 두근두근 얼른 한국 가져가서 책장 한칸에 좌르륵 다 꽂아놓고 싶어 죽겠다. ㅋㅋ
그리고 [여왕벌]은 내가 좋아하는 코드인 부자, 귀족, 미인 코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어서 신난다. 아침에 눈 뜨면서 [여왕벌] 읽을 생각에 두근두근 하지만 책장 넘어가는게 아까워서 조금씩 조금씩 읽고 있다. 사랑에 빠진 느낌이 이런건가요.
하이드님 고마워용 아잉♡
자꾸만 게을러져서 미쳐버릴 것만 같은 와중에 친구의 메일을 받았다. 페이퍼에도 몇번 언급했던 프리티벳 운동을 하는 친구인데 지금은 인도의 라닥지방에서 커피숍을 열어 운영중이다. 읽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몇차례씩이나 반복해서 읽으며 캐나다에 왔을게 아니라 그 친구의 사업에 투자를 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말이 그렇지 사실 후회는 없다. 진정으로 원한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으니까.
친구의 커피숍에는 싱크대가 없어서 개울가에서 설거지를 한다고 한다. 예전에 인도 여행할 때 양철통에 그릇을 담아와 강가에 쭈그리고 앉아 설거지를 하던 소녀의 모습이 떠오르며 짠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여러가지 감정이 동시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옛날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물이 시원해서 아드레날린이 치솟는다고 하는 친구는 어딜 가든 나처럼 웃으며 신나게 지낼 것이다.
친한 친구들과 술먹는 꿈을 매일밤 꾸며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요즘, 이렇게 반가운 소식을 들어 요 며칠간 기분이 좋다. 게다가 다른 친구는 9월 초에 캐나다에 '날 보러' 온다고 하니 더욱 신난다. 친구는 애인과 아주 안좋게 헤어지고 회사생활은 죽을맛이며 몸은 계속 아파서 컨디션이 최악인 상태인데, 휴가를 내어 캐나다에 올 여력이 있다. 말하자면 난 이 둘의 중간지점에 있는 셈인데 내가 어떤 미래를 선택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 아마 계속해서 이 둘의 중간지점을 고수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 셋은 꿈은 모두 비슷하지만 삶의 방식은 모두 다르다. 인도에 있는 친구가 꿈에 가장 가깝다면, 나는 그 중간, 한국에 있는 친구는 가장 멀리 있다고 해야하나. 꿈에서 멀어질수록 돈은 가장 많으니 이것은 아이러니. 그래서 행복지수는 비슷비슷하니 신은 공평하다고 할 수 밖에.
이건 딴 얘기인데 어제 밤에 이곳의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로또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같은 외국인이 캐나다에서 로또 당첨이 되면 정부에서 선택권을 준다고 한다. 당첨금이 만약 500억원이라면, 너 500억원 갖고 캐나다 시민권자로 살래, 아니면 250억원만 갖고 한국으로 돌아갈래? 난 이 선택 앞에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500억원 갖고 한국 국적 포기하고 캐나다 시민권자로 살며 친구들과 가족들을 불러모아 공동체 같은걸 꾸리며 살기로 결정했다. 물론 올 의향이 있는 가족과 친구만이겠지만 약간의 노동만 하며 이 축복받은 땅에서 함께 여유롭게 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후후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에 엠피쓰리에서 이 노래가 나오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이별은 겨울에 해야 제맛... 이랄까;;;
추운 겨울날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분노와 공포와 슬픔과 추위에 덜덜 떨면서 집 앞 놀이터의 말 모양 스프링 달린 놀이기구에 걸터 앉아서 넋을 떠나보내던 순간이 떠오르며 슬프기 위해선 역시나 겨울! 이라며 여름을 떠올려 보면, 더운 방 안에 드러 누워서 울면 눈물이 뜨거워서 더 덥고 그렇다고 안울면 짜증나서 더 열받고 더워서 짜증나는지 이별 때문에 짜증나는지 분간이 안가며 슬픔을 만끽할 수가 없게 된다. 여름에 하는 이별은 그래서 더 최악이다.
어쨌든 윤하의 노래는 참 좋다. 토이 6집에 여러 아티스트들이 함께 참여한 음악들 모두 좋다. 뮤직비디오는 더 좋다. 이 노래 듣는 김에 다시 한 번 다 듣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조원선의 Bon voyage는 워낙에 좋아해서 만번도 더 들었던 음악이고, 이지형의 뜨거운 안녕도 좋고, 루시드 폴의 투명인간은 여전히 꿈같고, 김민규의 나는 달은 그리운 느낌이고 안녕 스무살은 눈물이 맺힌다. 김형중의 크리스마스 카드는 설렌다. 특히 크리스마스 카드에 나오는 여자애는 얼굴이 똥그래서 나같다고 생각했는데, 남친이 카푸치노의 시나몬을 떠내어주는 걸 보곤 거의 기절. 요청하지도 않은 시나몬가루를 내 표정만 보고 작은 티스푼으로 한번에 싹 걷어내주는 사람이라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
휴. 왜 한숨이.
이곳의 여름은 거의 끝자락을 보이려고만 한다. 가져온 샤방샤방한 원피스들은 거의 입어보지도 못한채 곰팡이가 피려고 하고, 이제 10시면 해가 진다. 나는 매일같이 하루에 혼자 맥주 2병씩을 비우고 약간은 외롭고 약간은 편안하다. 맥주병을 비워내는 만큼 마음도 비워내고 있다. 그만큼 머리도 비워지고 있는지 요즘은 책을 하루에 열쪽남짓밖에 읽지 못한다. 대신 사진집이나 도록을 보는 편인데 요즘은 스티븐 맥커리의 눈동자들을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