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무슨 드라마인가에서 사랑 운운하며 이 책을 주었다 해서 띠지에 그런 말이 적혀 있는.. 유치함을 무릅쓰고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무조건 마르케스가 썼기 때문이다. 얼마전 돌아가셨을 때 내가 안 읽은 마르케스의 유명한 책이 이것임을 깨닫고 냉큼 샀다. 그리고 바로 읽어주는 센스..

 

마르케스의 소설은 관능적이면서도 섬세하고 관통하는 인생에 대한 성찰이 있어서 즐긴다. 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이 사람의 글이 참 좋다. 소설의 내용은, 10대때 한눈에 반한 여성을 잊지 못하고 평생을 기다린 한 남자가 그 여성의 남편인 죽자 70대가 되어서 다시 사랑을 고백한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실감나지 않는 이야기라서 이게 뭔가 싶다... 과연 평생을 기다릴 수 있을까. 젊은 날에 반했고 열렬히 사랑했다 해서 평생을 그(녀)만을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 그리고 늙은 얼굴과 구부정한 허리로 다가가서 사랑한다고 다시 고백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지내오면서 그런 사랑을 본 적이 있었던가. 반추해보면... 그닥 떠오르는 바가 없다. 연애를 했으면 결혼을 해서 아주 지지고볶고 살거나 헤어지고는 다른 사람 만나 잘 먹고 잘 살거나 그런 경우들은 있어도 평생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사랑이라. 내 주변에 없다고 흔치 않은 일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어쨌든 상상하기는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나이가 들면서 사랑이라는 것의 정의가 많이 바뀌더라는 거지. 젊은 날에,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 목소리 하나하나에 감격하고 그(녀)와의 추억만으로도 며칠 굶으며 지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겠지. 그러나 시간이 흘러 흘러 이제 다시 나에게 사랑이라는 걸 하라고 한다면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이미 지쳤고, 삶이 녹록치 않음을 알아버렸고, 마음에 불꽃 따위 사그러든지 오래이고, 무엇보다 이제는 생활인으로서의 사랑만이 남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니... 참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사람 사는 게 그런 것이라는 거, 처음 안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른들은 젊은 날에 불타오르는 사랑으로 몸부림치는 연인들을 보며 충고라는 걸 할 수 있는 것 같다. 지나가면 다 잊혀진다. 시간이 해결해준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이 나타날 거다.... 사랑에 눈먼 연인들에게는 너무나 야속하고 속물적인 이야기들이지만... 지금의 나라면 그런 얘기들을 내 입으로 얘기할 수도 있겠다. 나이가 그렇게 먹어버린 걸까.

 

2권까지 찬찬히 읽으며 더 생각해보련다. 나는 이제 뭔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은 사라졌지만, 그 어딘가에서 (그것이 책 속에라도) 완전무결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이 진행된다면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자극을 받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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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06-1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너무 공감되요. 저도 그렇거든요.

"... 너무나 야속하고 속물적인 이야기들이지만.. 지금의 나라면 그런 얘기들을 내 입으로 얘기할 수도.."

저도 그래요. 나도 모르게 어른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네요.
이 책을 읽으면, 현실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완전하고 순수한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겠으니, 저도 도전해봐야겠어요~~

비연 2014-06-16 23:2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좀 서글프긴 하지만, 나이먹는 게 그런건가보다 하고 받아들이게 되네요.. 책은 꼭 한번 읽어보세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