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우울하다. 아니 우울하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지 모른다. 말하자면, 범인이 범인으로 느껴지지 않고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서 가슴 아프게 다가오도록 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고나 할까. 예전에 읽었던 '백야행'도 그랬고 이번에 접한 이 '용의자 X의 헌신'도 마찬가지였다.

한때는 천재 소리를 들었으나 지금은 그저 평범한 고등학교 선생님인 이시가미는 40대의 독신 남성이다. 우연히 옆집에 살게 된 야스코라는 여자에게 남다른 호의를 가지고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러다가 야스코가 자신을 계속 못살게 굴던 전남편 도미가시를 살해하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이시가미는 야스코와 그 딸 미사토 모녀를 구하기 위해 '헌신'하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형사 시리즈물에나 나올 법한 이 평범한 내용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묘한 반전을 예고한다. 그리고 마지막 몇 페이지를 읽는 동안에는 누가 누구를 죽이고 누가 누구를 감싸고 하는 단순한 문제는 아랑곳없고 그저 한 남자의 더할 나위없는 '헌신'에 대한 가슴 아픔만이 읽는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 결말을 말한다면 스포일러가 될테니 더 이상의 언급은 할 수 없으나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누구나 마지막에선 다 같은 심정에 사로잡혔을 게다.

사람이 타고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누구는 그 재능을 몰라서, 또 누구는 그 재능을 확실하게 알면서도 여건이 안되어 그렇게 살도록 허락되어지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은 전자에 속하겠지만, 이시가미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자신의 관심사와 재능을 썩일 수 밖에 없는 불운한 천재의 경우는 전자에 비해 사는 것이 훨씬 고통스러우리라. 그 외로움과 덧없음에 힘들어하다가 어느날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준(사실 그들은 그냥 한 일이지만 말이다) 두 모녀를 만나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바보같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딱히 천재가 아니라도 사람 사는 게 그리 녹녹하지 않고 또 숱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늘 외로울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에서 낯선 사람의 따스함과 미소가 어떤 순간엔 우주보다 크게 다가올 수도 있으리라는 걸 동감한다. 그래서 이시가미가 한 그 어처구니없는(현실적으로 보면 그리고 그 친구인 유가와가 볼 때도 참 어이없는 행동이 아니겠는가) 행동과 계획이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어도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하면 말이 안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일본 추리소설은 참 여러 부류가 있지만, 특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들은 여타의 것들과는 좀 다르게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 같아 볼 때마다 아릿하다. 추리소설이 그냥 추리에만 그쳐서 트릭을 해결하는 쟝르로만 구실한다면 인간적인 매력이 떨어지겠지만 이렇게 삶과 사람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풀어나가는 추리소설들은 그 얄팍한 쟝르를 뛰어넘는 그 무엇을 우리에게 안겨주어 추천할 만 하다. 

다만 좋은 책임에도 몇 가지 지적할 것은, 오타와 역자의 글이다.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오는 오타들은 늘 그렇듯 책에 대한 호감도를 절대적으로 떨어뜨린다. 또한 아무리 책의 말미에 있다고는 해도 역자의 글이 스포일러성 글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한다. 이 책의 묘미는 그 마지막의 몇 장에 다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역자는 그 내용을 너무나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아차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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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9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06-09-29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이따가 몇 가지 물어볼께용...^^ 기대만빵 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