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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6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오형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이 추리소설은 이제까지 내가 읽은 추리소설 중에서 단연 압권이다. 내가 선호하는 소설은 주로 명석하고 말많은 사설 탐정(에르큘 포와로니 파일로 반스니 등등)이 나와 사건을 전반적으로 주도하면서 거기에 현학적인 지식까지 가미하여 결정적으로 범인을 밝혀내는 류의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와는 정반대로 탐정과 경시청 경감 등이 중간쯤 되면 예측이 되는 범인을 좇아가는 궤적들을 하나씩 따라가며 그 알리바이를 캐가고 논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이 묘미가 대단했다. ^^
우연히 발견된 통 속의 시체. 그리고 금화들. 알 수 없는 내기와 편지들. 처음에 이렇게 시작된 살인사건은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그 실마리들이 조금씩 밝혀지게 된다. 여기에 번리경감과 르빠르쥬 형사의 우정이 돋보이고 서로 발견해낸 증거들을 열심히 토의해가며 사건을 파헤치는데...이렇게 밝혀진 범인은 무고함을 호소하고 여기에 새로운 탐정이 나타나 다시한번 논리를 역전해가는 과정이 너무나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다. 마치 내가 탐정이나 경감이 된 것마냥 범인이 교활하게 꾸민 그 내용들을 모아진 증거와 대조해가면서 가정을 해보고 알리바이를 생각해보게 하는 데다 가끔씩 펼쳐지는 낭만이, 이 소설이 그냥 팍팍한 탐정소설에 그치지 않게끔 도와준다. 그리고 마침내 해결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러면 그렇지..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독특한 추리소설이다.
철저하게 현장 중심으로, 뭔가를 상상하거나 억지를 부리지 않는 모습들이 우리네 일선 형사들도 이렇게 사건을 탐문하겠구나 하는 감마저 가지게 한다. 아마도 이 소설이 씌어진 건 1920년대이지만 현재까지도 이러한 방법으로 많은 수사들이 이루어질 것이다. 놀라운 건 역시 사람들은 돈에 약해서(ㅋㅋ) 생각나지 않던 것도 얼마간의 돈과 우회적인 말로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추리소설은 인간의 심리는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놀라운 쟝르이다.
기존에 다른 류의 추리소설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적극 추천한다. 정말 잘 씌어졌고 논리가 탄탄하며 정교하게 짜여진 그 틀이 놀라운 미스터리물이며 마치 수수께끼나 퍼즐을 풀어나가는 것마냥 사람을 즐겁게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나도 처음엔 이거 시시한 거 아냐? 하는 의문으로 시작했으나 책을 덮을 때는 누구에게나 권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