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고 하늘이 맑다. 요즘 몸이 계속 안 좋아서 아침 출근길이 늘 괴로왔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상쾌했다. 회사에 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와 자리엔 앉은 후 야금야금 마시며 메일도 체크하고 이것저것 오늘 할 일들을 정리해본다. 좋다. 역시 컨디션이 좋아야 모든 일이 기쁨으로 다가온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 수 없다.

 

*

 

오늘 새벽에 눈이 번쩍 뜨였다. 4시. 괜히 핸펀을 만지작거리며 뉴스를 보니, 이희호 여사가 향년 97세로 돌아가셨다는 속보가 떠 있었다.. 마음 한켠에서 바람이 불었다. 백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안 겪어도 될 수많은 고초를 겪으셨지만 누구보다 많은 일들을 해내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화에 기여하셨고 여성 인권신장에도 기여하셨고... 그 많은 세월 지내시고 노환으로 시편 23편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가족들 가운데 돌아가셨다하니.. 삶의 마무리까지도 깔끔한 모습이셨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렇게 한 세대가 진정 저물고 있다. 근현대사에서 중추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가고 있고 이제 남은 사람들이 해야할 일들을 해나가야 할텐데... 남은 자들의 면면이 한심스러울 때가 많아서 凡人인 내가 다 걱정이 된다. 정치인이라는 생물은, 점점 퇴화하는 존재인 것인지. 하다못해 귀한 말 한마디도 못 날리고 하는 말마다 걸레를 문 것같은 말만 하는데다가 정치는 안하고 맨날 물고 뜯는 일만 하고 있으니... 갑자기 아침의 상쾌한 기분이 무너지려고 한다. 릴랙스... 이희호 여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아마 좋은 곳이 있다면 반드시 그 곳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과 노회찬 의원과.... 등등 다 반갑게 만나서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

 

사는 게, 일이 재미없다고 투덜거려서는 안 되겠구나 라는 마음이 불현듯 들었다. 어렵고 힘들게 인생을 지낸 사람들도 꿋꿋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내셨는데 나는 뭐라고 맨날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가 라는 자괴감이 들어버린 거다. 아마 그래서 오늘 하루는 딴 때보다 조금 더 힘차게 시작할 수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지하철을 타고, 지쳐 자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다시 스물스물 마음 속에서 불만의 시커먼 덩어리들이 올라오려고 했지만, 책을 펼치고 마음을 다잡고 한 자 한 자 읽어내려가면서 릴랙스... 근데 뜬금없지만, 윌리엄 포크너의 글, 좋다. 꽤 괜챦아서 읽는 재미가 있다. 이렇게 고전의 세계에서 한동안 지낼 것 같다.

 

 

출퇴근 길에는 포크너를 읽고 자기 전에는 괴테를 읽는 나. 왠지 뿌듯하지 않은가. 온종일 고전의 향기에 파묻혀 있다보니 사람이 조금 안정되는 느낌이 든달까. 

 

 

 

 

 

 

 

 

 

 

 

 

 

 

*

 

그나저나 요즘은 사고도 많고 살인도 많고. 좀 무시무시한 세상에 살고 있다 싶다. 헝가리 유람선은 오늘에야 인양이 될 것 같고.. 배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인지라 뉴스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그 와중에 前 남편을 죽여 토막내 버린 사람도 있고 7개월 된 자식을 방치해 죽게 한 부부도 있고... 혼자 사는 여자 집에서 도어를 비틀어 열려는 남자 영상도 떠다니고... 알고 보면 세상은 위험 투성이인데 우리는 참 태연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약간 소름이 돋는 요즘이다.

 

 

*

 

그 와중에 나는 어제 꽃을 주문했고 (하이드님의 수국, 정말 기대된다) 부엌 발매트를 하나 더 주문했다. 여러가지 일들이 곁을 스쳐가도 일상은 유지되는 것이고, 그 일상이 어느 순간 끊어지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거. 요즘 절감 중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6-11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1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