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가 정원일을 평생 하며 살았고 심지어 그의 프로필에 '화가'가 붙는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무식 비연. 난 그저 좀더 깊이 있는 에세이가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샀을 뿐인데, 여러가지로 놀라운 사실들을 접하고 아연.

 

헤르만 헤세의 책들은 대부분 다 읽었다. 좋아서가 아니라 별로라서(ㅜㅜ) 성질머리가 이상해서 아주 좋아하는 작가와 아주 맘에 안 드는 작가의 작품은 다 읽게 된다. 좋아하는 작가는 뭐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다 그럴테니. 맘에 안 드는 작가는 왜? 내가 왜 남들이 다 대문호라고 칭하고 열심히 밑줄쳐 가며 읽어대는 작품들을 뜨아해 하는가. 뭔가 다른 점을 찾아보자. 내가 좋아할 만한 구석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야. 하면서.. 근데 대체로 맘에 안 드는 작가는 다 읽어도 비슷했다..

 

그렇다고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오. 절대 그럴 수는 없다. 그의 글은 깊이가 있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은 오히려 현실감이 있으며 섣불리 속단할 수 없는 성찰이 드러난다. 다만, 나는 메세지를, 경구를 주려고 하는 문체에 힘겨워할 뿐인 거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책은 좋다. 역시 에세이도 그냥 날림으로 대충 쓰는 걸 읽을 때와는 다른 맛을 선사한다. 첫장을 펼쳐들면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건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이 글귀를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면 내가 넘 감상적인 것일까.

 

 

나는 내 작은 정원에 봄이 온 것을 기뻐하면서 콩과 샐러드, 레세다, 겨자 따위의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앞서 죽어간 식물들의 잔해를 거름으로 준다. 그러면서 그 죽어간 것들을 돌이켜 생각하고, 앞으로 피어날 식물들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해본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나도 질서정연한 자연의 순환을 자명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씨앗을 뿌리고 수확을 하는 이따금의 순간, 내 마음속에는 땅 위의 모든 창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들만이 이와 같은 사물들의 순환으로부터 어딘지 제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물들의 덧없음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을 위해서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특별한 무언가를 갖고 싶어하는 욕구가 너무도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pp20-21)

잠은 자연이 주는 가장 귀중한 선물 가운데 하나이며, 친구이자 피난처이고, 마법사이고, 조용히 위로해주는 자이다.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는 고통 때문에 겨우 30분 정도 조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살면서 잠 못 이루는 밤을 한 번도 경험새보지 못한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이라면 분명 가장 순진한 영혼을 지닌 자연의 어린아이 같은 사람일 것이다. (pp35-36)

 

날이 덥다. 아열대 기후가 맞는 게지. 이런 때는 선풍기며 에어컨이며를 끼고 살게 되는데, 그 속에서도 허덕허덕거리다가 세월 다 보내는 수가 생긴다. 역시 이렇게 더울 때에도 책을 보는 것이 오히려 피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던 대작가의 육성을 보며 들으며 인생을 사색하고 괜한 서늘함도 느껴보는 것 말이다... 이 책 좋다. 헤르만 헤세를 나처럼 그닥 호감스러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찬찬히 또박또박 한글자한글자 소중히 읽을 수 있다. 내가 그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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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8-03 0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이 다시 나왔군요.
왜 이 책이 예전에 쉽게 절판이 되었나 궁금한데,
요즈음 우리 사회 흐름을 헤아리면
다시 잘 읽힐 수 있을까 하고 빌어 봅니다.

비연 2013-08-03 20:19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절판되었다 다시 나온 거였군요...^^
함께살기님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읽어보며 느낌을 새롭게 하시는 것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