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이다. 발견하고보니 신형철이라는 평론가에 대한 좋은 평가들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표지가 마음에 들고 제목이 마음에 들고 해서 8월의 첫 책으로 골라보았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즐겨 마시는 커피의 종류를 알고, 네가 하루에 몇 시간을 자야 개운함을 느끼는지 알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인가?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네 귀에 가닿을 때의 그 느낌을 모른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울림일 그것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첫 장을 펼치자 이 글이 나온다. 아뜩하다. <몰락의 에티카>.. 평론가의 첫 평론집에 나온 글을 뽑아 다듬어 옮긴 글이라 한다. 나는 이 책을 보관함에 얼른 담았다. 이런 글이라니.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라니.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대체로 타자다. 나는 그저 '나'라는 느낌, 너는 그냥 '너'라는 느낌.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

느낌의 공동체. 산문집 제목이 나온다. 그리고 사랑은 능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랑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사랑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가. 느낌의 공동체,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이 '느낌'이라는 말이 사무치게 좋다.

사랑할수록 문학과 더 많이 싸우게 된다. 사랑으로 일어나는 싸움에서 늘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는 잘못을 저지른 쪽이 아니라 더 많이 그리워한 쪽이다.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 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진다. 나는 계속 질 것이다.

책머리의 글. 사랑을 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이 느낌. 싸우고 미워하고 뒤돌아섰다가도 그의 안위가 걱정되고 그의 생활이 궁금해져서 참다가 참다가 자존심이라는 것을 뒤로 한 채 먼저 말을 걸게 되는 사람이, 더 많이 그리워하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사랑하면 사람은 바보가 되는 것이겠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감정, 관심, 그리고 사랑. 첫 몇 장에서부터 신형철이라는 평론가, 나를 사로잡고 있다.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미망을 오래전에 버린 것처럼,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허망도 이제는 내려놓고, 그저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나 자신을 더 삼엄하게 학대하려고 한다.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아...나는 이 책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강렬한 '느낌'에 8월의 첫날부터 들떠있다. 누군가를 들뜨게 한다는 것. 누군가로 인해 들뜰 수 있다는 것. 이 여름날, 참으로 신묘스러운 감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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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06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신형철님은 좋겠어요 :D

알라딘에서만 벌써 몇명째인지..^^ 비연님 쫌만 지나면 가을입니다~

비연 2011-08-06 13:32   좋아요 0 | URL
이 분의 글, 마음에 사무치는 글들이에요..
이 무더운 8월이 지나면 어느새 가을이겠죠. 기대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