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이 말 한마디만 마음에 새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 단순한 말, 우리 아버지께서 사람의 허물을 크게 보지 말라면서 늘 하시던 말씀이지요.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거든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p161)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골랐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느낌은, 이 책이 좋다, 라는 것이다. 구구절절 대목을 따서 말하지 않아도 그냥 이 책이 마음에 든다, 제목만큼이나. 그런데 이 제목이 성경에 있는 구절이었던가? 잠시 갸우뚱. 모태신앙으로서 신약과 구약 주요 내용들은 통독한 전적(?)이 있는 나이지만, 이 문장은 낯설다. 하긴, 이제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쓰기도 멋적을만치 교회와 거리를 두며 살고 있는 내가, 그저 옛 기억에 기대어 성경에 있었던가 하고 의문을 가지는 자체가 넌센스이긴 하다.

 

주인공인 폴의 평범하지 않은 인생 굴곡은 세상의 모든 우연과 필연에 합쳐져 참 어찌 할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사실 그의 인생은 20세기와 21세기에 끼인 자의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고 그렇게 돌고 돌아 그가 당도한 곳은 그의 뿌리였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을 읽는 내내 이 사람이 왜 교도소에 들어와 있는지가 너무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뭔가 대단한 사건이 있었나. 교도소에 영혼을 다가오는 가족들이 해를 입었나... 그런 의문들이 하나씩 둘씩 해소되어 가는 과정에서, 묘하게도 사는 건 뭔지, 늙어가는 건 뭔지, 내가 사는 방법은 맞는지 이런 생각들이 슬며시 스며드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이 책이 좋다 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망치는 방법은 무한하다. 나의 외조부는 DS19 시트로앵을 택했다. 내 아버지는 성직자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살아갈 날들을 촘촘한 시간 배정으로 지배해버린 그 속세의 수도원에 들어가는 편을 택했다. 예상치 못한 고장과 긴급 상황이 아니면 나의 일과는 항상 동일했다. (p177-178)

 

무한한 인생 망치기를 선택하기 전에 알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운명처럼 무언가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버티던가 나가떨어지던가 둘 중의 하나로 남게 된다. 폴이 렉셀시오르라는 예순여덟집이 있는 아파트를 관리하는 직업을 택하게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불행했고, 그 불행의 회오리를 지나치고 나니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착한 폴은 열심히 일했고, 충직했고,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는 그 입주자들에게 다 환영받는 관리인이었다. 자부심이 있었고 또 아내 위노나가 있었고 또 사랑하는 개 누크도 있었다.

 

... 나는 누구에게는 장을 봐주고 또다른 누구에게는 약국 심부름을 해주는 등, 내게 남은 마지막 과부들을 보살폈다. 그 할머니들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 끝으로 간신히 생에 매달려 있었다. 언젠가 전부 무너져내릴 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개수대에 물이 샌다, 가스레인지 후드 필터를 갈아야 한다, 하는 소리를 들으면 허겁지겁 올라가서 손을 봐줬고 내가 여기 있다는 말로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 거대한 집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이 나에게 각별했다는 것을, 어떤 면에서 내 딴에는 그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p215)

 

세상이 바뀌고 그 곳에도 변화가 일었다. 가까왔던 사람들은 떠나고 죽었고 새로운 세입자와 새로운 입주자 대표를 맞았다. 정성과 신뢰로 일하는 분위기는 정확한 업무범위와 갑질에 가까운 지시와 동전 한닢까지 세어대는 간섭으로 인해 점점 경색되어져 가고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 시대의 변화에 어울리게끔 사람들도 그 기조를 따라간다. 어이없으리만치 일제히.

 

"... 요컨대, 복지사 노릇은 그만하고 관리소장이면 관리소장답게 적잖이 받아가는 월급값을 하라, 이겁니다..."  (p235)

 

폴을 둘러싼 (살아남은) 사람들, 교도소에서 같은 방을 쓰는 패트릭 호턴이나 공동주택에서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키어런 리드나.. 그들의 인생 또한 할 말 많은 인생이었고.. 사람은 누구나 사연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러다 죽는 것이겠지.. 그 속엔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그렇게 한 세상 살아나가는 것이겠지.. 싶어 왠지 모든 이들의 인생에 짠한 마음이 들게 된다. 태어나서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는 참 무한한 사는 방법이 있는 것이구나. 이 작가에게 흥미와 애정이 생겨, 번역된 소설 하나가 더 있길래 보관함에 넣어본다.

 

 

 

 

 

 

 

 

 

 

 

 

 

 

 

 

 

내가 팔로우하는 Albert Camus(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 3명 안에 든다)의 페이지에 이런 글이 올라 왔었다. "Camus says knowin' we're all gonna die makes life a joke." 이 말이 인상적이라 지인들에게 전달도 했었고. 삶의 부조리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도 살아가는 게 끝끝내 절망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Camus처럼(그가 살아서 <최초의 인간>을 완성했다면 좀더 여실해 보여줬을 그의 철학인데..), 장 폴 뒤부아라는 이 소설가도 이 고통스럽지만 해학적인 소설을 통해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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