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부터 잠정휴업에 들어갔다고 이전 글에서 밝혔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잠정휴업이란 무엇인가. 조금 아주 조금 고민했었다. 일주일 완전 쉬니까 나만의 시간이 왕창 늘어나니까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지금 생각하면 헛된 망상에 젖었더랬다.
쉬기 시작한 순간부터 더 아파오기 시작했고, 근 닷새동안 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바이다. 기상시간은 해가 중천에 걸렸을 때 쯤이 되었고 그 때 겨우 몸 추스려 일어나서는 아침 겸 점심을 꾸역꾸역 먹고 다시 졸려 자고 그리고 저녁인지 야참인지 모르는 밥을 먹고 또 자고. 이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전화도 받지 않고 네이트온에 접속도 하지 않았고 아주 가끔 돌아오는 머리에 메일 내용을 구겨 넣곤 했다.
무슨 겨울잠도 아니고 왠 잠을 그리 자대었냐? 라고 의아해할 지도 모르겠으나, 아프니까 그저 잠이었다. 뭐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블로그질도 (사실 이거 거의 폐가 수준이라 복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고 쌓여있는 사진들 보면 한숨만 나온다), 책읽기도, 심지어 그냥 앉아서 TV 보기도 못했다면 할 말 다 했음이다.
어제 점심 때 쯤 되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 그 전에는 수퍼만 다녀와도 할머니처럼 헥헥거리고 퍽픽 쓰러지기 일쑤였으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는데, 난 한번쯤 픽 쓰러지는 게 어릴 때부터의 로망이었다. 그 왜 있지 않은가. 운동장에서 조회할 때 갑자기 모로 쓰러지는 여성들. 나중에 실제로 쓰러져본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 그게 말짱 쑈였음에 좀 분개했더랬다. 정말 쓰러지면, 순식간에 '퍽' 쓰러지기 때문에 바닥에 어느새 헤딩하는 자신만이 남을 뿐이라나) 어제부터는 좀 다녀도 괜챦았다. 그래서 몇 주간의 숙원이었던 미용실 가기를 실행했고 쇼핑도 했다.
서론이 길긴 하지만, 그 기간 중에도 내가 놓지 못 했던 것이 딱 두가지가 있었다. 바로 '야구'와 '닉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였다.
야구야 뭐...흐흐흐흐. 오늘도 결.국. 역전승을 하면서 선두자리를 굳히고 있는 두산이다. 초반에 너무 힘 빼는 거 아니야 라는 불안감도 있지만 여지없이 더욱 강해진 면모를 보이고 있으니 한번 믿어볼 만 하지 않나 싶다. 이성열의 활약이 매우 돋보인다는 것도 주목. 늘 새로운 타자나 투수가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또 두산의 매력.
어쨌거나, 책 얘기로 돌아가서. 닉혼비의 책은..뭐랄까 정말이지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특히 이 책은 닉혼비 나름의 독서월기(月記) 정도가 되는 지라 개인적인 얘기나 느낌들이 뚜렷이 드러나서 더욱 흥미로왔다. 대부분의 리뷰에서 얘기들 되고 있지만, 지루한 책읽기는 집어치우고 마음 가는 책을 읽어라..라는 내용의 모토도 무지하게 마음에 든다 이거다.
읽는 내내 정말 유쾌했고 책 안 읽는다 안 읽는다 하면서도 쉼없이 책을 사고 어떻게든 읽어나가면서 그 속에 담긴 여러가지 문학적 의미라든가 맥락등을 짚어나가는 그가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세 가지.
하나. 난 다른 사람들은 사는 책 다 읽는 줄 알았건만..그래서 내가 중독처럼 책 사는 것에 좀 미안함 혹은..부끄러움 뭐 그런 걸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세상에. 닉혼비도 그러더라는! 그는 읽을만한 책은 침대 머리맡의 책장에 두고 세월이 지나 살 당시의 매력이 점점 옅어지는 책들은 다른 책장으로 이동시키곤 한다고 한다. 흠..나도 책장을 그렇게 분류해볼까나.
둘. 닉혼비가 샀다거나 읽었다거나 하는 책 중에 내가 모르는 게 왜 이리 많은 건지. 세상은 넓고 볼 책은 많다..이런 말이 실감이 팍팍 났다. 나랑 겹치는 게 손에 꼽을 정도. (물론 나보다 독서량이 훨씬 많은 분들도 많으니까 이건 나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 그래도 내가 읽고 좋았던 것을 닉혼비도 좋다고 했을 때는 괜스레 좋더라. 내가 좋아하는 작가니까. 그런 사람이 인정한 책을 나도 좋게 보았다는 건 좀 우쭐한 이야기 아닌가. 큭.
셋. 번역한 것만 보지 말고 원서를 한번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영어는 어떨런지. 내가 그닥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그 위트와 유머와 촌철살인이 그대로 전해질지는 의문이지만. 생생한 글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 정도. '하이 피델리티'는 읽었니까, '어바웃 어 보이' 나 '슬램'을 한번 골라볼까.
나도 이런 식으로 정리해볼까 하는 마음도 든다. 그 달의 읽은 책과 산 책을 나열하고 느낌을 적어나가는. 혹은 한 책에서 얻은 정보로 다른 책을 고르는 등의. 나의 독서원칙은 완전히 자유분방이지만, 한가지가 있다면 '좋아하는 작가는 전권 완독'(번역이 다 된다면. 러시아어 이런 걸 원서로 읽을 순 없으니. 하긴 영어일지라도ㅜ) 그리고 '싫어하는 작가도 세권이상 읽기'인데, 거기에 하나 더 덧붙여도 좋겠다. '책에서 나온 책 혹은 작가글 읽기' 이 정도.
이 책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4쇄까지 나왔는데도 군데군데 오자나 탈자가 보인다는 것. 예를 들어, p237에서 '나는 '길리아드'의 몇 부분은 여러 번 다시 읽어야 했다. 하지만 은혜와 빚, 세례에 관한 아름답고 명쾌한 부분은 수차례 읽고 나서야 겨우 조금 이해했다.' 이렇게 써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빚'이 아름답고 명쾌할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다. '빛' 아닐까?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다. 암튼 난 두세번 반복해 읽어도 확 와닿지 않는 부분이다.
뱀꼬리. 쉬는 동안 즐찾이 하나 빠졌다. 흑. 즐찾 찾아서 빼기도 힘들텐데, 그렇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