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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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트
존 카첸바크 지음, 나선숙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존 카첸바크의 책은 두 번째다. 첫번째 읽은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이 책 '애널리스트'는 두말 않고 집어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을 읽기 전에 '애널리스트'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는 거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조금 뜨뜻미지근한 기분이 들어서 개운치 않았다.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은 읽고 나서 한참 다른 책을 못 읽었었다. 뭐랄까. 나의 속을 다 들켜버린 기분이랄까.
내가 존 카첸바크의 작품을 좋아하는 건, 인간 심리를 아주 깊숙이 파고 들어 묘사한다는 점이고 따라서 이런 쟝르가 심리스릴러라고 한다면 앞에서 몇 번째에 놓아줄 마음이 들 정도다. 이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로 대단한 사건이 벌어진다거나 엄청난 살인극이 펼쳐지는 장면은 없다. 하지만, 죽지 않아도 죽을 것 같은 심리적 두려움과 상상에 아주 오금이 졸아드는 경험을 여러번 하게 된다.
주인공, 리키 스탁스는 50대의 정신과의사이다. 오래 전에 아내를 암으로 잃고 자식도 없이 환자들 진료하고 일년에 한번 가는 여름 휴가 정도가 큰 이벤트인, 칸트처럼 매일이 변화없이 정석대로 움직여지는 사람이다. 그렇던 그에게 어느날 한 장의 협박장이 날아들게 된다. "나는 당신의 과거 어딘가에 존재하지. 당신은 내 인생을 망쳤어. 그 방법이나 이유, 시기조차 알지 못하겠지만 그건 사실이야. 당신은 매순간 내게 불행과 슬픔을 주었어. 내 인생을 망가뜨렸지. 이제 나는 당신을 철저히 파멸시킬 생각이야." 라는 내용의 끔찍한 편지는 15일 이내에 자신을 찾지 못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다면 주위의 누군가가 크게 다칠 거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내용은 이 때부터 흥미진진해진다. 이 범인이 누구이고 왜 나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아나갔는가를 찾아나가는 과정은 단지 범인모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어느 순간의 나로부터 지금의 나까지의 역사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범인이 누구인가? 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게 아니라 '나'를 규정하고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나'의 변화과정을 추적하는 것에 있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이다.
결국 그렇게 해서 진실에 가까워진 리키 스탁스는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그에게 다시 복수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으로 변모를 하게 되고, 이전의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것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정신과의사로서 무료하게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천직인 줄 알고 살았는데, 좀더 생활을 나름으로 즐기고 그러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삶에 만족감이라는 것을 가지게 된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의 심리상태에 대한 묘사가 또한 인상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범인과의 대치에서, 리키 스탁스가 선택한 길은 매우 인간적이면서도 매우 처절한 방법이었고...
사실 읽으면서 '탈선'이라는 책과 거의 비슷한 구도다 라고 느끼는 바람에 그 재미가 좀 반감되고 그래서 흥미가 100% 발휘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매우 독특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평온한(혹은 지루한) 일상에 섬광처럼 다가온 협박이라는 낯선 방식에 대응해서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 나가고 분석해 나간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새에 저질러졌을 지도 모르는 뭔가를 발견해나간다는 것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와서, 문득 나조차도 나의 과거를 한번 훑어보게 되었다. 심리스릴러에 대해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크게 감탄해서 아하~ 이거야~ 라는 말은 안 나와도 적당히 머리 써가며 적당히 작품 속의 심리묘사들을 스스로에게 대입해가며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