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했다. 뭐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skip. 다만 심란하여 소설책들 주섬주섬 챙겨 읽었노라 영화 띄엄띄엄 보았노라 얘기해본다. 머릿 속이 복잡할 때는 책 읽고 영화 보면서 다른 생각 못하게 머리를 채우는 게 시급하다. 나는 그동안 그렇게 지냈다.
미뤄 두었던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소설들을 챙겨 읽었다. <흑백>은 사 둔 지 꽤 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안주>를 읽어야 하는.. 그러니까 시리즈물 비스므레하다고 해서 둘다 아껴서 봐야지 하며 두었던 책들이다. 개인적으로 <흑백>은 좀 그랬고 <안주>는 두꺼웠지만 꽤 잘 나가는 작품이었다. 둘다 미시마야라는 상점의 조카딸인 오치카가 괴담 이야기를 듣는 내용인데.. 꽤 재미나고, 미야베 미유키는 이 책을 시리즈물로 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오치카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이렇게 생활해나가면서 괴담들도 진화시켜보겠다는 욕심이 있다고.
어쨌거나 미미여사의 에도물들은 흡인력이 있을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이나 정을 놓지 않고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이 시기의 나에겐 꽤 도움이 되었다. 뭐랄까. 속에 점점 가라앉아 가고 있는 사람의 대한 정을, 신뢰를 그렇게 버리지 말라고 은근히 종용한달까. 그래서, 이 시리즈물에 대한 기대는 자못 크다.
맛에 대한 에세이라고나 할까. 오늘 집어들었다. 박찬일 셰프에 대해서는 이 책을 고르면서 알게 되었는데, 기자 생활 하다가 문득, 이탈리아 음식에 꽂혀서 이탈리아에 가 요리를 배우고 돌아와 셰프를 하던 중 이렇게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된, 누가 보면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하나의 대상에 몰입해본 사람은 그 속에서 반드시 인생을 알게 된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다.
생각해보면, 이 책의 제목처럼 추억의 많은 부분이 맛과 관련된 것 같다... 책을 읽다보니 나도 그런 내용으로 에세이를 쓸 수 있겠구나, 아 그러고보면 누구나 그런 이야기로 에세이를 쓸 정도는 되겠구나. 그러니까 이런 소소한 생각들을 참으로 맛깔스럽게 쓰는 사람이구나, 이 사람. 이런 생각을 주르륵 하게 된다. 병어 이야기를 쓰고, 옛 중국집(중식 레스토랑이 아니라 중.국.집.)의 짜장면 이야기를 쓰고 그렇게 추억에 켜켜이 묻어져 있던 음식과 맛과 사람 이야기를 쓰는 이 책은, 문자 그대로 내게 훈훈함의 정서를 안긴다.
우리는 인생 앞에 놓인 수많은 맛의 강물을 건넌다. 당신 삶 앞에 놓인 강물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때로 혀가 진저리치게 신맛도 있어야 하고, 고통스러운 늪 같은 쓴맛도 결국은 인생의 밥을 짓는 데 다 필요한 법이 아닐까. 밥의 욕망, 밥에 대한 욕망, 그것이 우리를 살린다.
- 작가 서문 중.
나는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내는 책을 사랑하고 있다. 우리나라 말로 쓰는 글들은 번역물보다 때로 아주 강렬하게 내 마음에 꽂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대상으로라도 글을 쓰고 그 글을 읽고 그랬으면 좋겠다. 모국어가 주는, 매우 섬세한 감정결들이 우리의 감성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거라 믿기 때문에. 그리고 요즘 보면, 참 좋은 글들을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좋다.. 싶다.
우연히,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극장에 걸렸을 때도 보고 싶기는 했었는데..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었다. 미미여사의 책 <화차>를 무지하게 감명깊게 본 나로서는,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많이 궁금했더랬다.
원작과는 좀 다른 분위기, 다른 결말이긴 하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을 놓지 않게 하는 짜임새가 있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한 편이고. 특히나 (누구나 느끼겠지만) 김민희의 괄목할 만한 성장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나를 지우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여야 했고 그 시체를 조각조각 내어 버려야 했던 그 작업을 할 때의 김민희는... 정말 그 역에 빙의된 듯 했다. 그 절절함이, 그 구역질남이, 그 괴로움이 마음에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극장에 가서 <도둑들>을 봤다. 사진을 올리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 <오션스 일레븐>의 우리나라 버전 정도? 엄청나게 인기가 많은 건, 킬링타임용으로 매우 적당하고, 배우들이 대부분 쭉쭉빵빵하고, 시나리오 완성도도 나쁘지 않은 덕분인 것 같고.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김윤석이라는 배우에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몸매 죽여주는 전지현이나 김혜수, 얼굴 작고 어리고 잘생긴 김수현, 마초적인 이미지로 변모 중인 이정재, 나이 들어도 어느 역이나 잘 소화해내는 김해숙, 여전히 진부하지 않은 코믹 캐릭터 오달수.. 들만 모였으면 조금 싸보이는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김윤석이 무게중심을 잡으니 영화가 왠지 있어보이는 느낌이었다. 한 사람의 아우라가 그렇게 영화를 격상시킬 수 있다는 것. 그 내공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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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렇게 지냈다. 이제 9월이고. 심란함도 좀 가셔졌고. 그래서 잘 지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주말을 보냈다. 남 일에 신경쓰지 않는다 해도, 취직한 후배가 한턱 내겠다고 하면 반가운 마음에 나가게 되고, 사촌동생들 군대 간다고 하니 문자 하나 날려 격려하게 되고, 여전히 졸업 못 해 허덕이는 후배 힘내라고 연락해서 웃게 하고.. 그런 시간들의 파편도 내 주말엔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은 어쨌거나 사람에게서 위안을 얻고 사람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밖에 없겠지. 오지랖을 넓게 하는 건 자랑이 아니겠지만, 사람간의 정감을 남기는 건 내게 꼭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