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날 회의를 갔는데, 아 올해 정말 될 일도 안 되고 안 될 일도 안 되고. 완전 失氣하여 집으로 와서는 (비까지 오더라) 바로 뻗어 잤다. 내리... 5시간을. 그리고는 자정 다 되어 일어나서는, 그래도 씻어야지 라는 양심의 호소에 힘입어 겨우 씻고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잠. 심지어 토요일 10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도대체 몇 시간을 잔 것이냐.
중국어 학원을 갈까 말까 하다가 아 그래도 그거라도 해야지 하고는 억지로 옷 끼워 입고 힘없이 나왔다. 몸도 사실 안 좋았고, 마음은 더더욱 안 좋아서 기운이 나야 말이지. 그런데 학원 갔더니, 세상에. 내가 주말마다 듣던 이 과목이 다음달부터 폐강을 한단다. 헉. 그다지 열심히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폐강이라니. 이런 일은 처음이지 뭔가... 될 일도 안 되는 올해..라는 생각이 다시. 학원 끝나고는 만사 다 귀찮아져서 에라. 집으로. 하고는 집에 틀어박혔다. 맥주도 먹기 싫은 상태라, 야구 넋놓고 보고. 그래도 야구를 크게 이겨서 (시즌 마지막 경기!) 그나마 나쁘지 않네 하고 방으로 기어 들어와.. 뭐 하지? 하다가.. 영화나.
2012년 영화를 이제야 보는. 왜 이걸 안 봤지? 사실 이게 생각난 건, <질투의 화신> 조정석이 이름을 알리게 된 영화라고 들어서였다. 납뜩이 납뜩이 하는데 도대체 어떻길래? 하는 마음으로 본 것이지. 요즘 불미스러운 일로 이름 오르내리는 엄태웅이 나와서 좀 그렇긴 했지만, 이제훈도 나오고 해서 그래 유명한 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하고 봤다. 맨 처음 크레딧 올라가는데 조정석 이름은 나오지도 않아서 깜놀. 요즘 대세인데 불과 4년 전에는 조연 중의 조연이었구나.
아. 심정이 별로여서 그런가. 이 영화 보고도 한참을 울었다. 뭐야..ㅜㅜ <나의 소녀시대>랑 비슷한 컨셉이지만 좀더 현실적인 이야기이고, 우리네 추억과도 많이 닿아 있는 영화라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삐삐... ㅎㅎㅎ 지금 같으면 카톡 날리면 될 일을 그 때는 삐삐... 삐삐 치고 연락 오기만을 한없이 기다렸던 시절. 1기가 짜리 하드를 크다고 놀라는 주인공 심정 이해되고. 그리고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이 명곡을 계속 듣는데... 저 앨범, 정말 닳도록 들었었지 라는 기억이 새록새록 났었다. 나에게도 지금 있는 그 쟈켓의 앨범.
이거. 대학 가요제 나와서 대상 탈 때부터 눈여겨 보던 이들은, 결국 김동률 한 명만 활동하게 되었는데, 그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리고 영화 전반에 흐르면서 사람 감동시키는데...으으흑. 근데 그 때도 강남 강북 이런 게 있었나. 라는 갸우뚱도 있었고... 순진한 남자 주인공을 보면서, 예전에 나한테 고민상담하던 남자애들 몇몇 얼굴도 떠올랐다. ㅋㅋㅋㅋ 울고 불고... 말을 못 해서 고민하고 술 먹고... 내가 좋아하는데 다른 애랑 친하다고 눈 둥그래져서 나한테 진상파악 하러 오고. (난 이런 고민상담의 데스크 역할이었다...ㅜㅜ) 그런 애들 얼굴이랑 겹치면서 어찌나 짠하던지. 그리고 납뜩이. 푸하하. 조정석이 이 때만 해도 퉁퉁하게 살이 쪄서 지금의 모습과는 매치가 안될 정도였지만, 연기 하나는 정말 웃겼다. 허세스럽지만, 의리있는 친구. 전형적인 모습을 재미나게 묘사해서, 자칫 지루한 첫사랑 이야기에 액센트를 더해주고 있었다. 조연으로 나와도 괜찮겠는데, 조정석? 하면서 많이 웃었다. 수지는, 다른 데보다 여기에서 제일 예쁜 것 같다. 국민 첫사랑이라더니, 풋풋하고 퉁명스러우면서도 정깊고 외로운 아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어색하지 않았다. 이제훈도 어리버리 대학 신입생 남자아이 역할을 잘 소화해내주었고. <시그널>에서의 그 모습만 생각하다 이 영화에서 어리숙한 모습을 보니 재미있기도 했고.
