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빈> 스콧 피츠제럴드

 

그는 다시 스위치를 내리고 창가로 가 창턱에 팔꿈치를 괴고 깊어지는 아침을 응시했다. 감정이 깨어나면서 그가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하찮다는 느낌, 그의 인생이 철저하게 어둡다는 데서 오는 둔한 통증이었다. 갑자기 벽 하나가 불쑥 솟아올라 그를 둘러쌌는데, 황량한 방의 흰 벽처럼 확실하고 손에 만져지는 벽이었다.

 

오늘 아침버스의 소음으로 신경이 거슬린 것을 시작으로 온종일 안 좋았다. 조짐이 안 좋았던 것은, 사실 샤워할 때부터였다. 뭘 하나 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앞에 놓여 있던 샴푸며 린스며 통들이 와르르 쏟아진 것. 흠. 이런 것에 연연하면 안돼..라고 다짐했지만, 역시나 이런 류의 신경쓰이는 일들이 계속 되었다. 집에 돌아올 즈음엔 많이 풀려 있었지만..그래도 여전히 속은 아프다.

 

이 벽을 인식하게 되자, 그의 존재의 로맨스, 태평함,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즉홍성, 삶이 부여했던 경이로운 관대함, 지금껏 있어왔던 이 모든 것들의 빛이 바래버렸다.

 

그래서인가. 나른하고 뭔가 내키는 대로인 스콧 피츠제럴드 소설의 글귀들이 가슴에 박혀 온다. 참을 수 없는 인생의 가벼움과 즉홍적인 언행들, 지나친 들뜸으로 점철된 인생 속에서 어느 순간, 정말 어느 한 순간 느껴지는 가슴 뻐근한 통증과..벽.

 

3시의 거리는 뜨거웠고 4시에는 더 뜨거웠다. 4월의 먼지가 태양을 휩쓸고 가리면서 다시 퍼져 나갔다. 세상만큼 오래된 농담이 영원처럼 지속되는 오후에 끝없이 계속되는 것만 같았다... 이 열기 속에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인생은 비바람에 드러나 있다. 그리고 기다림이다. 사건이란 것이 무의미한 그런 더위를 견뎌낸 후, 피곤한 이마를 짚는 여인의 손처럼 부드럽고 위안이 되는 서늘함을 기다리는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단편들은 그의 장편들보다 못하다는 게 일반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내게 있어 그의 단편들이 절박함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지금 이순간 피츠제럴드의 정신세계를, 그의 심리상태를 다 이해할 것만 같은 착각에까지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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