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프리쿨리치가 들어왔다. 그가 말한다.

작은 보물이란 나 여기 있다 라고 적힌 것들이야.

그것보다 조금 큰 보물은 아직 기억나니 라고 적힌 것들이고.

그러나, 무엇보다 큰 보물은 나 거기 있었다 라고 적힌 것들이지.

(p308)

 

그 사이 나는 내 보물들에 나 거기 머문다라고 적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수용소는 머릿속에서 자신을 확대시킬 거리를 확보하려고 나름 집으로 보냈다. 고향에 돌아온 후로 내 보물에는 나 거기 있다 는 물론이고 나 거기 있었다 라는 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내 보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p328)

 

*

 

역시 노벨문학상은 아무한테나 주는 건 아닌 모양이다. 관심이 많이 사그러져서 멀리 하고 있었지만, 아주 오랜만에 상이란 걸 받은 작가의 작품을 읽으니 그 깊이와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물론 헤르타 뮐러의 글은 아마 원어로 읽어야 그 감동이 더 적확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녀는 모국어를 조합하여 의미를 담은 새로운 말들을 창조해내었고 러시아어와 독일어간의 유사함을 활용하여 느낌을 전달하고 있었다. 언어의 유희. 언어의 유려함. 번역된 글을 읽으면 그 섬세한 뉘앙스는 전해지지 않는 법이다.

 

다만 모든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저층지대의 감정, 일상, 시각 등에 한정되어 공감된다. 루마니아의 독재정치 속에서 빚어진 루마니아 내 독일인들의 소련 수용소행. 주인공 레오도 거기에 휩쓸려 5년이라는 세월을 수용소에서 보내게 된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채 떠나지만, 수용소에는 배고픈 천사만이 함께 할 뿐, 외롭고 배고프고 힘겨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어쩌면 공포도 있었을라나. 뜻없이 죽은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죽고나면 그냥 시체로 변모하고 사람들은 그 대상에게서 옷과 먹을 것을 훔쳐내기에 여념이 없어진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애타던 마음은 어느새, 여기에서의 생활도 생활이야 라는 마음으로 바뀌고 러시아의 한 노동자로서 정착을 해도 되리라는 마음 아닌 마음을 가지게 될 찰나, 고향으로 복귀하게 된다. 복귀. 그러나 수용소에서의 5년은 금방 잊혀질 듯 했지만 그의 모든 일상에 붙어서 함께 가는 기억이 되어 있었다. 고향에 마음을 붙일 수 없게 되고 결국 아는 사람들 속에 있으나 나만의 수용소에 갇혀 지내게 된다. 보는 것마다에서 수용소의 사물들이 떠오르고 그 때의 사람들이 겹치는 생활. 그것이 육십년을 갈 줄이야.

 

작가는 물론 그 당시의 수용소 생활을 자세히 묘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더 깊은 곳에서는 그냥 어느 곳에도 끌려가지 않았던 우리들도 아마 우리의 수용소에 갇혀 지내는 게 아니냐는 화두를 던지는 것 같다. 함께 있으나 함께 있지 않고 얼굴을 마주 대하나 침묵으로 대화를 대신 하는. 그런 생각들 때문에 참... 읽으면서 내내 외로와지는 작품이었다.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라 그런지, 몇 권의 책들이 더 번역되어 나와있다. <저지대>를 한번 볼까 싶다. 어쩌면 다른 책일 지도 모르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