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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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선언하듯이 평가할 수 있는 책이 아주 많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추상적이고 난해한 문체를 구사하지 않고도 사람의 마음결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느끼게 하는 힘이 있는 책이다. 아마도 그것은, 작가 스스로 평생을 생각하고 느끼고 가슴아파하고 고민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던 감정의 맥락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질적인 사회에서, 그것도 우월한 입장이라기보다는 소수자 혹은 타자의 입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식을 성공시키기 위해 혹은 자기 본인이 공부하기 위해 어렵게 어렵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 살아가는 인도 사람들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같지 않은 구석이 있다.

누가 봐도 인도인라고 알아볼만한 외모를 가진 채, 부모는 벵골어를 사용하고 가르치고 인도의 음식을 고집하고 전통의상을 걸쳐입고 같은 민족끼리 오글오글 모여 지내는 반면, 자식은 이미 미국 사회에 동화가 되어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고, 벵골어를 어려워하고, 청바지와 티셔츠를 편하게 생각하고 미국 사람을 사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미국 음식을 먹는 게 더 편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부모나 자식이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늘 본인이 아는 전혀 다른 문화가 수시로 충돌하는 뻐걱거림과 이를 억지로 외면해야 한다는 슬픔을 공유하는 동지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예전에 프랑스에서 가족과 함께 10년 넘게 살다가 귀국하셨던 어느 박사님이 그러셨었다. 2~3년은 적응하느라 한국보다 여러가지로 합리적이고 편해서 여행 온 기분으로 즐겁게 지냈지만, 그 이후부터는 그건 그냥 생활이었다고.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과 지내는 동안에 내내 뭔가 알 수 없는 얇은 벽이 느껴져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그래서 시끌벅적하고 서로 소리높이기 일쑤인 이곳이 더 좋다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미국이나 유럽이나 곳곳에 여러가지 이유로 정착해 살면서 이들과 비슷한 느낌과 갈등 속에 살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더랬다. 이국에 정착하기 위해, 가족의 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기만하고 감정을 포장하며 지내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게 되고 상처받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이질적인 문화 위에 가족간의 몰이해가 겹쳐 반목하게 되는 것. 때로 가족만한 상처가 있던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모셔야 한다는 중압감은 있으나 내키지 않아 고민하는 루마에게 같이 살지 않겠다고 나의 인생을 살겠다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고, 그것은 긴긴 세월 이국에서 뿌리를 내리고자 애쓰며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일종의 반기였다 (길들이지 않은 땅) . 낯선 곳에서 만난 동족과 가족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고 어머니의 마음에서 사랑이 싹트기도 하지만, 결국 미국여자와 결혼하고 미국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동족과 만나는 것을 멀리하게 된 프라납 삼촌 또한 행복한 인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옥-천국) . 동생만큼은 미국인으로 키워보겠다며 미국적인 것만을 제공하고 미성년임에도 술을 알게 한 누나 수드하는 어느 새 똑똑했던 동생이 알콜중독 환자가 되고 점점 변해가는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며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좋은 사람) .

헤마와 코쉭의 시점에서 이야기 되는 3편의 연작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냥 동족이라는 것 때문에 우정을 가장하여 친하게 지내던 두 인도가정은 너무나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결국 한 가정의 부인이 암으로 죽어가는 와중에 사실을 모른 채 미움을 키워나가게 된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이국 땅에서 공부를 하던 코쉭은 사진기자가 되어 험한 곳들을 전전하며 정착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되고 그 여정은 어느새 어머니의 죽음과 연결된 지점으로 향하게 된다.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는 교수로 성장한 헤마는 전형적인 미국여성으로 자랐으면서도 부모의 뜻에 따라 혹은 자신의 모순을 이기지 못해 순응하는 결혼생활을 선택하게 되고. 모두가 뿌리박지 못한 인생의 결과이다.

어쩌면 이런 감정들은 꼭 이국땅에 뿌리박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게다. 늘 마음 한 켠에서 두 세가지의 상반된 감정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인간이고 보면 그 모순과 갈등이 대부분의 보통사람을 파괴하지는 못 할지라도 쭈욱 뭔가 해결되지 않은 느낌을 지닌 채 살아가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나의 전 세대인 부모와는 늘 부딪히고, 가족간에 생길 수 있는 불화나 반목은 또한 가족이라는 미명 아래 애써 무시하려 하나 늘 상처받게 되고, 내 인생이 제대로 된 인생인지 내가 나의 인생을 사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지속적인 회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담담하고 세밀한 어조로 그 감정을 똑바로 보기를 설득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작품들은 비단, 이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말꼬리) 난 원제인 <unaccustomed earth>가 제목으로 훨씬 맘에 든다. <그저 좋은 사람>도 좋았지만, 그래도 가장 말하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번역하면 너무 상투적인 말이 될까봐 피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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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0-02-10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연님 글에 동감해요.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면서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라히리의 이민세대 이야기가 공감하는바가 컸던 것은 내가 처한 상황하고 비슷해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비연 2010-02-10 12:09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반갑습니다^^ 저는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직인 영원히가 될 가망성이 크다는..ㅜㅜ) 나이먹을수록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평생을 마주하고 사는 사람들간의 애증이랄까 복잡미묘한 감정이랄까...그래서 이 책이 여러가지로 의미하는 바가 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