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수전 팔루디의 그 유명한 <백래시>를 읽지 않은 자로서, 먼저 <다크룸>을 송구한 마음으로 펼친 지 며칠 되었다. 일단 <백래시>보다는 <다크룸>이 좀더 읽기 쉬울 것 같아서였고 (회고록이라지 않은가?) 성정체성을 바꾸어버린 아버지의 이야기라니, 흥미가 마구 돋아나는 것을 억제할 수 없어서였다. <백래시>를 읽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수전 팔루디의 맛깔진 글솜씨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알게 되어 매우 재미있게 읽고 있다. 나의 관심사는 사실 이런 거였다. 성을 바꾸면 사람이 바뀌는가? 그 사람의 역사가 수십 년인 수전 팔루디의 아버지같은 사람이 생물학적 수술과 호르몬제 투입 등으로 사람 자체가 바뀔 수 있는가? 이런 것이었고... 아직 1/3 정도 읽은 상태라 해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애초의 내 생각처럼 그들의 성향도 성향이지만 '여성'이라는 성별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의문을 수전 팔루디도 제기하는 것 같다.
"여자들이 좋아했죠. 하지만 나는 언제나 소녀가 되고 싶었어요. 여섯 살 때부터 꿈꾸기 시작했으니까. 여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모든 게 다 좋았어요. 다뤄지는 방식, 애지중지 보살핌 받는 거, 주목을 끄는 거. 남자로서도 그런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면 나는 수술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p213)
여자란 보살핌을 받는 존재이고 대놓고 보살핌을 요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 남자로서 사는 것이 여자로서 사는 것보다 이점이 많으나 힘들다는 전제 하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트랜스젠더라는 사람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어려운 문제다. 각각의 케이스들이 다를텐데 뭔가 공통점을 뽑아내는 시도를 하는 게 의미가 있을 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는 이제 공격적인 마초 맨을 가장하는 게 진절머리가 난다. 나의 내면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 아버지는 이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거의 40년이나 흘렀고, 아홉 개의 표준 시간대를 지나왔지만, 내가 그녀의 새로운 인격에서 그 폭력적인 남자의 아버지를 지워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혼 판결이 아버지를 '위험에 빠진' 피해자로 만들어 줬던 것처럼 간단하게, 새로운 인격이 그 폭력적인 자를 지워 버릴 수 있었다고 믿어야 했을까? 새로운 정체성이 이전의 정체성을 구원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정체성을 삭제해 버릴 수도 있을까? (p91)
헝가리계 유태인이었으나 미국에 건너와서 유태인이라는 정체성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고 살아온 아버지였고 가족에게는 더없이 권위적이었으며 심지어 폭력도 휘둘렀던 아버지였는데,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이후 달라졌다고 말한다면 믿기겠는가. 이 책에 끝에는 가야 수전 팔루디가 어떤 생각으로 결론을 맺는 지 알 수 있을테니 여기서는 문제제기까지만 하고 지나가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페이퍼를 한번 더 쓸 기회가 있으리라.
