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피그 - 로마의 명탐정 팔코 1 밀리언셀러 클럽 22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읽고 있던 다른 책을 다 뒤로 하고 손에 들었다. 역사 추리물이라는 것이 흥미를 끌었고 많은 분들이 매력적이라고 말씀하시니 견딜 재간이 있는가. 현재 삼분의 일 가량 읽은 책들만 세 권인데 이들을 책상 위에 두고 '은돼지'를 집으려니 뒤통수가 간질간질할 지경이었지만.

이 책에는 흥미로운 탐정(정보원이라고 해야 옳을 지 모르겠다)이 등장한다. 마르쿠스 디디우스 팔코. 그는 빈곤한 평민 계급으로 공동 건물의 6층에 살고 있는 이제 막 서른 살이 된 남자다. 억세고 아직도 아들을 어린아이인 양 다루지만 생활력 강한 어머니와 형이 남기고 간 형수와 조카 마르키아, 그리고 여럿의 누나들과 조카 열 명 정도가 그의 가족이다. 그에게는 세탁소를 하는 레니아라는 아래층 여자와 수비대장을 하는 페트로니우스라는 친구가 있고 가끔씩 다녀가는 여자들이 또한 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원로원 의원의 조카인 소시아라는 소녀와 만나게 되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 이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그 사건을 파헤쳐나가다 소위 '은돼지(Silver Pigs)'라고 불리는 잉곳이 브리타니아 광산으로부터 밀반출되고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되고 하나하나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은 냉혹하게 다가온다.  팔코는 현대의 하드보일드 류의 사립탐정들과 비슷한 캐릭터로 배경은 옛 로마이지만 사건에 몸으로 부딪히며 양파껍질 벗겨나가듯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마치 레이먼드 챈들러 작품에 나오는 필립 말로를 연상케 한다.

이 소설이 끌리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일단 팔코의 캐릭터가 매우 성공적으로 구상되었다는 것이다. 하드보일드 류의 탐정과 비슷하면서도 더 낭만적이고 더 유머러스한 그의 모습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호소하는 바가 크다.  군데군데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절묘하고 해학적인 말들이 그에게 바짝 흥미를 가지게 함을 부인하기 힘들다.

또, 로마의 정치적인 상황이나 그 속에서의 귀족들의 생활, 그들의 야망, 탐욕, 그리고 평민들의 누추한 생활 등이 아주 사려깊게 묘사되어 있어 본격적인 역사 추리물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데에도 매력이 있다. 작가가 그냥 그렇게 설렁설렁 배경만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 치밀한 상황설정과 역사적 검증 끝에 만들어낸 setting임이 여실히 드러나 만족스러움을 안겨준다.

항상 그렇지만, 추리소설 뿐 아니라 모든 소설은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상에 우리를 귀속시킨다. 그 세상이 우리와 너무나 멀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소설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어떠한 배경이라 할 지라도 그리고 그들이 어떤 마술을 쓰든 어떤 희한한 도구들로 현혹시키든 간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정서를 가지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에만 열광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라면 이 소설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난 팔코 시리즈의 2편을 사게 될 것 같다. 팔코와 그의 연인 헬레나의 치우침없는 콤비 플레이를 한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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