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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폭풍이 지날 때 ㅣ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4
캐런 헤스 지음, 부희령 옮김 / 생각과느낌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오랜만의 리뷰다. 사실 이 책은 리뷰를 쓰겠다고 신청해서 받은 책이고 분량이 많지 않아 금세 읽어놓고서도 리뷰 기한을 지키지 못한 채 걱정만 하다가 그 때의 감흥이 살아나지 않아 급기야는 다시 읽고 나서야 이렇게 리뷰를 쓰게 된, 그 책이다. 또한 두 번을 읽어도 마음에 슬픔이 번져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하여 선듯 손이 가질 않는, 그런 책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열네살 소녀 빌리 조다. 미국의 경제공황기에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는 척박한 땅에서 밀농사를 짓는 아빠와 엄마를 둔, 그리고 피아노 치는 것을 사랑하는 평범한 소녀다. 어느날, 엉겁결에 집에서 일어난 화재 중에 실수로 던진 불덩이가 엄마에게 옮겨 붙어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뱃속에 있던 동생도 죽게 되는 사고가 난다. 피아노를 치기에 잘 어울렸던 손은 망가졌고 가족은 아빠와 단 둘만이 남게 되면서 소녀는 힘들어진다. 세상은 비가 오면 환해지다가도 모래 폭풍 한번에 버걱거리는 모래를 치우며 불행을 곱씹게 하고 엄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아빠와의 서먹함으로 사는 게 재미 없어지고 피아노를 칠 수 없어 절망스러운 시간들이 흘러간다.
빌리 조의 가난한 가족은 착했다. 엄마는 먹을 것이 없어 뼈만 남았어도 찾아온 자선 단체 사람들에게 '사과 소스 세 단지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그리고 또/태어날 아기를 위해 손수 짠 잠옷을 기부하는' 분이었고 아빠는 보잘것 없는 식탁에서도 '오늘 저녁 감자 요리는 정말 풍성하고 저녁 식사에 초콜릿 우유라니 우린 정말 호화롭게 살쟎아!'라는 말로 위로할 줄 아는 분이었는데, 그 가족에게 닥친 불행은 작은 소녀 뿐 아니라 읽고 있는 나까지도 막막해질 만큼 절망스러웠음에 원망하는 마음이 인다.
서로가 이 불행의 원인자인 양 책망하는 마음을 품고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느닷없이 찾아오는 모래 폭풍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절망감이 얼마나 뼈에 사무치는 지. 이 책은 짧은 글들로도 충분히 묘사하고 있다. '나는 아빠가 무서워./그리고 짜증이 나./나는 혼자 있고 싶지만,/혼자 있게 될까 봐 겁이 나기도 해.'라는 빌리 조의 말은 어린 소녀의 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실이 암담하여 도피하고자 기차를 탄 소녀는 문득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지에 대해서 알게 된다. '아빠의 슬픔과 내 슬픔이/두 배로 내리눌러도/아빠는 가정을 지켰어./내가 그것을 깨버렸어./' 집으로 다시 돌아서는 길에서 아빠와 딸은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어./등유 한 양동이를 부엌에 갖다 놓은 것조차도./.../내 자신을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내가 저지른 모든 일들도.'
모래 폭풍으로 묘사되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 열네 살 밖에 안된 어린 소녀가 자신을 성찰하고 주위와 자신을 용서하는 모습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무리없이 잘 그려진 소설이다. 간혹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여겨질 만큼 갑갑하고 어렵다 느껴질 때가 있겠지만, 그래서 어느 순간 이 길을 그냥 벗어만 나면 좋겠다는 생각에 몸부림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같은 자리에서 길을 내기도 한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한다. 소녀는 현실에서 해결점을 찾은 것은 아니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용기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대신 품음으로써 현실에 맞설 수 있는 실마리를 잡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이 나고 있다.
책을 덮으면서 아직도 한참 어린 이 소녀가 더 커가면서 처하게 될 많은 곤경들 속에서 지금의 이 마음으로 잘 살아나가길, 마치 내 옆에 있는 누이에게 바라는 마음인 양 진심으로 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자신의 것으로 하기를 함께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