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 지난 원고를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대충 준비하고 노트북이랑 바리바리 싸들고는 집 앞 투썸플레이스로 나왔다. 집 앞에는 카페가 한 두개가 아니지만, 인터넷이 자유로우면서 좀 조용하면서 앉는 자리가 널찍한 곳은 찾기가 힘들다. 별다방 콩다방은 이른 아침부터 수다하는 아줌마들과 뭔가 오타쿠같은 느낌을 팍팍 풍기는 아저씨들에게 점령 당해 들어가자마자 나와버렸고.. (무엇보다 전선 연결할 수 있는 자리를 다 점령당했다는 게 컸지ㅜㅜ) 결국 10여 분 걸어나와 이 곳으로 왔다. 여기는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내가 바라는 요건들이 대체로 갖추어져 있다. 지금 이 카페에 나 혼자라는 거. 아. 이 카페 망하는 거 아냐. 이 비싼 땅에.

 

조금 전까지는 내 옆에 부녀가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더랬다. 아이는 중학생 정도. 아버지는 겉보기에도 문화예술인인 것처럼 보였는데 역시나 (들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내 귀에 그냥 흘러들어오는) 대화로 미루어보건데, 뭔가 예술인이었다.

 

딸: 아빠. 이번에 예술제(?)에서 상 받아?

아빠: 그건 말이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어.

딸: 그래? 쉽네. 낙타를 갈아. 그래서 바늘 구멍에 넣으면 되지.

 

참으로 훈훈한 대화가 아니냔 말이다..푸히힛. 암튼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아빠는 딸에게 절약해야 한다는 거, 친구들은 어떠냐는 거,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아이는 그냥 대충대충 대답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토요일 아침 부녀가 나와서 '대화'라는 걸 하는 걸 보니 저 집안은 소통은 되는 집안이군.. 이란 생각을 잠시 했다.

 

아. 원고는 한달이나 기한이 있었는데 그동안 뭐했을까. 요즘 여러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생활이 엉망인지라 이것도 저것도 못하는 몇 달이 이어지고 있고.. 그게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나를 짓누르고 있다. 좀 편하게 편하게 지내야지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 건, 역시나 성격 탓이다..


 

요 책을 집중해 읽어서 어제 다 읽어버렸다. 상당히 독특한 문체의 책이었고 내용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문학은 혁명이고 혁명은 텍스트에서 비롯되며 이건 세상이 망한다 망한다 해도 한참 멀은 종말론에 휩싸여 문학이 끝이라는 둥 하는 얘기로 좌절하는 건 말도 안된다는 얘기를 특유의 화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 루소가 나오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나오고 버지니아 울프가 나오고 중세 혁명 얘기가 나오고..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들을 등장시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논지를 이어가고 있다. 오호. 보기드문 재미난 책이었다.

 

이제 막 시단에 새로이 등장한 폴 발레리가 스승으로 우러러보던 스테판 말라르메에게 詩作의 충고를 구하는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말라르메는 어떻게 답장을 썼을까요? "유일한 참된 충고자, 고독이 하는 말을 듣도록"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일화입니다. 자신이 하는 말도 듣지 말라는 얘깁니다. 누구의 '부하'도 되어서는 안 되고 누구의 '명령'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르네 샤르나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스가 시로 쓰고 있는 듯한, 일종의 거절이라는 것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책 중에서)

 

계속 흥미를 가지고 있을 만한 사상가이다. 사사키 아타루. 책을 자주 낼 것 같지는 않지만 나온 책이라도 번역되고, 앞으로 나올 책들도 계속 번역... 이 아니라 내가 원서를 읽을 수 있도록 일어를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

 

 

이번 주말의 쟝르소설은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짓는 사람>이다. 흠.. 그러고보니 계속 일본사람들 책만 읽는 주간이구만. 흠... 그래도 누쿠이 도쿠로의 이 책은 바로 읽고 싶다.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사람인데다, 내가 좋아라 하는 기법으로 썼기 때문. 르포르타주 형식의.

 

 

 

 

 

 

 


 

아직 <~ 증후군> 시리즈는 읽지 않았다. 뭐랄까. <우행록>을 읽고 난 후였던가. 이 사람 책은 당분간 보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날 심리적으로 넘 괴롭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버거운 감정을 주었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꽤 오랜만에 읽게 되는 것 같네. 누쿠이 도쿠로 아저씨. 반갑슴다~

 

일하자. 원고기한도 넘겼는데 제대로 써주기나 해야지 않겠는가. 벌써 12시가 다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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