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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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다. 사실 이러한 류의 책을 고를 땐 늘 망설임이 앞선다. 뭐랄까. 그냥 신변잡기적인 얘기를 그럴싸하게 얼렁뚱땅 엮어낸 역사(?) 책들도 많기에 이거 시간낭비할 수도 있겠다 싶어 심사숙고하게 된다. 그런데...이건 좀 달랐다. 우선은 조선왕조실록 및 기타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책들이 전부인 줄 알았던 조선시대의 문헌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데 정말 놀랐다. 다른 나라의 역사 이야기책은 줄줄 외우면서 정작 가까운 근대의 우리나라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책들은 전혀 모르고 살았다는 데에 부끄러움마저 느꼈다. 또한, 같은 책을 봐도 이렇게 달리 볼 수 있구나 하는 데 한번 더 놀랐다. 실록의 구절구절을 서민 혹은 중인들의 삶을 고증함에 인용하는 저자의 높은 식견이 부럽기만 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이지만, 왕실이나 양반네들의 점잖은 아니면 투기와 政爭이 매일인 일상사만을 TV와 기타 등등의 책에서 접하다가 이렇게 사람냄새 물씬 나는 얘기를 읽으니 가슴이 다 후련해짐을 느낀다. 조선이, 영조 정조 대왕이 남의 나라 어디에 있었던 존재들이 아니라 바로 나의 앞세대를 살아내었으며 따라서 나도 또한 역사의 흐름 속에 일부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특히 내가 관심있게 본 부분은 서울의 게토인 '반촌'에 대한 내용이었다. 전혀 알지못했던 사실로, 이들의 존재가 이렇게 없었던 듯 잊혀졌음에 허무함마저 느꼈다. 작가는 이들의 문화가 기존 조선의 질서와 예와는 거리가 있었다고 기술하면서도 이들을 교화하고자 애썼던 안광수라는 이에 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헌데 사실 나는 안광수란 인물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유가의 예에서 벗어나 있던 부류들의 독특한 성격이 유가의 예에 감염되는 것을 보면 도리어 서글픔을 느낀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작가의 관점에 많이 동의했다. 무엇이든 주류의 문화에 자꾸만 맞추려 하고 그들에게서 벗어난 상태를 '일탈'과 '비정상'의 상태로 간주하려 하는 자체가 일종의 파시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인디언들의 문화를 하급의 문화로 치부하고 서양인들이 억지로 자신들의 세계에 편입시킴으로써 그들의 길고 긴 문화를 말살해버린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월의 흐름과 역사의 변화 속에서 잊혀진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들이 있었다는 것을 몸소 느끼며 그들이 살았던 그 상황을 혼자 상상하며 즐거움에 빠졌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출판사의 책편집이 훌륭하다는 점이다. 그림과 글의 배치가 매우 적절하고 표지나 내부의 편집이 스르르 읽고 싶도록 만들어 재미있는 얘기를 더욱 즐길 수 있게 한다. 책의 인기에 이것도 한몫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러한 역사책이, 그냥 그렇게 시시하게 쓴 책이 아니라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반인(!)들의 얘기를 풀어 쓴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지난 일주일 이 책과 함께 정말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서설에 쓰인 말을 옮겨본다. 역사는 책 속에만 있는 것도 아니며 내가 역사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도 아닌, 현재가 모여 이루어진 산물이며 결국 이 모든 것은 인간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역사를 정의한다는 것은 매우 난감한 일이지만, 나의 아마추어적인 견해로는 인간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결정된 존재가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략) 한편 인간은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변화시켜나가는 존재이다. 현재의 인간은 시간적 변화의 산물이며, 역사학은 바로 변화하는 인간을 해명하는 학문이다. 나는 어떤 교훈적, 목적의식적, 기념비적 역사관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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