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타는 가을강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너보다도 나보다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겠네.
마종기의 <우리 얼마나 함께>를 읽다 보니, 박재삼 시인과 그 딸과의 인연이 담긴 짧은 에세이가 있었다. 그냥 일상적일 수도 있는 인연에 대한 그 이야기가 내 마음에 별처럼 박혀 서러움이 되는 것은. 아마도 마종기 시인이 외우고 외운다는 이 시의 아름다움 때문이련가.
찾아보니 동명의 시집이 있음을 알았다. 시를 그다지 즐겨 찾지 않아서 유명한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 중 외우는 것 하나 없는 나로서는.. 가끔씩 접하는 이런 시의 아름다움이 문득 서러움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에 감성으로 와닿는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를 외워서 언제 어느 때 한자락씩 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 그게 멋인데... 마종기 시인이 외운다는 이 아름다운 시, 나도 외워볼까나...
밤바다에서
- 박재삼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 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진정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천하에 많은 할 말이, 천상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 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때 나는 섬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찾아보니 시들이 참 좋다. 단아하고 아름다운 우리나라 말들이 내 마음에 진심으로 와닿는 느낌. 정말 시를 외워보고 싶구나. 박재삼 시인의 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