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런 제목을 가진 책을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이런 책을 사는 나라는 사람이 있다. 보기에는 무지하게 재미없어 보이는 책.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측정'이라는 것에 꽂혀서 샀고.. 물론 이걸 추천한 사람도 있었다는...
오. 근데 재밌다. 몇 장 안 읽었는데도 이게 재미있는 책이라는 예감이 매우 또렷하게 느껴진다.
대니얼 디포는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임시방편 척도를 소개한다... 라고 시작하는 책. <로빈슨 크루소>에 무슨 척도가 나와? 갸우뚱. 갸우뚱.
배가 난파되어 15년간 무인도에 갇혀 있던 크루소는 어느 날 바닷가를 거닐다 "웬 사람의 맨발 자국"을 발견하고 나서 "마치 번개를 맞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동안 사람의 모습이건 그림자건 전혀 마주친 적이 없었"기에 로빈슨 크루소는 "극도로 겁에 질려서" 사흘 밤낮을 온갖 공상에 시달리다 그것이 사탄의 발자국인지, 야만인이 지나간 흔적인지, 자신의 발자국인지, 두려워 헛것을 본 것인지 알아내려면 "다시 해안으로 내려가서 발자국을 본 후에 내 발에 맞춰" 대보는 수밖에 없겠다 싶어 해안으로 돌아가 자기 발을 발자국에 대보는데 발자국은 자기 발보다 훨씬 컸다. 이렇게 "측정" 한 뒤에야 자기 말고도 딴 사람이 섬에 올라왔었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로빈슨 크루소는...
오호라. 오호라. '측정'의 역사를 이렇게 풀어나가기 시작하다니. 로빈슨 크루소의 행동은 '사물의 행동을 알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모르는 사물의 속성을 아는 사물의 동일한 속성과 비교하는 것을 대변한다! 라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혹은 이런 류의 글을 읽으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 아닌가? 난 이 책을 단박에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아직 시작이라, 더 쓸 말도 없지만..ㅎㅎ 아주 기대 만빵이라는, 출퇴근길이 다시한번 즐거워지리라는 기대감이 들떠있다. 나는 이런 류의 책,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그것의 역사를 풀어나가는 책을 좋아한다. 소설, 논문, 기타 등등의 모든 자료로부터 총동원한 근거를 가지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