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저녁 약속 두 탕을 뛰었더랬다. 몸도 별로 안 좋은 상태였지만, 두 약속 다 빠지기 어려워서 이수역 갔다가 선정릉 가는 강행군을 했다. 결과적으로 잘 다녀오긴 했는데 오늘 아침은 여러가지로 마음도 심란하고 몸도 안 좋고 그렇다.

 

첫번째 약속은 나보다 나이들이 다 많은 사람들과의 모임이었다. 예전 직장 사람들 모임으로 한때는 같은 직장을 다녔었지만 지금은 각기 참 다른 곳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삼겹살 지글지글 굽고 맥주에 소주를 안착시켜놓고 나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했다. 아이들 얘기, 진학 얘기.. 그러다가 한 사람(A)이 아버지 모시고 병원 다녀왔다는 말을 했다. 여든이 넘으셨는데 몇 달 전부터 소화가 안 되고 통증이 있어서 복부CT를 찍은 모양이다. 게다가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치매기가 있으셨는데 약을 드셔서 호전기가 있으시더니 최근에 좀 안 좋아지신 것 같다고 걱정이 된다 했다.

 

그랬더니 한명 두명 얘길 풀어놓는다. 한 사람(B)은 알고 봤더니 위에 형과 누나가 잔뜩 있는 막내였고 부모님 연세가 아흔이 넘으셨었다. 어머니는 치매로 벌써 십년 넘게 고생하셨고 지금은 자리 보전 중이시고 아버지도 노환으로 힘드신 모양이었다. 요양원에 모시고 갔더니 충격을 받으셨는 지 곡기를 끊고 버티시는 바람에 여차저차해서 지금은 큰 누나와 둘째 누나가 번갈아 모시고 있다고 한다. 또 한 사람(C)은 어머니가 여든이 넘으셨고 정정하긴 하신데 연세가 드셔서 그런가 자식들 욕을 자꾸 하고 다녀서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했다. 말이 많아서 미치겠다고 며칠 전에도 전화로 싸웠다며 투덜거렸다. 그랬더니 B가 그런다. 어머니가 자리보전하시고는 목소리를 못 들어봐서.. 그냥 잔소리라도 좋으니 얘기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엄마의 목소리. 그 그리움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A는 형제가 셋이지만 다 사정이 있어서 결국 부모님 뒷바라지를 자기가 하게 될 것 같으나 와잎도 직장이 있고 자기도 일이 바쁘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고민한다. 형제들과 의논을 하려 하니 부담을 주는 것 같고.. 그렇다고 안 하자니 앞으로 힘들어질 것 같고. 요양원이나 이런 걸 생각할 단계는 아니긴 하지만 아버지 검사결과가 나쁘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했다. 이 심정도 이해가 된다. 효자든 아니든간에 뭔가 대책은 필요한 거다. 그것도 자식들 전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 하는 그런 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고.

 

나이가 들고, 부모님이 편챦아지시면 현실적인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쓰러지시거나 어디 병이 나시거나 치매가 걸리시거나.. 사실 여든이 넘어 정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서 누구나 이런 일에 맞닥뜨릴 수 밖에 없다. 집안이 건강하고 장수 집안이라 그런 걱정 없다 하면 정말 부럽다. 수발도 수발이지만, 연세 드셔서 편챦으신 부모님을 보는 건 심적으로도 견디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이다. 자식으로서 해야할 일들은 반쯤은 의무감이고 반쯤은 부모에 대한 애정 혹은 예의이다. 생업이 바쁘고 한창 일해야 할 나이의 자식들이 부모님을 계속 돌봐드리기는 힘드니 결국 요양원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사실 요양원에 모셔두면 마음에 걸리긴 해도 자주 찾아뵙기 어려워지는 게 또 인지상정인지라 그렇게 서로 인생을 살아나가게 된다.

 

우리라고 예외일까. 어차피 사람은 나이들고 병들고 죽고.. 나도 너도 전부 예외가 아니라 더 착잡해지는 것 같다. 이젠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자식에게 기대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 자식들의 인식도 바뀌었지만 수명이 길어져서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는 지라 누가 누굴 돌본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인 게고. 나처럼 자식이 없는 경우는, 일찌감치 보험 들어놓고 간병으로 전환해서 요양원에 들어가야지 하고 있는 것이고. 이건 현실이니까 사실 냉정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는 거다.

 

암튼, 이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참 착잡했다. 사람 사는 게 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고.. 늙는다는 것, 아프다는 것, 특히나 가족이 아프다는 것, 그리고 죽는다는 것.. 이런 일들 앞에서는 누구나 무력해지는구나 싶다. 그리고 사는 게 참 허무한 일이다 라는 마음이 또 들게 되고. 아직은 우리 부모님이 건강하신 편이라 별 걱정없이 살고는 있지만 아마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지 생각하니 괜히 눈물이 나려고도 한다. 시중에 나온 책들을 보면, 노후를 위한 돈 마련에 대한 책들이 대다수이지만, 물론 그게 매우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인생 마무리를 편하게 해드리는 것도, 내 노후를 잘 살아볼 준비를 하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두어야 하긴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약속 장소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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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9 09: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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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9 09: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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