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자질구레한 질병으로 자주 가고 혹은 가끔 검사하자고 해서 놀란 마음을 지닌 채 진료를 받기도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질병이라는 것, 사람이 아프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여러가지 심리적 사회적 현상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아직까지 큰 질병으로 고생한 적은 없고 우리 가족들도 그러진 않아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지만, 가끔씩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하자거나 할 때 느끼는, 세상이 무너지는 감정 등을 겪을 때는 사는 게 무엇인가, 사람이 산다는 건 늙는다는 건 무엇인가를 재삼 또 재삼 생각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지은이인 아서 프랭크는 심리학자이고 교수이다.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에 심장마비와 암에 걸렸었고 그로 인해 느꼈던 수많은 감정과 알리고 싶은 것들을 글로 담아낸 것이 이 책이다. 읽고 있으면, 맞아 내가 이런 심정과 가깝게 느꼈더랬지 라는 생각도 들고 내 주위에 암으로 이승을 작별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내가 그들에게 '돌봄'이라는 것을 다르게 했었어야 하는구나 라는 아쉬움도 가지게 된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내가 원하는 도움은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름의 방식으로 질병을 살아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의료진 또한 지켜봐주는 것이다. 답을 받기보다는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p30)

 

우리는 취약한 생물이고, 인간들은 바로 이 취약함을 공유한다.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희망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취약함을 부정하기보다는 받아 안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취약함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을 때만 또렷하게 분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또렷하게 분별한다는 것은 저곳이 아니라 이곳에서 돌아다니길 선택하는 일 이상이고, 저것이 아니라 이것을 희망하는 일 이상이고, 저것이 아니라 이것을 사랑하길 선택하는 일 이상이다. 또렷하게 분별한다는 것은 어디서, 무엇을 누구를 선택하는 문제를 넘어, 모든 활동의 한가운데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p39)

 

 

심장마비를 거쳐 특히 암이라는 질병을 가짐으로써 저자는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그리고 인생에서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관점을 조금씩 다듬어나가고 있었다. 심장마비와는 다르게 암이라는 질병은 '낙인'이 찍히는 일종의 만성질환이고 어쩌면 한번에 저세상으로 갈 수 있는 심장마비라는 것과는 달리, 길게 죽음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 떨어야 하고 암환자라는 세상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다. 예전에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도 당연히 인용하고 있다.

 

 

사회가 두려워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병들은 언제나 성격에 관련된 이론으로 설명했다. 암을 주제로 한 책 중에서도 대단히 분별 있고 합리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은 이러한 사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에 나오는 예를 보자면, 중세 시대에는 행복한 사람은 전염병에 걸려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중세 사람들이 전염병을 막을 수 없었듯이 우리도 암을 막을 수 없으며, 그들이 전염병을 두려워했던 만큼 우리도 암을 두려워한다. 중세 사람들은 행복이 보호책이라고 주장했고, 우리는 분노나 성, 혹은 유행 중인 다른 무엇을 억누르지 않아야 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p174)

 

 

 

 

 

 

질병에 대한 환상 중에 하나는, 생물학적 원인 이외의 감정적인 원인 혹은 가치적인 원인을 찾고자 하는 데에 있다. 말하자면, 내가 어떻게 했기 때문에 이게 걸렸을 거야. 이런 것. 내가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그런가. 내가 담배를 많이 피워서 그런가. 내가 성적으로 문란한 적이 있었던가. 내가 남에게 비난을 하고 상처를 준 적이 있었던가.. 내가, 내가... 이런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결국 질병의 원인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국한하여 자꾸 찾으려 하는 데에 있다. 질병은 개인이 무엇을 잘못 했기 때문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감정이나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안 좋은 조짐이라도 보일라치면 대부분 이렇게 된다. 나의 지난 행동을 반추하고 나의 나쁜점을 들추고 나의 잘못한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스스로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생각을 했다.

 

 

질병의 궁극적인 가치는, 질병이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점에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아픈 사람들은 동정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치있게 여겨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멀고 먼 별자리에선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 하늘 한구석의 죽음이겠지." 라고 폴 사이먼은 노래했다. 멀고 먼 별에서, 우리는 한 번 깜빡이고는 사라지는 빛처럼 보일 것이다. 빛이 사라지는 순간에 우리는 빛이 계속 타오르게 하는 일 자체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p190)

 

이 책을 읽으면서, 질병을 가진 자와 그 주변에 머무르는 자들의 입장과 태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을 때만큼의 철학적 성찰이 있지는 않지만, 지은이는 자신의 경험을 십분 활용하여 좀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더 마음에 와닿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어차피 병들고 죽는다. 이것만한 진리가 있을까. 누구나, 그렇기 때문에 질병이라는 것에 대한 성찰이, 나름대로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지금은 건강해도 내일, 혹은 내년, 혹은 십년 뒤...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게 사람의 인생이고, 따라서 미리 준비를 한다.. 라기보다는 질병에 대한 생각들을 책을 통해서라도 정리해두는 작업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자기의 일이 되면.. 그것은 다 소용없는 일이고, 100% 내가 개인적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겠지만, 그래서 이런 '생각'이란 자체가 사실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건강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에게조차 필요한 성찰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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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9-05-29 0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질병이 생기면 그 모든 원인을 결국 내부로 돌리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저런 조심을 했어야 했는데, 생활식습관을 다르게 가졌어야 했는데 등등이요. 사실 그런 것들이 모두 원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 까지도, 나쁜 생각을 가졌다던가, 뭐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어서 그랬다든가 ㅋ.

비연 2019-05-29 21:57   좋아요 0 | URL
그래서 더 힘든지도 모르겠다 싶어요. 사실 질병의 원인이란게 하나인 것도 아니고.. 선악과 따먹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 듯.. 이 책이 그런 점에서 통찰력을 주네요~