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요코야마 히데오의 번역된 소설은 다 읽었다. 가장 먼저 접했던 <루팡의 소식>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나올 때마다 닥치는 대로 보았다고나 할까. <얼굴>은 일드로도 봤지. 아마 오다기리 조가 나왔었지. <종신검시관>이나 <얼굴>은 괜챦았던 것 같고 나머지는 그냥 그런 범작 수준이었다는 인상이었다.

 

그래도... 라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작가라. 이번에 <64>가 나왔을 때 그냥 샀다. 이전의 범작들에게 느꼈던 심정들은 다 멀리 버려버리고 우선 샀다. (이런 작가가 한두 명이 아니라 조금 찔리기는 한다). 거의 700페이지 가까운 분량에 아연실색했지만, 10년만인가 낸 소설이라니. 고치고 또 고쳤다니. 도대체 어떤 거길래 그렇게까지 한 거야. 라는 심정을 가지고 이번 연휴 여행 때 만만치 않은 무게로 살짝 고민은 했었으나 과감히 짐에 넣고 출발했다.

 

그리고... 힐링여행이라는 명목 하에 일찍부터 침대에 드러누워 책을 보는 걸 선택한 나는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아니 도저히 다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책이었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경찰이나 형사 얘기를 쓰지만, 그 직업에 대해 쓰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글을 쓰기에 끌리는 작가인데 이 작품 <64>는 정말 딱 그에 부합된다.

 

14년 전의 유괴사건. 미결. 유괴된 소녀는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고 돈까지 범인이 가져가버린 최대의 실패작. 그 사건에 관여했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굴레. 그 아버지. 그리고 주인공 미카미. 그 사건이 경찰 내부의 갈등 속에서 다시 불거져 나오고 급기야 비슷한 유형의 유괴사건이 벌어지게 된다는 내용. 14년 전의 유괴사건이 지금 이 시기에 재현되고 14년의 세월동안 많은 일들을 겪없던 형사들은 자신의 인생과 견주어 이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특히 미카미. 딸이 자신의 거친 외모를 닮았음에 비관하여 가출한 전직 형사이자 지금은 홍보담당관. 딸의 부재 속에서 스스로의 신념이 휘둘리고 거기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나가는 힘겨운 과정이 이어진다...

 

추천. 아니 강추다. 읽는 내내, 좀 설명이 많다 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지겹게 느껴지지 않는 매력이 있는 소설이고, 요코야마 히데오가 그동안 더욱 무르익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고 충격을 쾅쾅 주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인생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산다는 것에 대해 직업과 가정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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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미아 2013-05-2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름에는 역시 스릴러나 추리소설물이 땡기네요. 일본소설만 읽다가 요즘 독일쪽도 관심이 갑니다. 검색을 하다보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신데렐라 카니발> 같은 도서랑 근래에는 <너무 예쁜 소녀> 라는 작품도 있는 거 같아요. 이렇게 3권 읽어보려고 하는데 혹시 다른 도서들도 다 읽어보셨나요?

비연 2013-05-25 23:25   좋아요 0 | URL
맘마미아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읽어보았어요. 괜챦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