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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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네 상대로 시건방진 말을 하는 것 같은데요. 요물이란 있지 않을까 의심할 때는 반드시 나타나고, 없다고 여기면 결코 아니 나오는 법. 두렵다고 생각하면 낡은 우산도 혀를 내뽑은 채 손짓을 할 테고, 고목에 걸린 헌 짚신도 삿갓 안을 들여다보겠지요. 세간에서 요괴로 불리는 무리는 모조리 사람이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니, 당연히 스스로 내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p87)

항간에 떠도는 백가지 기묘한 이야기.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이다. 그의 소설이 끌리는 것은, 기기묘묘한 이야기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글솜씨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요괴소설이지만 그 저변에는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깔려 있어서이다. 말하자면, 사람의 마음이고 사람의 일이라는 게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고 (혹은 받아야 하고)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아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내용이 내포되어 있으며 따라서 하늘 아래 '이상한' 일은 없다는 내용. 그게 왠지 대단히 심플하게 느껴져서 좋다.

팥을 이는 요괴의 이야기인 아즈키아라이. 여기에서 여러지방의 괴담을 탐문하고 수집하는 것을 즐기는 특이한 사내 모모스케는 미모의 인형사인 산묘회 오긴, 잔머리 모사꾼 어행사인 마타이치, 소악당인 신탁자 지헤이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여러 곳에서 신출귀몰한 연극을 하게 된다. 사람의 잠재적인 죄의식 등을 이용한 이런 연극들은 감추어졌던 진실들을 하나씩 밝히게 되는데...

여우를 죽여 파는 일을 업으로 삼다가 결국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인 하쿠조스, 도박을 즐기는 악한이나 여자를 너무 즐겨 화를 벌게 되는 사내와 사람 죽이는 것이 천성인 사내들의 이야기인 마이쿠비, 병적으로 사람 베는 것을 즐기는 남자의 손에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을 위해 축생의 둔갑이라는 기묘한 비상식적인 상황을 멋들어지게 연출하는 시바에몬 너구리, 말장수이지만 누구에게나 존경을 받는 우마카이 초자가 가족을 잃으면서 미쳐가는 이야기 속에 숨겨진 비밀이 담긴 시오노 초지, 버드나무의 혼이 깃든 여인숙 야나기야와 그 주인장인 기치베, 그리고 죽어간 부인들과 아이들의 슬픈 이야기인 야나기온나, 그리고 죽은 자를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의 이야기 가타비라가쓰지

이 세상은 참으로 서글퍼. 그 노파만이 아니라고. 너도 나도, 인간은 모두 같아.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면서 가까스로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러지 않으면 살아있지 못해. 더럽고 악취 풍기는 자신의 본성을 알면서도 속이고 어르면서 살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우리 인생은 꿈같은 게 아닐까. (p502)

읽으면서, 무섭다거나 좀 특이하다거나 그런 느낌보다는 왠지 슬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면 나만의 감상일까. 사악한 사람들은 발버둥을 치며 삶을 영속하려고 하나, 마음 어느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식이나 두려움까지는 떨치지 못하고 점점 흉포해지는 모습들이 슬프고, 사람이 사람에게 가질 수 있는 많은 잔인한 심정들이 더 무섭게 느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진리는 그런 마음들을 민담이나 기담 등으로 변모되어 전해지게 된다. 아마도 교고쿠 나쓰히코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역시나 천재답다. 그리고 살면서 참 겸손해야겠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뜬금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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