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넘의 일이라는 게 그렇다. 프로젝트 한다고 몰아칠 때는 밤낮을 안 가리고 하다가, 프로젝트가 막상 끝나면 흠? 나 이제 뭐해? 이런 구도가 된다. 혹자는 말하지.. (구체적으로는 내 상사) 나가서 영업을 해라. 아니, 영업이 따로 있는데 나보고 나가서 영업을 하라 하시면 영업은 뭐를 하나요? 라든가, 그 쪽에서 말도 없는데 다짜고짜 좇아가서 영업 행위를 하면 절 바보로 보지 않을까요? 라든가,... 속에서 이런저런 궁시렁거림이 온천물처럼 솟구치지만 꾸욱 참는다. 결국 이제 다른 프로젝트 들어가기까지 버티기에 돌입해야 한다는 결론. 상사의 눈치로부터 버티기... 이건 뭐, 직장연수 한두 해도 아니고 그냥 무시하면 되는데, 아. 심심한 걸 버티는 건 쉽지 않다.
심심하다는 건, 심심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시간이 남아... 뭘 하지? 라는 생각은, 내가 이것밖에 안돼? 라는 자기 비하로 급 발전하고 그러다가 자존감마저 상실하게 되며 누가 찌르기만 해도 눈을 부라리는 정신병리학적 현상으로까지 발전한다는 게 문제다... 흠.... 나는 지금 일단계. 아직 프로젝트 끝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일단계에 머물고 있다. 오늘 아침에 친구는 그랬다. 월급 주는데 그냥 버텨. 뭐 월급도 안 주고 버티는 것보단 낫잖아. 긍정적인 넘. 오냐. 월급이 어디야. 버텨주지... 라지만, 이 심심을 뭘로 풀까 고민하게 되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제 일찍 들어갔더니 아빠가 그러셨다. "어? 왜 일찍 와?"... 그냥 곱게 답하면 되는데 "일찍 끝났으니까 일찍 오짓!" 라고 답하고는 방으로 슝. 이단계로 넘어가려나 보다. 왜 그런 평범한 말에 과민반응을 보이고 난리냐 비연. 이 심심은 집으로까지 전염되어 책을 읽고 야구를 보고 늘 하던 대로 하는데도 심심의 느낌이 남는다. 그래서 주말에 노끈이 없어서 싸다가 만 버릴 책들을 낑낑대며 묶기 시작했다. 이런 단순반복작업은 잡념을 없애니 좋지 뭔가. 그러나 그것도 잠시. 30분만에 끝나버림. 그래, 버리고 오자. 그렇게 두 덩이를 들고 출발. 다녀와서 아구야. 하루에 다 버리는 건 무리야. 조금씩 버리자, 매일. 이러면서 뻗었다.
다시 아빠의 한 마디 작렬. "이제 책 좀 그만 사면 안돼? 책을 왜 이리 사?"... 으악. 안 그래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차였는데. 심지어 내일 모레 한 박스가 또 오는데. "내가 읽고 싶어서 사는데 왜?!".. 라고 또 한마디 빔을 발사하며 방으로 슝. 심심한 여파는 가족에게로까지 번진다. 좋지 않다. 아니, 나쁘다.
아무래도 뭔가 다음 프로젝트 하기 전까지 (지금 기다리고 있는 거 하나, 7월 예정이 하나) 뭔가 의미있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면서 이것저것 공부할 것들을 짊어지고 앉아 있는데, 원래 공부를 좋아하는 자가 아닌 비연으로서는, 자꾸 딴생각이 나고 급기야 이렇게 알라딘에서 도닥도닥. 어쩌면. 괜히 핑계를 대어보면... 지난 몇 달간 완전 긴장에 살다가 5월 10일자로 자유로와져서 본인의 심심함이 더 도드라지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근데 정말, 이렇게 마음이 가벼울 수가 있나. 지금은 뭐든 이야기되는 것들에 신선한 흥미를 가지게 된다. 이런 일이 얼마만이냐. 얼쑤... 그래서 나의 심심 깊이는 더해 간다는 반사적인 불이익이 있어서 탈이지. 흐미.
이제 일을 좀 해볼까. 일이란 게 꼭 프로젝트를 하고 그런 것만이 아니라, 준비하고 알아보고 하는 것도 일인데 말이다. 사람이란 게, 특히나 내 세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자발적인 학습보다는 뭔가 목표가 주어지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학습하는 데에만 익숙해져 그런 지 '자율' '자가' 발전이 쉽지 않네.. (물론 나만의 경우일 수도 있음)
힘내서, 버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