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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존 르카레가 참 좋다. 그리고 그가 창조해낸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와 그의 동료들을 좋아한다. 열린 책들에서 나온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읽고나서 이 하얀 표지의 느낌좋은 책들을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는 가끔씩 펼쳐보곤 한다. 책 선전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가디언의 그 문구, 르카레는 현재 영국에서 글을 쓰는 그 어떤 소설가보다도 뒤지지 않는 작가이다, 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말이다.
이 책,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는 존 르카레의 처녀작이다. 따라서 조지 스마일리가 세상에 처음 선을 보인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조지 스마일리를 고대 독일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냉전시대에 여러 나라에서 첩보원을 한, '땅딸막한 체구에 조용한 성격의'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책은 시작된다. 1960년대 영국의 정보국에 근무하던 스마일리는, 며칠 전 이름없는 투서로 스파이라고 고발되어 본인이 직접 면담을 했던 외무국의 새뮤얼 페넌이라는 사람이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리고 그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서 페넌의 집에서 아내인 엘자 페넌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새뮤얼 페넌이 그 전날 신청해둔 모닝콜을 받게 되고, 이를 의아하게 여겨 이것저것을 조사하면서 그 의혹감은 커져만 간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진 우울한 진실들.
이 책은 다른 존 르카레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스파이소설'이라고 분류하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물론 스파이소설이라는 것을 우습게 보아서는 아니고, 그렇게 범주화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지게 될 편견들을 방지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다. 스파이라고 하면, 바로 생각나는 것이 007의 제임스 본드이고 그래서 멋지고 잘생기고 마초적인 유머를 즐기며 여자를 좋아라 하지만, 첩보전에서는 기가 막힌 활약으로 '악당'들을 물리치는 그 007을 생각하고 이 책을 봐서는 안된다. 내가 존 르카레를 좋아하는 이유는, 스파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사람에 대해서, 이념 속에 끼여 어딘가에 마음 붙이지 못하고 회색지대에 머물며 서성이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서이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를 그저 선과 악으로, 미국과 독일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분류하여 사람들도 똑같이 저쪽과 이쪽,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려고만 한다면 많은 중요한 것들이 간과되어지지 않을까.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은, 자신의 배경에 따라 혹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무언가'(우리는 이런 것을 '꿈'이라고 이야기한다)를 실현하기 위해 애썼을 뿐이고 존 르카레는 그래서인지 그들을 굳이 모두 좋은 넘 모두 나쁜 넘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 설사 영국의 정보국이라 할 지라도 여러가지 정치적 상황에 의해 잘못된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한다. 또한, 정보국도 조직이므로 멍청한 상사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부하가 있을 수 있고 같은 동료끼리의 갈등도 일어난다. 그렇게 존 르카레는 냉전 시대의 정보국과 그 속에 몸담고 있는 '첩보원'들을 대상으로 했을 뿐이지 사실은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에 나온 존 르카레의 책들에 비해서는 데뷔작이라 그런지 그 짜임새가 아주 정밀하지는 않지만, 스마일리와 이후에 계속 등장하게 될 멘델이나 피터 길럼이라는 사람들이 선보인다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추리소설의 기법을 쓰고 있고 하나하나 연결고리가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진실과 거기에 대처하는 스마일리의 모습들은 흥미진진하여 다 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못 떼게 하는 재미까지 있다.
뱀꼬리. 그런데, 번역이 좀 매끄럽지 않은 점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그렇게 봐서인지, 군데군데 조금 어색한 부분들이 있어서 당혹스러웠다. 예를 들어 p198의 마지막 '이 곳은 템스 강의 단호한 팔에서...' 라는 부분처럼 번역자의 의도가 있는 번역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런 식의 불편함이 있어서 읽는 재미를 조금 방해했다는 걸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