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Tous les matins du monde sont sans retour)
"선생님, 전부터 여쭙고 싶은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
"왜 연주하시는 작품을 출판하지 않습니까?"
"아.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작곡을 하지 않네. 난 절대 악보를 쓰지 않아. 내가 가끔 하나의 이름과 기쁨을 추억하며 지어내는 것은 물, 물풀, 쑥, 살아있는 작은 송충이 같은 헌물일세."
"선생님의 물풀, 송충이 안에 음악이 어디 있는데요?"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
간결한 문장들 위로 예술과 철학과 인생에 대한 사색이 넘쳐난다. 예술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이 구절들 속에서 했다. 자연의 모방인가. 아니면 자연과 일체인가.
"그것은 어려운 일일세. 음악은 말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저 거기 있는 거라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반드시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지. 음악이 왕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는가?"
"그건 신을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자넨 틀렸네. 신은 말하지 않는가."
"그럼 귀를 위한 것입니까?"
"내가 말할 수 없는 것이 귀를 위한 것은 아니네."
"그럼 황금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 황금은 들을 수 없지."
"영광입니까?"
"아니네. 그건 명성에 불과하네."
"그럼 침묵입니까?"
"그건 언어의 반대말에 불과하네."
"경쟁하는 음악가입니까?"
"아냐!"
"사랑입니까?"
"아냐."
"사랑에 대한 회한입니까?"
"아니네."
"단념을 위한 겁니까?"
"아니야, 아니야."
"보이지 않는 자에게 바치는 고프레를 위한 겁니까?"
"그것도 아니네. 고프레가 뭔가? 그건 보이지 않나. 맛이 나고. 그건 먹는 거 아닌가. 그건 아무 것도 아니네."
"더는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죽은 자들에게 한 잔은 남겨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자신을 태우게나."
"언어가 버린 자들이 물 마시는 곳. 아이들의 그림자. 갖바치의 망치질. 유아기 이전의 상태. 호흡 없이 있었을 때. 빛이 없었을 때."
얼마 후 음악가의 그 늙고 뻣뻣한 얼굴 위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자신의 야윈 손으로 마레의 포동포동한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음악은 무엇인가.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것. 뱉어낸 음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 무엇을 위하지 않는 것. 그것 자체인 것. 어쩌면 무아지경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그저 음악은 음악인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어렵다.
파스칼 키냐르의 책들을 뒤져 찾게 된다. 백 페이지 남짓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들 속에서 철학을 찾아 사색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 흔한 건 아니므로. 요즘처럼 일에 치여 나를 잃어갈 때는 이런 책들이 나를 구원해줄 지도 모른다. 읽노라니 설명하기 힘든, 그러나 분명히 느껴지는 만족감이 있다. 글이 사람을 생활의 질척한 늪에서 끄집어 내주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