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 심란해지는 대상도 달라지는 것 같다.

 

어렸을 땐, 사랑하는 사람이 날 힘들게 해서, 인생이 어떻게 될 지 너무 모르겠어서, 친한 친구의 실연에 위로하느라 같이 공감되어서, 모든 것이 불확실해서... 그래서 심란했다. 항상 마음 속에는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거품. 그게 나에게 심란을 야기시키고 그래서 술 먹고 그래서 뻗고 그래서 머리 아프고... 뭐 그랬었다.

 

나이를 먹어보니, 이제 그런 걸로는 심란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감정도 잊은 지 오래고 (아 정말 까칠한 삶이다) 인생은 이미 결정이 많이 되어서 궁금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이미 산 날이 많아진 나이라는 거다) 친한 친구가 실연이 아니라 이혼을 한다고 해도 시큰둥이고 (인생이 다 그런거지) 모든 것이 과거에 비추어 명확히 보이는 게 괴로울 뿐이다. 그런 것보다는, 친한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나의 부모님이 가끔씩 몸이 찌뿌둥하다고 하셔서, 지인이 아파서, 내가 아파서... 병원 다니느라 심란하다. 그러고보니 나이먹으면 그저 모든 것이 삶과 건강에 연결된다는, 이 진리 아닌 진리를 깨달은.. 더러운 느낌이 드네 그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걸로 술 먹고 뻗지 않는다. 그러기엔 몸이 넘 힘들어서 그냥 집에 가 방에 콕 쳐박혀 아무 생각없이 드러누워 있기 일쑤다. (사실 이런 심란으로 같이 술 먹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이젠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정답에 가깝다)

 

요즘 주변에 심란한 일이 계속 일어나서 매일매일 너무 우울하게 지내고 있다. 이러다 접시물에 코를 박고 허우적거릴지도 몰라.. 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책을 읽어도 마음 한뭉텅이는 '심란'에 가있다. 그래서 매우 가볍고 매우 잘도 술술 페이지가 넘어가는 그런 책들만 가까이 하고 있다. 덕분에 몸은 힘들고 무겁고 머리는 쉽고 가벼워지고 있다. 머리를 넘 안 쓰는 게 걱정이 되어서 가끔씩 수퍼에서 사는 물건들을 혼자 암산해보곤 한다. (찌끈)

 

나이를 먹어서 느끼는 심란함은.. 사는 게 뭘까. 인간은 뭘까. 이승과 저승은 뭘까.. 뭐 이따위 근본적인 질문들과 엮여 있어서 해결책도 없고 조언을 구할 데도 마땅치 않고 누구랑 공감하기도 우울하고.. 그런 류인 것 같다. 결국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드러누워 이 책을 읽었다. 너무 가벼운 책이라 2시간 만에 다 읽어서 아쉽기까지 했다. 일드 '수박'의 원작자(부부!)들이 지은 첫 소설이라 하고 곧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거라고 한다. 상처입은 사람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정말 일상적으로 그린 책이다. 시아버지와 함께 사는 혼자된 며느리라는 설정 자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기도 하고.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인연은 참 사소한 데에서 감동을 받으며 시작하기도 하는구나. 나도 모르는 나의 심정 기저에 있는 감성의 털을 살짝 건드려서 저도 모르게 전기가 지릿.. 오르는. 그리고 그런 인연을 만나면 사는 게 참 넉넉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뭐.. 심각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은 아니니 여기까지.

 

 

 

지금은 이 책을 읽고 있다. 아르망 가르슈 경감 시리즈 3번째 거다. 쓰리 파인즈라는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계속 써내려가고 있는데 이넘의 마을에선 살인사건이 자주 일어난다는 게 좀 흠이다..ㅎㅎ 추리/스릴러 소설을 넘 읽어대서 중간부터는 제발 결말 내라 이런 심정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가르슈 경감 시리즈는 좀 다르다. 그냥 기대가 된다고나 할까. 가르슈 경감의 캐릭터도 남다르고. 그 캐릭터에 흠뻑 빠져 보고 있다. 물론... 진도는 잘 안 나간다. 그넘의 '심란' 때문에. 하루면 읽던 책을 삼사일 째 끙끙거리고 있으니.

 

그래도 이 책이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맥주 한잔 하고 가자는 동료의 제의를 가볍게 물리칠 수 있다. 그만큼 매력적인 책. 다 읽지 않았지만 추천이다.



 

 

물론 루이즈 페니의 다른 아르망 가르슈 경감 시리즈도 함께 추천이다. 무엇보다 책표지가 넘 이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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