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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 유니버스 ㅣ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18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다른 분들 리뷰에도 조금씩 언급이 되긴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당혹스러운 표현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고 저자의 알듯 모를듯 드러나는 '엘리트' 의식에 약간의 반감마저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순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잘 쓰여진 책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전기'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역사를 관통하는 흐름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써내려간 저자의 문장력에는 감탄해 마지 않는 바이다. 머릿속에 지식이 있고 읽은 책이 많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흥미를 적절히 유발하며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모두 탁월한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일상 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전기'라는 소재를 통해 과학이 어디 먼 별나라에 우주선을 띄우는 거창한 프로젝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흔히 주위에서 발견될 수 있는, 그리고 거기에서 충분히 문제의식을 도출할 수 있는 것임을 알려주자는 면에서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는 생각일 들었다. 아마도 자라나는 아이들, 혹은 그냥 일반인들이 이 책을 접한다면 좀더 자연과학이라는 분야에 매력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중간중간 이론을 설명하면서 전문용어도 나오고 복잡한 이론을 단순화하다보니 더 얽히는 부분도 있는 듯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아주 훌륭한 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일상적인 것들, 공기라든가 물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잊고 사는 건 인간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오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저자의 서문에서 말했듯이 하루라도, 아니 단 몇 분이라도 없으면 우리의 인생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대상을 우리는 마치 '항상' 있을 것이라 착각한 채 살아간다. '전기'라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최초에 '전기'라는 힘을 몰랐을 때 우리의 선조들은 지금같으면 몇 시간이면 할 일을 몇 주 몇 달에 걸쳐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최초의 발견'은 근사한 이론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 과학자의 '실행'에서 비롯된다. "현상 아래 숨어있는 원인에 대해 고민하는 게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저 착실히 이것저것 만지작거려보는 게 한걸음 더 나아가는 최선책일 때도 있는 법이다." 조지프 헨리는 현상에 대해 고민하고 필요에 의해 전보라는 것을 발명했다. 그렇게 시작된 '전기'에 대한 흥미는 수많은 과학자들을 거쳐 급진적인 발전과 맞물렸고 이제 현대에 이르러 전기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형성되게 되었다.
과학자들도 인간인지라 알고보면 사악한 사람도 있고 동성애자도 있고 성격파탄자도 있고 그러리라 상상은 하지만 야사 비슷하게 저자가 엮어내는 이야기 꾸러미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 우습다 싶기도 했다. 발견과 발명을 둘러싼 암투, 정치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에디슨처럼 우리에겐 천재소년으로만 인식되던 사람도 그저 "양심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빈" 사람으로 나타나지고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에 대한 억압들이 비일비재했음을 보여주는 등 일련의 이야기들은 '전기'라는 어쩌면 좀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를 우리 인간사의 한 토막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외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가 결국은 '전기'에 의해 이루어진 생명체임을 막바지에 다다라 알게 될 때는 경외감마저 생겼더랬다. 흩어져야 할 세포들이 한데 모이고 그들에게 역할이 부여되며 그 속에서 가장 결정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전자의 움직임, 즉 전기라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말이다. 결론적으로 '전기'는 세상 모두를 지배하는 하나의 힘이리라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생명체와 그 생명체가 존속하기 위한 배경을 support 하는 유일무이한 힘. 요즘 자연과학에 대해 떠올리면 대부분 돈 안되고 어렵기만 하다고 인식하는 많은 사람들이 꼭 읽고 세상에 대해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과학임을 깨달았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해졌다.
또한 잘된 번역과 편집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과학을 전공한 번역자의 매끄러운 번역과 친절한 안내글들이 읽으면서 버거울 수도 있을 법한 많은 사람들을 구해주었으리라 생각한다. 편집과 디자인 또한 매우 훌륭해서 다 읽고 책장에 꽂아둔 채 쳐다만 봐도 흐뭇함을 유발한다. 과학이라면 넌덜머리를 낸다거나 어려운 용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읽고 싶어도 고개를 돌리기 힘든 사람들, 혹은 잘 알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수이 읽혀지는 책일 것이다. 모르면 알게 되어서 알더라도 그 하나의 맥락을 짚어나가게 되어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리라 짐작한다. 우주의 생성원리와 생명의 신비가 한 주제로 통일하여 설명될 수도 있다는 것에서 저자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