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설은, 여러 가지 갈래로 확연히 나누어지곤 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아사다 지로 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박하고 일상적인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다정함이랄까 푸근함이랄까 애틋함이랄까를 느끼게 하는 그런 소설. 나는 모리사와 아키오라는 작가를 이전엔 알지 못했었지만, 대략적인 소개글을 보고 아마도 아사다 지로의 작품과 비슷하겠구나 라는 마음으로 집어들 수 있었다. (빙고~)

 

100년이 다 되어가는 쓰가루 지역의 메밀국수집 오모리 식당. 1대의 오모리 겐지로부터, 3대 오모리 데쓰오를 거쳐 이제 4대 오모리 요이치까지 내려오는 '백년식당'이다. 요이치는 아직 식당을 물려받아야 할 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소설은 각자의 마음의 소리를 한 챕터씩 풀어나간다. 3대 오모리 데쓰오로부터 시작하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1대 오모리 겐지로 갔다가 이것저것 다 실패하고 지금은 도쿄에서 삐에로 일을 하고 있는 4대 오모이 요이치에게 갔다가, 어떨 땐 요이치의 여자친구인 쓰쓰이 나나미에게로 갔다가... 그렇게 각자의 생각과 추억이 교차하면서 이해하고 오해하고 하는 과정들이 참 담담하게 예쁘게 그려진다.

 

 

오모리 겐지에겐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발가락이 없었다. 그 때문에 어릴 적엔 친구에게 자주 놀림을 바닸고, 따돌림 당하기 일쑤였다.... (중략) ... 어린 겐지는 그런 자신이 한심하고 분하고 슬퍼서, 손목으로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많았다.

어머니는 비탄에 잠긴 겐지를 늘 가만히 안으면서 생긋 웃어주었다. 등을 톡톡 편안할 정도로만 두드리며 이런 말도 해주었다.

"이 녀석. 남자가 울면 못써. 발가락쯤 없는 거, 그게 뭐 어때서 그래? 오히려 발가락 외엔 다 가졌으니 넌 행복한 아이란다. 한번 생각해볼까? 발가락이 없는 만큼 넌 천천히, 천천히 걷잖아. 천천히 걸으니 다른 사람이 못 보고 지나치는 걸 발견할 수 있어. 그렇지? 음. 우리 겐지, 오늘은 뭘 가져왔을까?"

어머니가 그렇게 물으면 어린 겐지는 울면서 길가에 핀 꽃 이름을 말하기도 하고, 진기한 벌레 이름을 말하기도 했다. 논두렁 길에서 캔 미나리랑 뱀밥을 어머니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반들반들 빛나는 돌멩이를 내밀기도 했다.

"어머나, 정말 멋진 걸 발견했네. 겐지는 예전부터 행운이 따르는 아이였어."

(p22-23)

 

 

어머니란 존재는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이 대목을 읽으면서 괜스레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나이가 들어서 눈물이 많아졌나.. 하면서도 두번 세번 읽으며 아 참 너무 멋진 글이다. 어쩜 이럴까. 이 아이가 '백년식당'의 1대가 된 건 어머니의 이런 푸근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살면서 어머니의 이런 말씀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힘이 된다는 거. 나이가 드니 알 것 같다.

 

 

나는 좋아하는 무 샐러드를 먹으며 10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사투리가 심한 아버지가 도쿄에 왔을 때, 나는 성질도 고약하게 짜증을 내며 이렇게 말했다.

"창피하니까 아버지는 입 다물고 계세요."

그때 나를 조금 쓸쓸한 눈으로 바라봤을 뿐, 한마디 불평도 없이 내가 시키는 대로 말수를 줄였던 아버지. 약해 보이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죄책감에 울고 싶어졌다. 그 죄책감의 흔적은 지금도 내 안에 확연히 남아 있다.

(p71)

 

 

다시 눈물. 부모한테 자식은 얼마나 모진 지. 사실 마음으론 안 그런데 괜히 속상해서 툭 내뱉고는 내내 마음 아팠던 경험이 내게도... 많다. 가끔씩 사무치게 미안할 때가 있다. 이젠 연세가 드셔서 예전처럼 큰소리도 내지 않으시고 그냥 허허 웃거나 쓸쓸하게 돌아서거나 하시는 부모님을 보면, 나는 왜 이리 못되었을까. 자책하곤 한다.

 

 

나나미를 알게 된 후 도쿄에 부는 바람의 질감이 조금 바뀌었다. 왠지 동그스름해진 느낌이다. 우리는 도쿄에서 이제 '혼자'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에 마음을 덮는 피부까지 두 배로 두터워진듯 했다. 요즘은 사소한 일로는 더 이상 마음에서 피가 흐르지 않았고, 가끔 푹 찔려서 상처가 나도 함께 슬퍼하거나 웃어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그 상처가 달콤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p127)

 

 

사람이 사람과 함께 할 때 느끼는 최고의 느낌은, 사랑이나 애정이나 하는 어쩌구저쩌구의 강렬한 느낌보다는... '안도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함께 해서 다행이다. 내 얘길 들어줄 사람이 있어 하나 무섭지 않다. 슬퍼도 털어내버릴 존재가 내 곁에 있다. 이런 안도감. 그것은 주변의 공기를 바꾸게 하고 나 자신의 마음도 바꾸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그립다, 그 느낌.

 

 

"이건 내가 어릴 때, 이 식당을 처음 만든 할아버지한테 몇 번이나 들은 이야기인데."

"네..."

"모든 일의 끝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배웠다."

"감사?"

"그렇지. 어떤 일이든 마지막엔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만 한다면 모두가 좋은 기분을 간직할 수 있다 고 초대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단다."

(p279)

 

 

문득, 내가 누군가에게 감사하다고 한 게 언젯적 일이었나 돌아보게 한다. 예전엔 말끝마다 감사를 붙였던 것 같은데 요즘엔 귀찮아서 그냥 뭐 그래봐야 하는 마음에서 대충 넘기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감사라는 말로 마음으로 마무리하면 모두 좋은 기분을 간직할 수 있다.... 내게도 새겨두어야 할 말이라는 생각에 몇 번 되새김질해본다.

 

이 책에 나온 인물들 중엔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선량하고 성실하고 올곧고 마음깊고 때로 실수해도 포용하고 말없이 믿어주는 사람들 뿐이다. 이런 세상은 책에나 있는 거다. 그래서 현실감이 떨어진다.. 라고 매몰차게 생각하다가도 이런 세상 하나 아는 것도 좋지 않은가 싶다. 그게 판타지면 어떤가. 모든 일을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무미건조하게만 바라본다고 내게 좋을 일이 뭐 있겠는가. 마음에 따뜻한 물결이 일고 그래서 오늘 하루도 좀더 씩씩하게 살 수 있다면 그만이지.

 

마지막 장에 가면 이 백년의 시간이 그렇게 그냥저냥 이어진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더해서, 그렇게 이어진 백년이란 걸 알게 된 순간, 가슴에 따뜻함이 다시한번 번진다. 좋은 책이다. 

 

모리사와 아키오의 책은 여러 권이 번역되어 나와 있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게 몇 편 있고. 책도 책이지만 영화를 한번 찾아봐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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