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습격사건 - 엽기발랄 오쿠다 히데오 포복절도 야구장 견문록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동아일보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제목 '야구장 습격사건'에 낚이지 않는 사람 별로 없을 것 같다. 특히나 '공중그네'와 같이 재미있는 소설을 쓴 오쿠다 히데오가 쓴 소설이라면 더더욱. 게다가 이 사람, 주니치 드래곤즈의 열렬한 팬이며 따라서 야구에 대한 에세이도 많이 쓰고 있다니까 읽을 만하지 않겠어? 라고 적어도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 책을 어제 오늘 다 읽고 난 소감. 우선 하하하. 무지하게 깊이 있는 글을 원한다면 절대 권하고 싶지 않으나 그냥 잡지책에 실린, 스윽 한번 읽고 말 이야기를 원한다면 강추이다. 사실 요즘 날씨도 우울하고 여러가지 일로 심란했는데, 읽으면서 무지하게 유쾌했다. 이 사람, 현실에 존재하는 이라부의사 아니야? 뭐 그런 느낌. 큭. 또 하나는 맥주가 너무나 먹고 싶어졌다는 거다. 어딜 가나 오리온 맥주를 먹어대는 이 아저씨의 맛깔스런 글을 보다보면 안 좋아하는 맥주라도 한번 먹어봐? 할 판에 나처럼 좋아라 하는 사람은 그냥 바로 가서 맥주 몇 캔을 안고 올 수 밖에 없다는. 물론 난 아사히로.

이 글은  어느 해 1년동안 오키나와, 시코쿠, 타이완, 도호쿠, 히로시마, 규슈를 다니면서 야구장을 찾아다닌 지은이의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읽어보면 이건 야구 관람기라기 보다는,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다니면서 먹고 마시고 마사지 받고 자고 가끔 야구장 찾아다닌 이야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일본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그 곳의 맛난 음식과 좋은 경치를 소개하는 여행 에세이로서도 자리매김할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은 야구, 맞다. 야구를 사랑하고 그 야구를 하는 선수들을 사랑하고 그 야구를 하는 선수들을 바라보는 관객들과의 호흡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글들.

곳곳에 지은이의 유쾌한 문장들이 엿보이는 것이 이 책의 진가라면 진가다. 1959년생이니까 아마도 그 당시엔 40대 후반이었을테고 독신이며 프리랜서인 아저씨가 툭툭 내뱉는 말이 기발하면서도 촌철살인인지라 읽으면서 푸푸풋 하고 웃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텔레비젼 뉴스에서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의 취업률이 최악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특히 오키나와는 30퍼센트로 전국 최저라고 한다. 아나운서가 불경기를 탄식한다. 참고로 전국 최고는 내 고향인 기후, 80퍼센트이다. 그럼 물어보자. 기후는 경기가 좋고 오키나와는 경기가 나쁜가? 그렇지 않다. 기후는 백수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고, 오키나와는 백수를 받아들이는 사회일 따름이다. 좋잖아, 그거. 오키나와 만세! (p46)


크. 백수들에게 이렇게 희망어린 말을 이렇게 유쾌하게 주는 글은 또 뭐란 말인가.  


그런데 나는? 자리에 앉아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 갑자기 똥이 마렵다. 그것도 노도와 같은 기세로. 우웃, 빨리 가줘, 제발. 순간, 버스에서 내려 풀숲에서 실례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말도 안 돼. 무슨 기념할 일이 있다고 오노미치 변두리까지 와서 풀숲에다 똥을 싸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여기서 싸버리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게 평생 심리적 외상으로 남아 나를 괴롭힐 것이다. 아아, 왜 여행같은 걸 하는 거야. (p2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가는 곳마다 그곳의 정에 취해 그곳의 음식에 취해 그곳의 경치에 취해 그곳에 살고 싶다고 한다. 도쿄라는 삭막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곳을 떠나 여기 정착하고 싶구나 라며 여행의 흥취를 더하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구를 잊지 않는다.


중견수 다카하시의 옛 동료 스즈키 이치로는 메이저 리그에서 MVP가 되었다. 투수 가토 히로토의 후배 이시이 가즈히사는 LA 다저스의 주전 투수다. 인생은 각양각색이다. 그 분기점은 어디든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야구 선수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프로야구 선수다. (p172)

 
야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스타 플레이어라서 좋아하고 1등 하는 팀이라고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야구에는 인생이 배여 있고 메이저든 마이너든 함께 뛰는 선수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게 하는 힘이 있어서 좋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모두가 소중하다는 느낌, 그래서 플레이 하나하나에 갈채를 보낼 수 있는 거다. 오쿠다 히데오가 느끼는 것이 바로 내가 느끼는 것.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에가와의 강속구에 경탄하고, 엔도의 포크볼에 입을 쩍 벌리고, 하라가 터뜨리는 홈런에 탄성을 내지른다. 나는 아름다운 것과 그것이 빛나는 순간이 좋다. 기록과 권위에는 관심이 없다. 자이언츠 따위를 어찌 응원하리. 결과 따위, 존중하지 마. 통산 91승의 이마나카가 지금도 팬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내게 큰 격려가 된다. (p273)


동감입니다, 오쿠다씨.

아. 야구가 보고 싶다. 땀흘리며 필드를 넘나드는 그들의 플레이에 환성을 보내고 싶고, 갈고 닦은 역량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것의 결과가 어떻든, 이기든 지든 열심으로 치고 달리고 던지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힘을 얻고 싶다. 그게 인생이니까. 누구나 존중받을 수 있는 그 공간. 그래서 나도 야구를 좋아한다. 문득, 오쿠다 히데오처럼 야구장 순례를 다니면서 우리나라 산천을 한번 누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만큼 재미있는 글들은 안 나와도, 내 맘 속에 따뜻한 바람이 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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