결국 작은(?) 오해로,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물어보지 짜슥. 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차마 정말 그러면 어쩌나 싶어 도저히 물어보지는 못하고 냉정하게 대하는 남자 주인공을 보면서... 이런 게 엇나감이구나 했다. 첫사랑의 애틋함, 엇나감. 그리고 재회. 건축학개론 수업이 시작하고 끝나는 동안 꽃피웠던 첫사랑의 흔적은 십수년이 흘러 집을 하나 짓기 시작하여 다 짓는 동안 약간의 혼란은 있었을 지언정 잘 마무리되고... 영화는, 이제 각자의 삶에 충실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성인으로서의 주인공들의 모습을 군더더기없이 잘 그려내고 있었다. 첫사랑의 애틋함을 다 지워낼 순 없겠지만 말이다.
근데 난 왜 그렇게 운 거냐. 나 참. 오늘 아침 일어나니 눈이 퉁퉁. 얼굴이 보름달. 뭐 한 거야... 그러고는 온종일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나가기도 귀찮고 심정도 그렇고... 변명을 마음에 한가득 하면서 말이다.
2014년인가에 샀던 옌롄커의 <풍아송>을 이제야 들었다. 600페이지 남짓한 책인데, 처음에 아내의 불륜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이게 어떻게 600페이지를 다 채울까 걱정되었었는데, 다 읽고 나서는 이 내용을 600페이지에 어찌 다 담았지 싶을 정도로 스케일이 컸다. 역시 중국인이 지은 작품답게 묘사도 걸죽하고 세밀하고 해학적이라고나 할까 자학적이라고나 할까... 그런 이야기들이 그냥 너무 일상적으로 묘사되어져 있다.
하지만, 매우 좋은 작품이다. 별 다섯.
지식인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거짓 앞에 무너지는 진실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 와중에 지식인의 허울을 어느 새 던져버리고 그냥 날 것의 모습으로 세상을 대하며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주인공 양커씨의 이야기는, 파란만장해서 눈물겹지만 결국 묘한 감동을 준다.
이 책 처음 나왔을 때 북경대가 모델이냐며 (중국 최고의 대학이며 최고의 수재가 모인 대학이라고 계속 강조...) 비난과 질책이 쏟아졌다고 하지만, 옌롄커 본인이 밝혔듯이 무엇이 모델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자신의 내면 깊숙한 모순을, 비록 지식인이 아니라고 해도 해결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었나 싶다. 읽으면서, 유쾌하지 않은 나의 깊숙한 마음을 들킨 느낌이 들어 흠칫스럽기도 했으니. 어차피 소설가는 사회 뿐 아니라 자아를 향해서도 말하는 존재니까. 그리고 설사 그것이 북경대 이야기라고 해도, 그게 진실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사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북경대 혹은 대표적인 지식인 집단이라는 교수 사회 얘기야) 심란한 마음에 읽었지만, 모처럼 집중해서 쭈욱 한 권을 내리 읽어내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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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주말이 갔다. 내일 회사 나가서 또 쪼일 생각하니... 아 배가 자꾸 아프다. 이거 무슨 학교 가기 싫어하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큰일이지 뭔가. 게다가 의욕상실에 자신감까지 잃어가고 있어서 그게 더 큰일이다.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그나마 가뿐한 마음으로 나가야겠다. 쪼일 땐 쪼이더라도, 쪼그라들어서 출근하면 안되지...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