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밥을 먹고 출근을 하면서 말했다.

 

"아 재미없어. 엄마, 넘 재미없다."

 

엄마, 가만히 계신다...

못들었나? 다시한번 말했다.

 

"일이 힘든 건 오케이인데, 넘 재미가 없어.."

 

엄마, 한마디 하신다...

 

"어째 오래 간다 했다. 싫증 났구나."

 

딩동.

역시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다. 흐흐흐^^

 

 

싫증이 난 거다. 회사를 주기적으로 옮겨다닌 건, 거기에서의 일이 재미없어서이기도 하고, 사람이 싫어서이기도 하고 뭐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었지만, 결국 기저에는, 내가 하나에 쭈욱 붙어서 뭔가를 계속 하는 걸 싫어한다는 감정이 자리한다.

 

회사를 들어가면, 처음 2년 정도는 잘 지낸다. 불만도 별로 없고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여기저기 다니기도 하고 일도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업무이니 익히느라 정신없기도 하고 해서. 3년째부터는 슬슬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4년쯤 되면서부터는 억지로 다니게 된다. 이 때 가장 많이 옮겼다... 근데 이 회사에서는 무려, 8월 31일이 되면, 6년이다 6년. 한계에 다다랐다.

 

연애를 하는 것도 시작하기가 겁나는 게 이런 나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사람도 싫증을 잘 내는 편이라 너무 붙어다니고 너무 자주 연락하고 그러면 어느새 싫증이라는 게 슬며시 나는 것 같다. 웃긴 건, 동성 친구한테는 별로 그런 게 없는 반면 이성 친구 (그러니까 애인) 한테는 그렇더라는 거다. 사랑이 식으면서 그것이 싫증으로 변모하는 걸까. 이러니 내가 누구를 만나 쭉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나. 그래서 싱글... 그래서인가? 그냥 운명인가?

 

걱정이다. 싫증이 나니 회사 나오는 게 거의 소가 도살장 끌려가는 느낌이라 매일이 우울하고 불행한 것 같다. 이렇게 지낼 필요는 없쟎아.. 라고 매번 생각하지만, 이젠 나이가 훅 들어서 (아 내 나이) 어디 옮기기도 용의치 않다는 게 함정이다. 내가 뭘 많이 바라고 많이 쓰는 것도 아닌데..  그냥 책 좀 사고, 여행 좀 다니고, 맛난 거 좀 먹고... 가끔 공연도... 켁. 그만두는 즉시 나는 '돈까지 없는' 싱글이 되겠구나. 아. 붙어있어야 해. 어디 갈 데 있을 때 까지는.

 

 

 

맥락없이 갑자기 책 애기. 출근하러 나오는 길에, 그냥 집어 나온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 조금 밖에 읽지 않았지만, 아. 놀라운 책일 거라는 예감에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개인적으로 주제 사라마구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처럼 쓰는 것을 좋아하는 지라. 포루투칼, 콜롬비아. 어쩌면 영미권보다 더 좋아하는 듯 하다. 미국 작가들의 지루하고 영양가없는 글들을 썩 가까이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가. 어쨌든, 이 책 강렬하다.

 

첫 대목부터 그러하다.

 

 

 

 

 

 

 

하나님이라고도 알려진 여호와는 아담과 하와가 겉모습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만 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심지어 아주 원시적인 소리도 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에게 짜증이 났을 것이다. 에덴동산에는 이 심각한 과실을 두고 달리 탓할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여호와의 거룩한 명령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두 인간과 다를 것이 없는 다른 동물들은 음메든 으르렁이든 개골개골이든 짹짹이든 휘리리든 꼬꼬댁이든 이미 자기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p9)

 

짜증내는 여호와라니. 크크. 뭐라고 비틀어서 나를 웃게 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 자체가, 생각하는 구조가 색다르고 놀라운 나머지 웃게 하는 것이 좋다.

 

... 그래. 일단 책으로 버텨보자. 나에겐 책이 있지 않은가.

 

 

 

이 책, 아직도 읽고 있다. 뭔가 특별한 책이긴 하고,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진도가 안 나간다. 번역 자체도 매끄럽지 않은 느낌이고. 이제 2/3 정도 읽었는데, 결말이 이미 드러난 거면 너무 질질 끄는 거 아냐 싶다가도 뭔가 또 있나 라는 생각도 든다. 이동진은 그럴 경우 그냥 던져버리라고도 말하두만, 나는 한번 끝까지 읽어보는 쪽을 택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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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0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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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08: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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