이 책을 사둔 건 좀 된 거 같은데... 잊고 있었는데 말이다. 우연히 보게 된 SBS 드라마 <하이에나>에서 주지훈에게 작정하고 접근한 김혜수가 살랑거리는 펌머리를 모로 하며 주지훈이 좋아하는 책에 대해 얘기하다가 도나토 카리시의 데뷔작을 얘기하면서 둘이 동시에 찌찌뽕, <속삭이는 자>! 라고 외칠 때 아.. 기억났다. 나 이 책 읽으려고 했었어. 서재를 뒤지니 아니나 달라 나왔다. 뭐 이런 일이야 비일비재해서 놀랍지도 않고. 아마 못 찾았으면 (구석에 쳐박혀서 말이다) 다시 샀을 거다. 그리곤 나중에 발견하겠지. 어멋. 이게 있었나. 사면 바로바로 좀 읽어라 비연...=.=;;
암튼, 드라마를 보고 책을 집어든 순서는 좀 웃기지만, 이 책 꽤 재미있다. 김혜수는 원서로 읽고 있었지만 (흥) 나는 그냥 번역본으로 읽고 있고, 뭐 번역도 잘 되어 있다. 킁. 미국 소설처럼 뻔한 비꼬는 듯한 유머를 날리거나 총알을 무슨 물세례처럼 퍼부어대는 폭력성도 없고, 일본 소설처럼 세상 끝에서나 만나볼 듯한 기괴함과 잔인함이 있지도 않다. 그냥 좀 진지하고 고통스럽고.. 하지만 템포가 느리지 않아 좋다. 실화가 바탕이라니 좀 소름끼치기도 하고. 아이들을 납치하고 죽이고 ..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정말 읽고 싶지 않은데 이 세상의 연쇄살인범들의 살해 대상은 항상 무방비의 여성과 아이들인지라 (!*#(*&)($)($*) 어쩔 수 없다 싶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는 여섯 개의 팔이 발견된 거다. 팔만 여섯 개. 그것도 열살 안팎의 여자아이들의 팔만. 아 미친...
"우리는 이런 범인들을 '괴물'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같은 인간과는 거리가 먼 존재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게블러 박사는 학회에 참석할 때마다 그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정반대로, 그들은 우리와 완벽히 똑같은 인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주변 사람이 이런 끔찍한 짓거리를 벌였을 거라는 상상조차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아마 우리가 지닌 원죄에 대한 대가일 수도 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범죄자적 이인증(depersonalization)'이라고도 말하는데, 이는 연쇄살인범 식별에 난관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겐 약점이라는 게 있고 꼬리는 잡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괴물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p33)
사실 나는 사이코패스입니다, 라고 이마에 쓰고 다니면 좋겠는데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고 가장이기도 하고 아빠이기도 한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더 무섭다. 뭔가 표시나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가 되면 마음 속의 악이 삐져나와 스스로를 지배하고 죽이고 뜯는 일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 있다는 것.
.. 언론은 탐욕스럽게 사건을 파헤치고 삽시간에 버먼이 살아온 인생의 모든 측면을 남김없이 짓밟아버릴 것이다. 그의 자살은 자백과도 같은 효과를 발휘했다. 언론은 저 나름의 스토리를 양산해낼 태세였다. 한 남자에게 자기들 식으로 거침없이 괴물의 탈을 씌워놓고 나머지 문제는 다수결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식이었다. 언론은 그 남자를, 마치 피해아동들에게 행한 짓을 상상이라도 한 듯 조각낼 터였다. 자신들 역시 그 범인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언론은 이 사건을 통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피를 뿌려댈 것이다. 보다 자극적인 1면 기사로 구매욕을 부추기기 위해 아주 강한 향신료로 양념을 해댈 것이다. 배려도, 형평성도 없이. 그리고 누군가가 그런 사실을 지적하기라도 한다면 시사성이 강하고 편리하기 이를 데 없는 '알 권리'를 방패 삼아 자신들의 비인간적인 욕망을 감춰버린다. (p106)
어느 나라나 언론은 이런 건가, 싶어 씁쓸하다. 연쇄살인범의 스토리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자신들도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언론이. 어디서 많이 보는, 우리도 언제나 보고 있는 양태가 아닌가. 그 주제가 연쇄살인이 아닐 뿐이지.
***
코로나 때문에 바깥 출입을 좀 자제하고 사니 모임도 없고.. 집에서 뭐 해먹고 얌전히 책 읽고 하는 시간이 나쁘진 않다. 강제적으로 여행을 못 가고 누굴 만날 수 없다는 게 좀 갑갑하긴 하지만, 매일의 생활 자체는 평온하다. 규칙적이고 깔끔하고, 술없고 과식없고 과한 말 없고. 그냥 내게로 침잠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 근데 여행은 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