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다.

그리고 나는 회사다.

 

방금 점심을 먹었고... 버거킹에서 햄버거세트를 사와 혼자 우걱우걱 먹었더니 잠시 소화가 안되는 느낌이다. 잔뜩 채워진 배 덕분에 머리속이 혼미하여 일단 좀 쉬기로 했다.

 

지난 주 교육 때문에 일을 하나도 못 한 것이 휴일 근무의 원인이다. 교육 끝나고 저녁에 할까 하다가 그냥 일요일에 조용히 혼자 하는 것으로 결심하고 마음 편히 지내버렸다. 어제 그제는 좋은 사람들과 저녁도 했고.. 그래서 휴일에 근무해도 아직은 쌩쌩하다.

 

심지어 교육 듣는 와중에 귀가해서는 책 읽을 여유도 가졌다. 복잡한 책들은 일단 뒤로 하고 그냥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니 하루만에 뚝딱 다 읽어치워지더라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이제는 잘 안 사게 되는 책 중의 하나이다. 어쩜 그렇게 이야기의 소재가 많은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多作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아주 못 쓴 작품도 고만고만하다는 게 그의 장점이기도 하다. 나는 가가형사 시리즈와 유가와교수 시리즈를 좋아한다. 그래서 잘 안 사던 이 작가의 책을 사게 된 것. <한여름의 방정식>은 유가와교수가 등장한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갈릴레오의 연장선상에서 영화도 만들었었다는 작품이다.

 

괜챦다, 이 책. 관광객들도 뜸한 어느 바닷가 마을에 고모집을 찾게 된 교헤이는 기차에서 괴짜교수인 유가와를 만나게 되고 그 인연은 쇠락해가는 여관을 운영하는 고모집에 유가와교수가 숙박을 하면서 이어지게 된다. 유가와교수와 같은 날 그곳에 묵던 손님이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한꺼풀 한꺼풀 그들의 비밀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점은, 유가와교수와 교헤이와의 유대감이랄까 공감대랄까 그런 감정들이 점차 발전되어가는 모습이 재미있다는 것이고 바닷가 마을에 개발의 열풍이 불면서 이어지는 과학과 환경과의 공존이라는 주제를 얼핏(사실 깊이는 없다. 그냥 얼핏.) 짚고 넘어간다는 점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대략 짐작은 갔음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나 사랑이 얽히고 섥히어 빚어지는 가슴아픈 인생사들이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엔 가슴에 오롯이 남게 된다.

 

"하지만 해답을 바로 찾아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인생도 그래. 금세 답을 찾지 못하는 문제가 앞으로도 많이 생겨날 거야. 그때마다 고민한다는 건 의미 있고 가치도 있는 일이지. 하지만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어. 해답을 찾아내려면 너 자신이 성숙해져야해. 그래서 인간은 배우고 노력하고 자신을 연마해야 하는 거지."

 

유가와교수의 이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냉철하고 인간미라고는 없어보이는 유가와교수이지만, 그래서 더욱 인생의 진리를 말할 때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요즘 유난히 답답해하는 나에게 던지는 말인 듯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가끔씩 이렇게 여유롭게 책을 읽을 때면 행복하다는 느낌을 깊숙이 느끼게 된다. 사람마다 행복한 순간이 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런 순간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 모두가 추구하는 것들, 돈이나 명예나 뭐 기타 등등의 것들을 나라고 안 바라는 것은 아니겠으나, 내 마음의 순전한 곳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은 이 곳, 책을 읽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곳의 내게 있다.

그것이 나는, 참 좋다. 그런 내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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