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달리는가 - 동물들이 가르쳐준 달리기와 진화에 관한 이야기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정병선 옮김 / 이끼북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놀랍다였다. 사실 리뷰 쓰겠다고 신청은 했지만 내용이 뭔지를 자세히 가늠하긴 어려웠고 다만 제목에 혹해서 신청했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왜 달리는가. 문학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막상 받아놓고 보니 예상이 많이 빗나가는 바람에 적이 당황스러웠다. 저자는 생물학 교수이고 자신의 달리기 기량을 높이기 위해서 연구 대상인 동물들에게서 생물학적인 관찰을 통해 지식을 얻고자 했다. 따라서 내용의 절반 이상이 낙타, 영양, 개구리 등등의 동물들이 진화학적으로 어떻게 달리는가에 대한 약간의 전문 용어를 포함한 설명들이었다. 하지만, 지루할 수도 있는 이 내용들이 놀라움으로 다가오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저자는 타고난 글솜씨로 자신의 오래 전 경험들을 아주 상세하게 그 느낌까지 마음에 와닿게 기술하면서도 사람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놓치지 않는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고 그 모든 것이 내게는 감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저자인 베른트 하인리히는 생물학자인 동시에 많은 책을 저술한 사람이면서 또한 100km울트라마라톤 선수이기도 하다. 100km라니! 이러한 달리기는 기존의 마라톤과는 달리 더큰 지구력이 있어야 했고 그래서 별다른 지식이 없었던 저자는 다른 동물들이 왜, 어떻게 뛰는 지를 살펴보고 자신에게 하나씩 접목함으로써 방법을 찾아나가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결심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어린시절, 대학시절을 통해 달리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과정들, 연구하는 동물들의 특징들을 하나씩 둘씩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울트라마라톤에 참가하여 기록을 내는 최종 순간까지를 담담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아프리카의 여느 아침이다. 영양이 잠에서 깨어난다. 영양은 자기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여느 아침이다. 사자가 잠에서 꺠어난다. 사자는 자기가 가장 빠른 영양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자든 영양이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튼 해가 떠오르면 당신은 이미 달리고 있을 것이다." (pp 22)

저자에게 있어서 달리기는 인간에게나 동물에게나 존재의 근원이다. 달리기 위해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있기 때문에 달리는 것이다. 어린 시절, 숲에 살 때부터 그는 달렸고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크로스컨트리 선수를 하면서 그 달리기는 이어졌다. 달리기는 신체의 일부를 사용하는 여타의 다른 운동들보다 훨씬 정직한 행위이며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름아닌 마음이고 그것은 용기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예컨대 마술로는 어디에도 갈 수 없지만 한 번에 한 걸음씩 일련의 정확한 연속 과정으로 발걸음을 움직이면 목표한 곳에 다다를 수 있다. 첫번째 세 걸음을 내딛지 않는다면 1,600미터를 완주할 수 없다. 때가 묻지 않은 신성한 이 행위에는 진실과 아름다움, 조화가 자리잡고 있다. 모든 걸음이 중요하다. 각각의 발걸음은 아름다운 행동이다. 이 걸음(step)들이 모여 보폭(stride)을 만들고, 전체로서 속도(pace)가 된다. (pp 96)

학업과 달리기를 병행하면서 저자는 동물들에게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혈관이나 간, 뼈, 허파 같은 기관이 없는 곤충이 어떻게 운동을 하고 온도를 유지하는 지, 새들은 어떻게 쉬지않고 수천 킬로미터를 비행하여 이동할 수 있는 것인 지, 가지뿔영양은 어떻게 최고의 달리기 능력을 보유할 수 있는 것인 지, 낙타의 가공할 지구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 지 등에 대해서 하나하나 의문을 가지고 해결점을 찾아가면서 진화라는 것에 대해 관점을 가지게 되고 특히 신체구조는 틀리지만 인간과 공유하는 공통점들을 찾게 된다. 읽어보면 이런 점이 있구나 라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론들이 종종 나온다.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준비하고 경기에 참여하여 1등으로 골인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저자가 가졌던 느낌들은, 책에서도 말했지만 인생과 비슷함을 느낀다. 경주는 내 인생의 은유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진화해온 과거, 경험, 그리고 마음의 영향을 받는다...나도 경주에 대비해 내가 하고 있던 일이 올바른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이상적인 배우자, 학문, 또는 훈련 섭생법을 선택할 때처럼 우리는 위험을 산정한다. (pp 318) 무엇이든 몰두하는 사람에게는 그것 이외의 우주가 보이는 법이다. 저자는 달리기를 하면서 인생을 보았고 그것을 넘어선 인류의 진화와 그 노상에 있는 우리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라는 주제로 이렇게 훌륭한 책을 쓰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저자가 생물학자이기 때문에 그저 달리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 진화의 문제 등을 깊이있게 사색한 결과물이기에 그럴 수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책을 덮으면서 감동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모체로서의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가치와 꿈을 말하는 저자의 생각에 있다. 아마도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진화의 끝자락에서 달리기에 그다지 적합하게 구성되어지지 않은 신체를 가지고(동물들에 비해서 말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달리게 하는 원동력으로서의 마음과 꿈이 살아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에게 공통으로 내재해 있는 사냥꾼의 마음이 실용성을 넘어서는 가치를 공유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꿈이다.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커다란 부분이다. 현대의 주자들을 따뜻한 아프리카의 깊은 밤에 화톳볼 주위에 모아놓는다면 그들도 여느 부시맨들처럼 타다 남은 재를 들쑤시면서 결승선에 도달하기까지의 그 모든 과정과 그 이상까지도 반추할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쓰고자 했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pp 322)

저자의 이 마지막 말을 읽으면서 내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많은 꿈들을 생각해보았다면 비약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달리는 행위 하나에서도 우리는 나름의 마음을 싣게 되고 그 마음들은 결국 나름의 꿈이라는 것에 잇닿아 있음을 알게 되니 내가 하는 모든 행위들에게서 그것을 찾는 것을 어쩌면 당연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이 책이 비단 달리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만 추천할 수 있는 책으로 그치지는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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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4-16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함이 묻어난 리뷰... 추천하고 가요...;;;;

비연 2006-04-1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감솨해요^^ 읽은 느낌만큼 잘 써진 것 같진 않은데...우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