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이 많았다. 아니 요즘 일이 부쩍 많아졌다. 내가 나의 수용력을 넘어서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중이다. 나이가 어릴 때는 그렇게 일을 해도 버텨낼 수 있었지만, 요즘 같은 때는, 심지어 운동도 안하고 살도 찌고 그런 와중에는, 조금만 부하가 걸려도 며칠이 힘들다. 지금 내가 그런 상태이고, 지난 주의 여파를 이번 주에 겪어내고 있다.

 

일을 대충 마무리하니 8시가 넘었었고.. 살짝 망설이다가,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길이 막히지 않았다. 그냥 내가 가서 뭘 해드릴 수는 없겠지만, 그냥 건강한 얼굴 보고 오면 나나 부모님이나 좋지 않을까 해서 무작정 갔다. 도착하니 9시. 엄마 아빠는 피곤한데 왜 왔느냐며 한 소리 하시는 듯 했지만 눈에는 반가움이 서렸다. 부모님의 그 눈을 보니, 피곤을 핑계로 집에 바로 가지 않고 부모님께 온 내가 왠지 뿌듯해졌다. 한동안 수다 떨며 있는데 동생이 왔다. 9시 30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데도 나같은 심정으로 온 모양이다. 나는 동생의 이런 면이 참 좋다. 아이가, 바르고 정겹다. 어릴 때 엄청난 장난꾸러기에 생각이라곤 없어보였는데 어떻게 이리 잘 컸지, 라는 괜한 흐뭇함을 가지고 바라본다.

 

우린 오랜만에 넷이 모여 수다를 떨었고 결국 견과류와 커피가 대령되었고.. 아빠 엄마의 일요일 무용담(아파서 병원 간 게 무용담이라니ㅜ)을 들으며 그만하길 다행이라며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10시. 이제 일어나자. 한다. 아빠는 나보고 가냐고 물으신다. 아 아빠. 제가 일이 많아서. 주말에 올게요. 하니 못내 아쉬워하신다. 약해진 아빠. 다시 마음 찡. 주말에 고기라도 사서 와야겠다. 영양보충도 시켜드릴 겸. 아무리 바빠도 주말 전에 다 끝내자.

 

집에 도착하니 맥주 한 잔이 간절했다. 사실, 난 체질상 맥주가 잘 맞지 않는데, 와인이 없다. 다 먹었다. (아.. 급좌절했다) 그래서 냉장고에 있는 빅웨이브 에일맥주를 한 캔 꺼냈다. (아직 2캔 오롯이 남아있다. 기쁨) 그렇게 한 잔 하면서 오늘 못다한 일을 다시 한다. 이제 슬슬 마무리지을 때쯤. 내일도 다시 해야 하지만.. 자정이니까. 자정이 다가온다. 오늘 하루가 이렇게 가고.. 내일은 15일. 9월도 중순을 넘어가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있다. 두 개의 중편. <판사와 형리> 그리고 <혐의>. 지금  <혐의>를 읽고 있는데, 이 소설들은 아주 재밌다기보다는 그냥 좀 고전적이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내 중학교 동창의 어머니. 나랑은 거의 접점이 없었던 아이지만, 어머니가 그 당시에도 독문과 교수로 번역을 한다는 건 소문이 많이 나 있었다. 이젠 연세가 많으실텐데.. 이 책의 개정판을 내셨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멋들어지게 읊는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이 중에서 가장 끈질긴 것은 소망이랍니다. 이 희망이라는 것이 지금도 붉은 흉터 범벅인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유태인 걸리버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 그 두 가지는 슈트트호프에서 일찌감치 악마에게 가버렸지요. 그렇지만 희망만은 남아 있어 사람들은 그것을 끌고 악마한테 갔던 겁니다. 희망, 희망! 넬레는 희망을 호주머니 안에 준비해 갖고 있다가, 그것을 원하는 누구에게나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자들이 그것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p176)

 

 

성경에서는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했지만, 사실 인간이 최악의 조건에 몰리면 사랑이 가장 먼저 날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나 자신 하나 버텨내기도 힘든 판에 남을 사랑하라는 건, 어쩌면 나를 사랑하는 것도, 무리한 요구다. 아우슈비츠 같은 곳에서 사랑이 사라지고.. 내가 살 수 있다는 믿음은 그 다음으로 날아가겠지. 하지만, 어쩌면 살 방도가 따로 있을 지도 몰라 라는 희망 혹은 소망만은 남는 모양이다. 왠지 이 대목에 공감이 갔다.

 

가스실에 끌려가서 처참하게 죽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말에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열에 아홉은 죽지만, 한 명은 그 희망을 끝까지 부여잡고 살아 세상의 빛을 본다. 잔인하고 끔찍하지만... 어쩌면 막다른 골목에 달한 사람에겐 생명이라는 걸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이 소망이나 희망이라는 것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싶다.

 

내일 일하려면 오늘은 이쯤에서 자야겠지. 책도 더디고 일도 더디고 마음은 왠지 쳐지는, 9월의 가을날들이다. 아까 운전해서 오는데 이 노래가 나왔다. 내가 정말 좋아하던 노래. 가사도 음색도. 그 옛날, 이 노래를 수없이 반복하며 눈물짓던 날들을 기억하며.  그리고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미어져 오는 시간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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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5 07: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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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5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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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5 0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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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5 1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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